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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닝리 Feb 15. 2023

나라는 우주의 원점

따뜻한 개인주의자로 살기


 우주는 모두 관계로 연결돼 있다.

 여기서 우주 앞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생략된 글자가 있다.


‘(인식 가능한) 우주’.


 실제 우주가 다중우주인지 평행우주인지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우주가 어딘가에 더 있는지 같은 건 우리한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가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우주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건 나중에 과학이 발달하든 지성이 발달하든 인식할 수 있게 되면 그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그러니까 우주도 결국 인류가 관계 맺을 수 있는 우주다. 그리고 인류 또한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개인은 인류가 아는 모든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모든 관계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개인은 나에게 의미 있는 별, 나에게 의미 있는 도시, 나에게 의미 있는 역사, 나에게 의미 있는 사람들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개개인의 관계망이 모여 서로에게 의미를 부여하며 비로소 전체의 인류가 의미를 가진다.


 인간을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하는데 사실은 인간이 말하는 우주 전체가 관계의 총체다.


 이 관계망에서 나는 우주의 원점이다. 더 정확히는 ‘내가 인식 가능한 우주’의 원점이다. 그리고 너는 ‘너의 우주’의 원점이고, 결국 개개인의 인간은 ‘각자의 우주’에서 원점이다. 그러니까 이 우주에는 밤하늘의 별만큼 많은 원점들이 존재한다.


 이 우주는 나라는 원점을 중심으로 ‘의미’를 가진다. 나의 가족, 나의 연인, 나의 친구, 나의 선후배, 나의 직장동료, 나에게 좋은 사람, 나에게 미운 사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싫어하는 것,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틀리다고 생각하는 것. 원점은 좌표에서 기준이 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원점이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그런 욕망을 품는다. 나라는 자아가 단단해지기를 원하고 주변 관계에 쉽게 흔들리지 않기를 원한다.


 그래서 나의 철학, 나의 가치관, 나의 논리를 만들고 이것을 끊임없이 발전시킨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욕망이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인류 전체의 관계망을 통찰하거나 인식할 수 없는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단단한 자아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나의 편견과 아집을 만든다. 그래서 나라는 원점이 이 우주의 어느 시공간에서 고정되기를 원한다. 나는 어떤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정의 내리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원점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할 때조차 원점 자체가 끊임없이 이동한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다르고 어릴 때의 나와 미래의 나는 다른 실체다. 내가 굳건하다고 믿는 세계는 약간의 도전에도 무너지는 허약한 것이고, 우린 우리를 둘러싼 물질적 조건과 관계가 변화하면 어느새 달라진 생각을 하는 존재다. 다만 아니고 싶을 뿐.


 그러니까 우리가 가장 착각하기 쉬운 것이 이 원점이 고정되어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우주의 원점은 사실 단 한 번도 고정된 적이 없다.

원래 이 우주에는 원점이란 없었으니까.


 어릴 때의 나는 고유한 정체성, 고정된 실체를 가진 존재가 되고 싶었다. 나는 무얼 좋아하는 사람이고,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사람이라고 정확히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어떤 고정된 실체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무섭다. 고정될 수 있을 줄만 알았던 나와 세계가 계속 변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늘 변화하는 존재이고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죽을 때까지 새로운 자신으로 변화하며 지금보다 더 빛나는 실체가 되고 싶다.


 이 우주에 원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가 원점이라 생각하는 위치가 이동하다가 이 우주에서 마주치고 멀어지는 것뿐이다. 결국 이동하는 원점들이 비슷한 시공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 놀랍고 감동적이고 감사한 일이다.


 나는 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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