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carpe diem.
느닷없는 타이밍에 걸려온 전화, 그리고 아버지가 암이라는 소식. 몇 번이고 되물어도 바뀔 리가 없는 사실.
그 전화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오만하게도 내가 대비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살면서 언제라도 암에 걸릴 수 있고 나와 우리 가족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닐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 막연히 언젠가 우리 부모님에게도 그 날이 오면 내가 침착하고 현명하게 사태에 대처해나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주변 지인들과 지인의 가족들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무척 놀라고 걱정하긴 했지만 그게 설령 나의 일이 되더라도 이 지구를 한시적으로 살아가는 지적 생명체의 일원으로서 스스로 최소한의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나에게 닥쳤을 때 어떻게 잡아보려 노력을 해도 여지 없이 바닥까지 무너지는 나의 멘탈을 보며 내가 너무 오만했음을 깨달았다. 나의 일과 타인의 일이라는 간극이 이토록 큰 것이었던 걸까.
처음 진단을 내린 병원이 절망을 얘기하는 병원이었기 때문에 더 충격이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지금은 작지만 희망을 얘기해주는 병원도 만났고 이제는 암과의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같은 차트라도 의사에 따라 판단이 다르다. 중요한 치료라면 반드시 여러 병원을 방문해볼 것을 권한다.)
한동안 무너진 멘탈에 글을 쓰지 못했지만 어느새 이렇게 다시 쓸 수 있는 정신이 든 걸 보고 또 삶의 위대한 단면을 깨닫는다. 우리는 살아있는 이상 언제라도 다시 살아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진 생명체인 것이다.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와 ‘현재를 잡으라’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 사실은 같은 말이라는 이야기를 새삼 절감한다.
그러니 살아있는 모든 순간 치열하게 최선을 다할 것이고 죽는 순간까지 현재를 잡으며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