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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뭐라도 해야 했다.
내가 회사원이라니, 그리고 이 길을 따라 살다 보면 그 길의 끝에서도 언젠가 회사가 나가라고 할 때까지 회사원으로 살 수밖에 없다니…라는 사실에 현타가 왔다.
회사원의 삶이 아무 가치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설가로 만화가로 영화감독으로 살고 싶었던 나의 어린 시절이 불쌍했다. 만약 시간여행을 해서 어린 나를 만났을 때 ‘그 꿈은 네가 아무리 간절히 원해도 어차피 이룰 수 없단다’라고 말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이대로 삼십 대를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브런치를 시작했고 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그건 온전히 혼자서도 마음만 먹으면 시작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내가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2년 뒤 모아둔 소설을 공모전에 넣어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공모전에 당선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내 소설책이 세상에 나올 일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내 삶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그저 회사원으로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었을 터였다. 반대로 대학 졸업을 앞둔 그때 만약 취업하지 않았더라면, 그러니까 다른 우주의 어디선가 살아가고 있을 또 다른 내가 회사원이 되지 않았더라면 소설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우주의 나는 월급쟁이보다 소설을 쓰는 삶이 지독히 외롭고 고단하다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인생의 어떤 순간은 다른 순간들보다 너무나 중요해서 그 순간의 결정이 이후의 모든 세계를 바꿔버린다.
분명한 건 시작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작한 뒤의 세계는 시작하기 전의 세계와 다른 차원이 된다. 이 작은 시작이 나를 어디까지 밀고 갈 수 있을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게 하나 있다.
시작하길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