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38
시카고에 다시 정착하기로 결정한 후, 스트레이는 열세 살 때부터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했던 첫 여자친구와 다시 사귀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집을 벗어나 스스로 집세를 낼 수 있게 된 후부터는 여자친구와 같이 살게 되었다.
서로 먼 길을 돌아와 결국 어릴 적 첫사랑과 함께하게 되었다고 하면 감동적으로 들릴 것이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그런 방향으로 말한 적은 없다. 왜 계속 만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습관 때문에 계속 만나는 관계. 어릴 때 첫 1년 정도를 제외하고는 항상 롤러코스터 같았던 피곤한 관계.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 끊임없이 싸우는 애증의 관계. 이것이 스트레이의 표현이었다.
그래도 새로 누군가를 만나기보다는 오래된 관계에 머무르는 것이 스트레이에게는 더 마음 편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는 성장하는 동안 타인에 대한 신뢰를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마음을 여는 법을 잘 몰랐고, 또 마음을 여는 일에 불안을 느꼈다. 남들과 가볍게 교류하는 일에는 꽤 능숙했지만 속내를 털어놓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는 일은 지독히도 싫어했다. 여자친구와는 어릴 때부터 가깝게 지내면서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공유했기 때문에, 거리를 재면서 마음을 열어가는 문제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비록 적과의 동침 같은 순간이 많기는 했어도 여자친구와 스트레이는 서로에 대해 이 세상에서 가장 잘 알았다.
또 스트레이는 중산층 이상의 집에서 곱게 자란 여자들이 자신을 좋아하고, 자신도 마찬가지로 그런 여자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질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엉망인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런 여자들의 풍족하고 안정된 가정에 초대받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기분 좋았다고 한다. 여자친구도 여기에 해당했다.
스트레이가 처음 정착한 동네에는 길고양이가 많았다. 스트레이와 여자친구는 고양이들에게 자주 밥을 줬다. 길고양이들은 대부분 경계심이 강했다. 사람이 놓아두고 간 먹이를 먹었지만, 사람의 모습을 보면 도망쳐 버렸다. 하지만 몇 마리는 스스럼없이 스트레이에게 다가오거나 심지어는 집까지 들어와 소파에 드러누웠다. 한때 집고양이였던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에 그 중 한 마리는 구조해서 입양을 보냈다.
길고양이들은 스트레이의 집 근처에서 새끼를 낳기도 했다. 한 번은 어느 고양이가 스트레이의 집 현관 밑에 있는 공간에서 새끼를 낳았다. 스트레이는 그 새끼고양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조해서, 한 마리는 직접 입양하고 나머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입양 보냈다.
입양한 고양이에게 스트레이는 칼리스티Kallisti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 신화 중 ‘파리스의 심판’에 나오는 단어다. 불화와 분쟁의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라는 말이 쓰여 있는 황금 사과를 던지고, 다른 세 여신이 그 사과를 놓고 다투는 이야기. 이 ‘가장 아름다운 자에게’가 고대 그리스어로 칼리스티라고 한다.
- 여자친구가 가장 아름답다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야?
- 아니. 여자친구가 불화와 분쟁의 여신 에리스 같다는 뜻으로 붙인 거야.
- 여자친구가 화내지는 않았어?
- 별로 신경 안 쓰던걸. 오히려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어.
남들은 칼리스티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알지 못했다.
암컷인 줄 알고 붙인 이름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칼리스티는 수컷이었다. 그때는 이름을 바꾸기에 이미 너무 늦었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그냥 그 이름을 계속 쓰기로 했다. 칼리스티는 사람들의 관심을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항상 스트레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고 한다.
한편 그 동네는 매우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슬럼가에 있었기 때문이다.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서서 걷다 보면 이웃집에 사건 현장을 뜻하는 노란 테이프가 둘러져 있는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갱들이 서로 쏘아죽인 것이었다. 하지만 스트레이는 그런 광경에서는 두려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스트레이는 슬럼가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떠날 형편이 되어도 절대 슬럼가를 떠나지 않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스트레이는 돈이 모이자마자 슬럼가를 떠났다. 직장이 너무 멀었기 때문이다. 출퇴근을 할 때마다 버스 두 대와 전철 한 대를 타야 했다. 게다가 스트레이는 헤로인 중독을 치료하기 위해 매일 출근 전 클리닉에 들러서 그날치의 메타돈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복용을 마치고 제시간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새벽 세 시에 일어나야 했다. 나중에는 한 번에 2주치의 메타돈을 받아올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새벽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했다.
스트레이는 직장에서 훨씬 가까운 곳에 새로 집을 얻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한 방 두 개짜리 집이었다. 번화가에서 가까운 동네였기 때문에 집세가 많이 비쌌다. 그러나 스트레이가 걱정하는 것은 집세가 아니었다. 집주인이 자신의 신원을 조사해 보고 플로리다 주의 체포 영장을 발견하면 자신에게 세를 놓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이었다. 미국에서는 세입자를 들일 때 전문 업체에 약간의 돈을 주고 그 사람의 과거 행적과 신용도 등을 조사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그 집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집주인에게 석 달 치 집세를 미리 지불했다. 집주인은 기꺼이 그 돈을 받고 당장 스트레이를 세입자로 들였다. 팬데믹 때 이사를 나오기 직전을 제외하고 스트레이는 집세를 밀린 적이 한 번도 없다. 집주인은 전직 경찰이기 때문에 진작 스트레이에 대한 조사를 끝내고도 남았겠지만, 집세를 꼬박꼬박 냈기 때문인지 스트레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집들이도 했다. 아마도 중산층 백인이고 좋은 대학교를 졸업했을 여자친구의 친구들은 와인을 선물로 가져왔다. 스트레이가 노숙할 때 자주 마시던 비닐봉지에 든 와인이 아니라 병에 든 제대로 된 와인이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