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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Aug 24. 2023

두 번에 걸친 이별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39

스트레이는 여자친구의 가족과 친척들을 자주 만났다. 다 함께 농구와 하키도 자주 보러 갔다. 가족을 위한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는 항상 여자친구의 집에 갔다.


여자친구의 친척 중에는 스트레이가 슬럼가 출신이라는 이유로 말을 섞지 않으려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머지는 아주 친절했고 스트레이를 반겼다. 어린 아이들을 스트레이에게 맡기는 일도 많았다. 스트레이는 아이들을 능숙하게 돌봤다. 그 중 한 명은 특히 스트레이를 잘 따라서 항상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여자친구의 삼촌도 스트레이를 매우 좋아했다. 늘 압생트를 권했다고 하는데,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술꾼이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가 술을 잘 마셔서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삼촌은 스트레이가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에도 스트레이를 파티에 여러 번 초대했다.


아일랜드계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 여자친구의 가족과 친척들도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또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문제들을 종교의 관점에서 단순하게 해석했다. 스트레이의 영향을 받은 여자친구만이 예외였다. 여자친구의 부모는 여자친구가 성당에 나가지 않으니 집에서 내쫓아 버려야겠다고 농담을 했다. 스트레이가 무신론자인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스트레이는 조금이라도 민감한 화제가 나오면 입을 다물거나 얼른 화제를 돌렸다.


여자친구의 가족들과 원만하게 지냈다고 해서 여자친구와도 원만하게 지냈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자친구는 사소한 일로 늘 싸움을 걸었다. 투닥거리다가 곧 화해하는 소위 사랑싸움이 아니라 정신을 지치게 만드는 소모전이었다. 여자친구는 스트레이가 가난한 집에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며 자주 공격했고, 스트레이가 어릴 때부터 앓아 온 심한 우울증을 엄살로 치부했다. 여자친구의 부모는 좋은 사람인데 여자친구는 왜 저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을 가장 잘 알고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에게 그런 대우를 받는 일은 항상 힘들었다. 스트레이는 여자친구와 함께 지내던 시간에 대해서 좋은 기억보다 나쁜 기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사귀면서 일어난 일들인 만큼 해묵은 응어리도 많았다.


습관처럼 이어지던 애증의 관계는 스트레이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이별을 통보하면서 한 번 끝났다. 정착하고 여자친구와 재결합한 지 1년 정도 지났을 때였다. 헤어진 이유를 남들이 물어보았을 때 스트레이는 그저 진지한 연애가 지겨워졌다고, 한 명의 상대에게 충실할 필요 없이 자유롭게 살고 싶어져서 여자친구를 차 버렸다고 둘러댔다. 내막을 자세히 이야기하기보다 스스로 악역을 맡는 것이 더 편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는 오랜 연애에서 여자친구에게 받은 상처를 타인에게 털어놓은 적이 별로 없었다. 상처를 인정하고 내보이는 일 자체에 서툴기도 했고, 항상 낮은 자존감에 시달렸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탓하는 일에 더 익숙하기도 했다. 집안, 성장 과정, 학벌, 모든 조건이 자신보다 훨씬 좋은 여자친구를 비난해 봤자 아무도 믿어 주지 않고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불안도 있었을 것이다.


헤어지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여자친구는 스트레이의 요구대로 집에서 떠나기는 했지만 열쇠를 내놓기는 거부했고, 그 열쇠로 새벽에 예고 없이 집에 들어왔다. 스트레이가 전화번호를 차단하자 가족들의 전화를 빌려서 연락했다. 스트레이의 페이스북 계정에 몰래 로그인하기도 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을 때 미리 설정해 둔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하면 로그인할 수 있는 기능을 악용한 것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 스토킹을 당하기는 했어도 처음 몇 달간은 마음이 편해서 좋았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곧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롤러코스터처럼 기복이 심한 관계였기 때문에, 그 수많은 나쁜 기억들이 모두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좋은 추억들도 분명히 있었다. 그리고 이별을 통해서 단순히 연애 상대만 잃은 것이 아니라, 함께 살던 동반자와 거기에 딸린 수많은 가족을 모두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스스로 선택한 이별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이는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일을 항상 어려워했기 때문에, 새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모두 진전 없이 끝나버렸다. 유일한 식구로 남았던 고양이 칼리스티도 동생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출퇴근을 하느라 칼리스티를 종일 외톨이로 내버려두는 것이 미안했기 때문이다. 혼자 살기 시작하자 생활도 점점 흐트러졌다.


혼자서 지낸 것도 처음이 아니고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도 처음이 아니었지만 이번 이별은 예전보다 훨씬 큰 타격이었다. 둘 다 성인으로서 자리를 잡고 마치 약혼한 사이처럼 함께 살다가 헤어졌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정말 끝이라고 마음먹었기 때문일까? 더 이상 가난하고 불안정하게 살지 않게 되면서 외로움을 더 크게 느끼게 된 것일까? 수많은 이유가 동시에 작용했을지 모른다.


스트레이와 여자친구가 서로 소식을 모르고 지낸 지 몇 달이 지난 후, 스트레이의 생일이 다가왔을 때 여자친구가 식사나 하자며 연락했다. 그 식사를 계기로 둘은 자연스럽게 다시 가까워졌고, 다시 사귀게 되었다.


고립이 끝나자 스트레이의 생활에는 질서가 돌아왔다.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평생 스트레이를 따라다니던 우울증도 잠시 나았던 시기였다. 불면증이 사라져서 매일 일고여덟 시간씩 잤다. 중간에 깨는 일도 없었다. 술도 일주일에 맥주 한두 병 정도로 엄청나게 줄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 둘은 다시 헤어졌다. 예전보다는 다소 평탄해졌어도, 여전히 싸움과 날선 말이 끊이지 않는 애증의 관계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스트레이는 비록 외롭더라도 이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더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던 듯하다. 마음은 지난번보다 잘 정리되었다. 홀로 설 준비도 지난번보다는 잘 되어 있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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