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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Aug 31. 2023

‘인생’이 일어나다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0

여자친구와 다시 헤어진 후, 스트레이는 지난번에 헤어졌을 때보다 잘 지내고 있었다. 몸과 마음 모두 건강했다. 매일 직접 요리한 음식으로 식사를 했고 운동하러 다녔다. 주말에는 친구들을 만나고 락이나 힙합 공연을 보러 갔다. 그러나 평화로운 시간은 아주 짧았다.


-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 ‘인생’이 일어났지.


내가 처음 물었을 때 스트레이는 그렇게만 대답하려고 했다. 스트레이에게 인생이란 그렇게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존재였다. 내가 다시 묻자 스트레이는 조금 망설인 끝에, 당시 아버지의 죽음에서 엄청난 정신적 타격을 받았다고 말해 줬다. 아버지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그보다 더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새어머니를 두고 외도를 했다. 그리고 새어머니에게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집을 떠나라고 도리어 큰소리를 쳤다. 그래서 새어머니는 두 아이를 데리고 시카고에서 멀리 떨어진 켄터키 주에 사는 오빠의 집으로 가 버렸다. 무직에 온갖 마약이란 마약은 다 하던 스트레이의 큰아버지가 대신 아버지의 집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집에서 양말을 신다가 그대로 앉아서 돌연사했다(큰아버지의 주장이었다). 큰아버지는 가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지 않고, 어디선가 심장마비라는 사망진단서 한 장만 받아다 놓고는 아버지를 몰래 화장해 버렸다. 아버지는 은행을 이용하지 않고 집에 현금을 숨겨 두고 살았는데, 큰아버지는 그 돈을 꺼내 쓰면서 아버지의 집에서 몇 달 동안 살다가 남은 돈을 들고 사라져 버렸다. 큰아버지를 제외한 다른 모든 가족들은 큰아버지가 사라진 뒤에야 아버지의 죽음을 알았다. 큰아버지는 몇 년 후 시카고 시 바깥의 허허벌판에서 객사한 채로 발견되었다.


어이없고 허무한 죽음이었다. 스트레이는 아버지가 그렇게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음 자체보다도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 자신에게 연락하려고 시도했었다는 사실이라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당시 스트레이는 의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아버지가 갑자기 왜 자신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지 의아했지만, 들어 봤자 좋은 내용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연락을 받지 않았다.


스트레이는 자신의 판단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때로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연락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의 그 행동 한 가지가 자신을 너무나도 괴롭게 만들었다고, 그저 아버지가 연락을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직접 겪어 보지 않은 나는 그것이 어떤 마음인지 어렴풋이 추측만 할 뿐이다.


스트레이는 자신을 방임하고 학대했던 아버지와 거의 인연을 끊고 살았다. 애정을 느껴 본 적도 없었고 그리워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연락에서 갑작스런 죽음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은 스트레이를 걷잡을 수 없이 뒤흔들어 놓았다.


서로 사랑하고 아끼던 가족을 잃었을 때 슬픔과 상실감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애정을 남김없이 다 주고받았기 때문에 회한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가족, 미워하고 원망하던 가족이 죽었을 때 오히려 더 타격이 클 수 있다고 한다. 나쁜 기억들, ‘내 가족이 이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렇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평생 동안의 소망과 좌절이 한꺼번에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다 포기하고 잊었다고 생각했더라도 사실은 마음 속 깊이 모두 남아 있는 것이다. 스트레이도 자신의 감정에 아버지가 더 이상 어떤 영향도 끼칠 수 없다고 믿고 있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극도의 우울증이 스트레이를 삼켜 버렸다. 다시 길바닥에 나앉지 않기 위해 여전히 매일 출근해서 일을 했지만 그것 외의 모든 생활은 멈추고 말았다. 우울증이 악화할 때마다 항상 그랬듯이 불면증도 악화했기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운동할 기력도 없었다. 항우울제를 처방받았지만 부작용만 있고 효과는 없었다. 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생각만으로도 큰 스트레스를 받았기 때문에 상담치료는 피했다.


혼자 살던 시기에 그 일이 일어난 것은 커다란 불운이었다. 심한 우울증에 걸리면 일상생활이 무너지고, 부정적인 생각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게 되는데,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그것들을 조금이라도 막아 줄 최소한의 안전장치조차 없다. 스트레이는 다른 많은 우울증 환자들과 마찬가지로 아무와도 연락하거나 만나지 않았고, 모든 사람을 자신의 삶에서 쳐냈다. 고독을 즐겨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울증의 흔한 증상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이는 이 세상 전체가 싫었고 그 중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싫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살아갈 것이고 남들을 위해서라도 그것이 옳다고 믿었다. 우울증 때문에 외로워지고 외로움 때문에 우울증이 심해지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우울증은 스트레이를 고립시켜서 독차지한 뒤, 하루 종일 어둡고 절망적인 이야기를 속삭였다. 거기에 무방비로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은 술뿐이었다. 스트레이는 매일 밤 집에 혼자 앉아서 허공을 쳐다보며 술을 마셨다. 독주를 물처럼 마시던 노숙 시절의 습관을 버리고 주로 맥주를 마시게 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점심시간에 식당 대신 바에 가서 술만 마시고 사무실에 돌아오는 날도 적지 않았다. 위스키 한 잔을 빈속에 털어 넣은 후 흑맥주 한두 잔을 마시면 우울증도 잠시 잊을 수 있었고 배도 적당히 불렀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장이기 때문에 점심식사에 맥주 한 잔을 곁들이는 직원들이 많았고, 그래서 스트레이의 행동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없었다. 스트레이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멀쩡한 척 행동하고 일하는 데에 익숙했다.


숙취와 불면증에 시달렸기 때문에 아침에는 잠에서 깨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로 식사를 대신했다. 식사는 하루에 한 끼 정도, 야채 부리또나 그릴드치즈 샌드위치를 사서 간단히 때웠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먹을 사람이 자신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이 우울해서 요리는 그만뒀다. 주말에는 계속 굶고 있다가 일요일 저녁쯤에야 그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우울증 약의 부작용, 맥주, 운동부족 때문에 몸무게는 오히려 늘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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