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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Sep 14. 2023

인터넷 방송에서 이 글까지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1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레이의 우울증도 최악의 상태는 넘겼다. 그래도 여전히 출퇴근을 제외하고는 외출하거나 사람을 만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방법이 필요해졌다. 그래서 스트레이는 본격적으로 컴퓨터 게임을 시작하게 됐다. 어릴 때도 게임을 조금 했지만, 친구들의 집에서 잠깐씩 하거나 공립도서관 컴퓨터로 한 것이 거의 전부였다. 예전에 유일하게 가져 본 게임기는 누군가가 쓰다가 준 닌텐도 64였다. 이제는 성능 좋은 게임용 컴퓨터를 조립하고 거기다 플레이스테이션까지 살 경제력이 있었다.


스트레이는 게임에 소질이 있었다. 반사신경과 상황 판단이 좋고, 손놀림도 빠르고 정확했다. 승부욕과 대담함도 있었다. 한동안은 집에서 혼자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후에는 게임에 대한 동영상과 인터넷 방송을 찾아보다가 자신도 동영상 몇 개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게 됐다. 이 기회에 동영상 편집을 연습해 보고 싶다는 소박한 계기였다. 그 중 한 영상이 화제가 돼서 유튜브 구독자가 순식간에 늘었다. 이 일은 스트레이가 실시간으로 인터넷 방송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됐다.


스트레이는 우울증 때문에 오랜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고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그런데 몇 십 명의 시청자 앞에서 방송을 하는 것은 괜찮았다. 웹캠을 사서 게임 화면 옆에 자신의 얼굴도 실시간으로 보여줬다. 게임 방송이기 때문에 꼭 얼굴을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당시에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라면 방송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이율배반적인 행동이었다. 스트레이는 얼굴과 퍼스트네임뿐만이 아니라, 어느 도시에 살고 직장 이름은 무엇인지까지 자진해서 공개했다. 그러나 자신의 풀네임이 알려졌을 때는 공황 상태에 빠져서 몇 주간 방송을 쉬었다. 방송을 통해 알게 된 누군가에게 무심코 성을 알려줬는데, 그 사람이 스트레이의 허락 없이 채팅에서 말한 것이었다. 풀네임을 알면 신상을 털기가 쉽고, 미국에서는 신상을 턴 후 허위 신고로 집에 경찰특공대가 들이닥치게 만드는 악질적인 장난이 존재한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아마 플로리다의 영장이었을 것이다.


그 후로도 방송을 그만둘 뻔한 순간이 몇 번 있었다. 원인은 사이버불링인 경우도 있었고, 우울증인 경우도 있었고, 인터넷 전반에 대한 환멸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약 2년 동안 스트레이의 채널은 꾸준히 성장했다. 방송을 통해 세계 여러 나라에 친구도 생겼다. 그 후 스트레이는 우울증의 악화를 포함한 몇 가지 이유로 방송을 접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친구 여러 명이 그 후로도 계속 스트레이의 곁에 남아 있다.


내가 스트레이와 만난 계기도 방송이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스트레이에게는 그냥 지나치거나 잊어버릴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존재감이라고 해도 좋고, 소위 말하는 아우라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스트레이가 금세 많은 시청자를 모은 비결도 아마 그것인지 모른다. 스트레이는 딱 한 번, 자신이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고 그 사실을 자신도 안다고 인정한 적이 있다. 그 한 번 외에는 남들이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항상 쑥스러워하며 부정한다.


스트레이의 방송을 몇 번 보고 채팅으로 스트레이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서 나는 스트레이가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날카로운 말투 뒤에 선한 마음, 지적인 화이트칼라 노동자라는 현재 뒤에 힘들었던 과거, 자신감 있고 냉소적인 태도 뒤에 수줍음과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친분을 점점 쌓게 되면서 흥미로움도 커졌다. 가끔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 같기도 했다. 스트레이는 어떤 때는 남이 묻기도 전에 스스로 나서서 많은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어 했고, 어떤 때는 농담과 침묵으로 무장한 채 결코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오래 교류하면서 나는 스트레이라는 사람과 스트레이가 살아온 삶이 아주 놀랍고 대단하다고 점점 느끼게 됐다. 스트레이도 내게 점점 마음을 열고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들은 더 놀랍고 대단했다. 그렇게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이 글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방에서 간소하게 방송을 하다가 점점 장비가 늘어나면서 거실로 옮겼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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