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3
팬데믹이 시작된 후 여러 달이 지날 때까지 스트레이의 일상생활은 겉으로 보기에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모두에게 항상 폭군처럼 굴지만 스트레이에게는 약한 사장은, 팬데믹 초기에 스트레이가 장문의 이메일로 재택근무를 건의하자 흔쾌히 받아들였다. 다른 직원들은 모두 스트레이에게 고마워했다. 퇴근 후와 주말에 스트레이가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팬데믹 전이나 후나 차이가 없었다. 원래 우울증 때문에 외출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하고,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게임을 했다.
다만 정신건강을 관리하는 데에는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이 중요한데, 재택근무는 안전하고 편하기는 했어도 생활리듬을 흐트러뜨렸다. 오랫동안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는 데에 익숙해져 있다가 갑자기 종일 집에 있게 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종종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러 나갔지만 출퇴근할 때와 비교하면 운동량이 훨씬 부족했다. 집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시간이 늘어난 탓에 술과 담배를 조절하기도 전보다 더 어려워졌다.
그리고 원래도 우울증 때문에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았던 스트레이는 팬데믹 후로 더욱 고립되었다. 예전에는 직장 동료나 단골 식당 종업원과 가벼운 대화라도 나눌 수 있었지만 이제 그 최소한의 상호작용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3개월 조금 넘게 받고 있었던 상담치료도 팬데믹 때문에 무한정 미뤄졌다. 스트레이는 상담에서 별로 효과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워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래도 상담을 오랫동안 꾸준히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면 조금은 나았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담사에게 서서히 마음을 열었을 수도 있고, 자신과 더 잘 맞는 다른 상담사를 찾았을 수도 있다.
노숙하던 시절의 친구들과 달리 혼자서만 안락하게 살고 있다는 죄책감도 팬데믹이 시작된 후 더욱 심해졌다. 공공시설들이 문을 닫으면서, 스트레이의 떠돌이 친구들은 더 이상 공립도서관 인터넷을 통해 스트레이와 연락할 수 없게 되었다. 소식은 들을 수 없어도 친구들의 삶이 더욱 힘들어졌음은 분명했다. 주거가 일정하지 않으니 안전하게 집에 머물 수도 없고, 주로 단기적인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전보다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떠나 팬데믹은 그 자체로 정신건강에 큰 시련이었다. 현재와 미래가 모두 크게 불확실해졌다. 사람들 사이에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질병보다도 더 빠른 속도로 전염되었다. 기분전환을 위해 느긋하게 외식을 하거나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없었고, 친구들을 만나 위안을 받을 수도 없었다. 기존에 마음이 건강했던 사람들도 팬데믹 속에서 우울과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 경우가 많다. 스트레이처럼 원래 정신건강이 좋지 못하던 사람들의 경우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스트레이의 병 중에서 이인증은 그나마 약으로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우울제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스트레이는 여전히 죽도록 우울했다. 약을 먹으나 먹지 않으나 여전히 우울하다면 약에 의존하는 생활을 그만두는 것이 더 낫겠다고 스트레이는 생각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항우울제, 이인증 치료제, 수면제를 모두 끊어 버렸다. 주변 사람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의사에게도 전혀 알리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의식하지 못하는 동안 항우울제가 막아 주고 있었던 자살 충동이, 항우울제를 끊고 나자 하루 24시간 스트레이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이인증 치료제를 끊자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이인증이 다시 심해졌다. 수면제를 끊자 잠을 잘 수 없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 주변 사람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견딜 수 없이 짜증과 화가 났다. 약을 먹고 있는 상태에서 바닥을 쳤다고 생각했는데, 약을 끊고 나자 바닥을 뚫고 들어간 격이었다.
나는 스트레이가 약을 끊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지만 상태가 나빠졌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스트레이가 나를 포함한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이유 없이 크게 화를 낸 어느 날, 나는 뭔가 잘못됐음을 눈치 챘다. 이대로 가면 어떤 식으로든 스트레이를 잃을지 모른다고 느꼈다.
당시 이 글의 원고는 절반 정도 완성되어 있었다. 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고 스트레이에게 말하고 허락을 받기는 했지만, 영어로 된 글이 아니기 때문에 스트레이에게 직접 보여준 적은 없었다. 한글을 소리 내서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은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스트레이에게 나는 그때까지 쓴 원고 전체를 보냈다. 잘 모르는 언어로 되어 있어서 미안하고,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모두 대답해 주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내 행동이 스트레이에게 기쁨이나 위안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스트레이에게 했던, 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고 그 글이 실제로 존재함을 보여주고 싶었다. 너는 멋진 사람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왔다는 말이 진심이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트레이를 잃는 것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최소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서두르고 싶었다.
그 날은 별다른 대답을 듣지 못했다. 그러나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스트레이는 자신이 한 달 정도 약을 끊었고, 그 동안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나빠졌고, 이제는 다시 약을 먹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스트레이가 약을 다시 먹기 시작한 것은 내가 원고를 보여 줬던 날이거나 그 다음날이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