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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미 Nov 02. 2023

수동적인 자살 시도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5

불행히도 스트레이의 주변 환경은 팬데믹에서 회복하는 데에 오래 걸리고 있었다. 더 불행히도 스트레이의 처지와 정신건강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저축한 돈과 실업급여로 버티면서 일거리를 찾는 것이었다.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집에서 가까운 곳에 직장을 구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지 않을 경우 먼 곳에 직장을 구해 이사를 갈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저축으로 버티는 것 외의 모든 계획이 틀어지고 말았다.


우선 실업급여를 받기가 너무 힘들었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데도, 몇 번이고 서류를 제출하고 매일 전화를 걸어도 소용이 없었다. 전화는 항상 응답기가 받았다. 자신의 전화번호를 입력한 후, 공무원이 그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신청자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실업급여를 받아 본 경험이 있는 동생의 도움으로 마침내 공무원과 통화했을 때는 너무나도 적은 금액밖에, 그것도 단 한 번밖에 받지 못했다. 미국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였다. 팬데믹으로 실업자가 폭증해서 실업급여 체계 전체에 과부하가 걸린 것이다. 1년이 넘게 노력했는데 한 푼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 동생은 급여를 더 받기 위해 맞서 싸우라고 조언했지만 스트레이에게는 그렇게 할 에너지가 없었다.


일거리도 찾을 수 없었다. 팬데믹 탓에 일자리가 크게 줄어서, 미국에서 특히 좋은 대우를 받는 직종 중 하나인 프로그래머임에도 새로 취직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일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모두 집에서 최소 다섯 시간은 떨어진 곳이었다. 웹 개발자를 구하는 곳은 주로 새로 문을 여는 작은 사업체들인데, 팬데믹의 여파와 젠트리피케이션이 겹친 시카고 시내에서는 새로 소규모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이 드물었다. 스트레이는 취직을 위해 시카고 변두리로 이사한다는 계획을 몇 번 입에 올렸다. 그러나 실천에 옮기기에는 너무 버거운 듯했다.


스트레이와 계속 대화해 온 내가 보기에 가장 크고, 가장 핵심적이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우울증이었다. 심한 우울증은 하루 종일 스트레이를 무기력하게 만들고 머릿속을 흐려 놓았다. 침대에서 나오는 일조차 노력이 필요한 상태에서, 어떻게 새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먼 곳에 집을 알아볼 수 있을까.


다른 많은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우울증은 일상생활을 방해했다. 억지로 생활을 이끌고 나가는 데에는 돈이 들었다. 간단한 요리를 할 기운도 나지 않고 외출도 버거운 상태에서는 돈을 더 써서 음식을 배달시킬 수밖에 없었다. 술과 담배로 빠져나가는 돈도 적지 않았다. 끊어야 한다는 생각은 매일 했지만 정신적인 위안이 그것뿐인 상태에서는 실천에 옮기기 어려웠다. 걷잡을 수 없는 불안을 달래주는 것은 담배뿐이었고, 암울한 생각을 잠시나마 잊게 해 주는 것은 술뿐이었기에 오히려 양이 늘었다. 게임은 술보다 돈이 덜 들고 몸에 덜 해로웠지만 술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술이 늘게 된 또 한 가지의 원인은 수면보조제를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십대 때도 가끔 겪은 현상이었는데, 수면보조제가 일시적인 정신 혼란인 섬망을 유발하기 시작했다. 주로 두 가지 증상 중 하나가 나타났다. 채팅으로 친구들에게 횡설수설하기, 밖에 나가서 음식을 사와 먹기. 그 후에는 자신의 행동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전자는 그저 친구들에게 창피할 뿐이었지만 후자는 훨씬 위험했다.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한밤중에 밖에 나갔다가는 생명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스트레이는 어쩔 수 없이 수면보조제를 끊었다. 그리고 불면증이 괴로워서 술에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많은 만성질환과 마찬가지로 우울증 자체가 돈이 드는 병이었다. 실직으로 의료보험이 없어지고 나자 우울증과 이인증 약을 구입하는 데에 한 달에 300달러가 들게 되었다.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지출이었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약을 더 이상 처방받기를 포기하고 말았다.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보험이 없어지기 전에 미리 3개월 치의 항우울제를 지어온 것이 마지막이었다. 이인증이 저절로 완화되어서 이인증 약 없이도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우울증과 실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악순환을 낳았다. 실직 상태였기 때문에 우울증을 치료받을 수 없었다. 우울증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알아보거나 돈을 아끼기 어려웠다. 줄어드는 저축을 쳐다보고 있으면 피가 마르도록 불안했다. 심한 불안은 우울증을 악화시켰다. 당장 죽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꽉 찰 때는 술을 마셔서 잊을 수밖에 없었다. 과음은 잠시 숨통이 트이게 해 줬지만 지출을 늘릴 뿐 아니라 우울증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루를 그렇게 버티고 나면 다음날은 조금 더 줄어든 저축과 조금 더 큰 절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멈출 수 없다면 반대로 속도를 높여서 전부 끝내 버리자. 스트레이는 아마도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스트레이는 술을 줄이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매일 밤 술에 대한 의존에 몸과 마음을 내맡겼다. 실직 전에도 이미 지나쳤던 음주량은 실직 후 두 배까지 늘어났다. 그렇게 급성 알코올 중독이든 간경화든 걸려서 죽을 작정이었다. 수동적인 자살 시도였다.


스트레이가 이 모든 내막을 직접 설명해 준 것은 거의 1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스트레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던 당시에도 스트레이가 꽤 위태로운 상태임은 분명해 보였다. 혼자 사는 스트레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 때를 대비해서 남동생의 전화번호를 알아 뒀던 나는, 그 전화번호를 처음으로 쓸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나는 동생에게 스트레이가 우울증이 심하니 연락해 보는 것이 좋겠다는 문자를 보냈다. 동생은 그러잖아도 스트레이가 며칠째 연락을 받지 않아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날 밤 당장 스트레이를 찾아갔다.


스트레이는 아직은 무사했지만 동생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현관문에 작은 유리창이 있어서 거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스트레이의 뒷모습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는데도, 스트레이는 자신이 지금 집에 없으니 돌아가라는 문자만 계속 보내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동생은 문자로, 나는 메신저로 스트레이를 계속 설득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동생이 포기하려 할 때쯤 간신히 문이 열렸다. 대신 나는 스트레이에게 차단을 당했다.


동생은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내게 문자로 간단히 말해 줬다. 스트레이는 자신이 아무 일 없이 잘 지내고 있다고 우겼지만, 동생이 이렇게 말했을 때는 조금 마음을 여는 것 같았다고 한다.


- 우리 어린 시절은 끔찍했어. 충분히 우울증에 걸릴 만해.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랐는데 내가 왜 그걸 모르겠어?


이 세상에서 오로지 동생만이 해 줄 수 있는 말이었다. 스트레이는 동생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많고, 지금도 어머니를 좋아한다고만 믿고 있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의 증인은 자신 하나뿐이라고 믿었다. 동생의 이런 속내를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마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한 달 후 차단을 푼 스트레이는 살아 있었을 뿐 아니라 술까지 끊은 상태였다. 그동안 술을 워낙 많이 마셨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자신이 갑자기 술을 끊으면 알코올 금단증상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금단증상은 생각보다 훨씬 가볍게 지나갔다. 자신이 그때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트레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술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일은 내가 아는 한은 일어나지 않았다.


동생의 공감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어서 술을 끊었다고 해석하면 아름답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알고 보면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 스트레이가 죽기 전에 돈이 먼저 바닥났던 것이다. 하지만 노숙을 할 때 어떻게든 값싼 술을 구해서 마셨던 것을 생각하면 돈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을 것이다. 예전에 선물로 받아서 집에 보관하고 있던 술에도 손을 대지 않았다. 머릿속과 가슴속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모르지만 스트레이는 그저 어느 날부터 더 이상 술에 대한 갈망을 느끼지 않았다.


담배는 끊지 못하고 값싼 제품으로 옮겨갔다. 잎담배를 사서 직접 말아 피우면 일주일에 5달러 정도로 버틸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중독에는 신기한 측면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돈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알코올은 끊고 니코틴은 끊지 못하다니. 그러나 나중에 스트레이가 어떤 의도로 술을 마셨는지 알게 된 후에는 조금 이해가 됐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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