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8
나는 마약으로 젊은 시절을 날린 스트레이의 어머니가 지금은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다. 알고 보니 역시 사연이 있었다.
스트레이가 자란 동네에는 정유소가 있었다. 정유소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해 주민들이 대규모 집단소송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스트레이가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어머니는 시카고를 떠난 스트레이와 아직 미성년자였던 동생의 보상금을 대신 수령했다. 스트레이에게는 한 푼도 전해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자신과 스트레이 몫의 보상금으로 시카고 시 경계선 바깥에 다 쓰러져가는 집 한 채를 샀다. 어머니가 사들이지 않았다면 철거되었을 낡은 집이었다. 수리비가 계속 들어가서 나중에는 배보다 배꼽이 커졌다. 어머니는 동생 몫의 보상금 중 일부도 동생의 동의 없이 집 수리비로 썼다.
그나마 제대로 수리되지도 않았다. 당시 어머니의 남자친구였던 사람이 수리를 도맡았는데 모든 일을 엉망으로 해 놓았다. 다른 지역에 있었던 스트레이는 자신이 가서 함께 수리하겠다고 제안했지만, 어머니의 남자친구는 스트레이를 싫어했기 때문에 거부했다.
어머니의 남자친구가 손을 댄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이는 그 집에 살기 시작한 후로 수많은 부분을 다시 직접 수리했다.
- 미국에서는 웬만한 집수리는 직접 한다더니 정말인가 보네.
- 이 정도로 큰일은 기술자를 부르는 게 맞아. 엄마가 굳이 내게 시키는 이유는 나한테는 일당을 줄 필요가 없기 때문이야.
어머니는 고맙다는 말 한 마디 한 적이 없었다. 동생은 도울 때보다 돕지 않을 때가 훨씬 많았다.
한 번은 어머니가 전기 배선을 손보라고 강요했다. 스트레이는 다양한 공사 일을 해 봤고 손재주도 좋아서 웬만한 일은 어렵지 않게 해냈지만, 전기 배선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험이나 지식이 없었다. 섣불리 배선을 건드렸다가 감전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심지어 자격증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이 배선 공사를 하는 일은 불법이었다. 이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설명했지만 어머니는 막무가내였다. 배선 공사에는 특수한 장비가 필요하고, 그 장비를 사는 데에 드는 돈이 사람을 쓰는 돈과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야 어머니는 전기 기술자를 불렀다.
어머니가 스트레이를 공짜 수리공처럼 부려먹는 일에서도 좋은 결과물이 한 가지 남기는 했다. 어머니가 시킨 대로 마당에 창고로 쓸 가건물을 짓고 나서 목재가 조금 남았는데, 그 목재로 길고양이들이 추위를 피할 공간을 만든 것이다.
시카고에 다시 정착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스트레이가 그렇게 했듯, 동생은 매일 집 마당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처음에 고양이들은 낯선 스트레이를 매우 경계해서 스트레이가 조금만 다가가도 도망쳐 버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보다도 스트레이를 더 잘 따르게 되었다. 스트레이도 고양이들을 챙겨 주고 데리고 노는 일을 좋아했다. 그중 새끼고양이 한 마리는 구조해서 입양을 보냈다. 겨울에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나머지 고양이들을 위해 스트레이는 피난처를 마련했다. 목재로 틀을 만들고 방수포를 덮었다. 그 덕분인지 마당에 찾아오던 고양이들은 무사히 겨울을 났다.
집안에도 고양이가 두 마리 있다. 동생이 기르는 카라Cara, 스트레이가 10년 전에 구조해서 어머니에게 준 어윈Erwin이다. 어윈이라는 이름은 스트레이가 에르빈(어윈) 슈뢰딩거에서 따와서 붙인 것이다. 예전에 스트레이가 기르다가 동생에게 보냈던 칼리스티는 죽었다. 스트레이는 카라도 예뻐하지만 역시 자신이 직접 구조한 어윈을 더 아끼는 것 같다.
어머니는 스트레이에게는 매정하지만 고양이들에게는 잘해준다. 길고양이 중 한 마리가 화분을 파헤쳐 놓았을 때는 화를 냈지만, 스트레이 형제가 길고양이들을 꾸준히 돌보는 일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 나한테 잘해주고 고양이들을 구박하는 것보다야 이게 훨씬 낫지 뭐.
동물을 좋아하고 어머니에 대한 기대치가 땅에 떨어져 있는 스트레이는 그렇게 말할 뿐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