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와 관심작가

완벽한 대칭이 건네는 질문

by 재해석


어제 저의 브런치 대시보드는 잠시였지만 구독자 25명, 관심 작가 25명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룬 상태였습니다.

안도감보다 묘한 책임감으로 다가왔습니다. 양쪽이 100% 동일 인물은 아니지만 누군가의 호의에 같은 크기의 숫자로 응답해야 한다는 부담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가끔 문장이 참 좋은 작가님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그분의 구독자 수가 수천 명에 달하는 반면 관심 작가는 고작 몇 명뿐이거나, 심지어 '0명'인 것을 보고 라이킷을 빠꾸 시킨 적도 있습니다.

질투라기보다, 충분히 화려한 꽃다발에 야생화 한 송이 보태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에 가깝습니다.

거대한 군중 속의 한 명이 되기보다, 작더라도 서로의 숨소리가 들리는 밀도 있는 대화를 꿈꾸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저를 관심 작가로 추가해 주시면 감사함과 동시에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의 빚'이 생깁니다. 그 부채의식을 이기지 못해 서둘러 맞팔로우 하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관심 작가'를 눌러주신 분들도 비슷하실 겁니다.

글이 올라오자마자 읽지도 않으시고 빛의 속도로 라이킷만 투척하고 가시는 분들, 다 알고 있습니다.

자, 그런 분들 제 글 앞에서 5분 동안 손 들고 벌서세요. 저도 이 글 마치면 두 팔 들고 서 있겠습니다.


진심 어린 호기심이 아니라 예의라는 외투를 입고 맺은 관계는 금세 온기를 잃기 마련입니다.

이미 구독 중인 작가님들 문장 곱씹기에도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한데, 의무감으로 늘려간 숫자는 오히려 진정으로 읽어야 할 글을 가려버리는 안개가 되기도 합니다.

구독은 클릭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만, 독서 시간은 삶의 일부를 내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25대 25라는 평형 상태를 깨뜨리려 합니다. 상대의 호의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호의를 더 소중히 여기기에 '기계적인 맞팔' 대신 '진심 어린 읽기'를 택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느리고 불친절해 보일지라도, 제 서재를 책임질 수 있는 문장들로 채우려 합니다. 숫자가 주는 안도감보다 소수의 작가와 나누는 깊은 공명이, 필명인 ‘재해석'의 가치에 가깝다고 믿습니다.

오늘 대시보드의 숫자가 균형을 잃고 기우뚱해지더라도, 그 불균형 속에서 비로소 진솔한 문장이 시작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당신의 구독자로 '달라붙어' 있어도 부디 부채의식을 갖지 마시라는 당부를 이토록 구구절절 쓰고 있음을 진정 알아주시길 간청드립니다.


안 삐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