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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은한 Nov 01. 2024

캐나다 하우스 겨울준비 하기

많고, 힘들다


"여보야~!! 이번주는 바깥정리합시다."

지난주 우렁찬 소리로 나를 일으키는 신랑이었다.


우리는 하우스라고 하는 단독주택에 산다. 하우스는 장점이 많다.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녀도 되고, 새벽에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연주해도 된다. 한밤중에 청소기, 세탁기를 돌려도 걱정 없고,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샤우팅도 마음껏 할 수 있다. 우리 집은 앞, 뒤, 양 옆이 모두 빈땅이라 생활이 더더욱 자유롭다.


하지만 장점 많은 이 하우스는 관리해야 할 것들이 많다. 대부분 평소에 조금씩 살피면 되는 것들이지만 뭐 하나라도 고장이 났을 때는 참 난감하다. 기술자를 찾아 예약해 며칠 혹은 몇 달을 기다려야 하고, 특히 비용이 많이 비싸기 때문에 웬만한 것들을 혼자 할 수 있을 만큼의 기술이 있지 않으면 하우스에 사는 것은 재정적으로 부담이 많이 된다. 우리도 그동안 전문가를 불러 수리하며 돈 들어갈 일이 몇 번 있었는데 창문과 하수도 문제였다. 그 외에는 다행히 신랑이 기술이 있고, 공구도 있고, 흥미도 있어서 고장 난 것들의 대부분을 직접 수리했다. 전기기술이 있어 집안의 전기 관련 문제는 언제나 눈감고도 뚝딱 이었으며, 차고  부품교체하기, 카펫 교체, 라미네이트 깔기, 벽 페인팅, 세면대 설치, 변기교체, 가벽 세우기, 계단 만들어 설치하기, 옷장 짜기 등 모르는 것은 유튜브를 찾아 배워가며 잘 해내었다.

계단 카펫 교체
붙박이장을 아이들 오두막으로 만들어주기,바닥 카펫 교체, 벽 페인팅 등
상판 모양 내어 잘라 다리 붙여 2인용 책상 만들기
아이들 모래놀이 테이블 만들기
현관 앞 낡은 계단 뜯어내고 새로 만들어 설치하기

솜씨가 참 좋은 신랑이다.

기술이 없는 나는 자잘한 심부름을 도와주며, 소소하게 정원관리 정도를 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대단히 부지런하지 않다.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면 흐린 눈을 하며 조금씩 미루는 편이다. 둘 다 평일에는 전혀 시간이 없기 때문에 주말이 아니면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주말에 집 안팎에 할 것들을 몰아서 하고 있다.


제일 먼저 여름 내내 한 번도 정리하지 않은 잔디들을 깎았다. 잔디 깎는 것은 되도록이면 내가 하려고 한다. 힘든 일에 속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신랑을 조금이나마 도와주고 싶어서다. 잔디 깎기 기계를 끌고 들어간 잔디밭은 처참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보통은 2주에 한 번씩, 아무리 못해도 한 달에 한 번은 깎아줘야 하는데 거의 4달째 손을 대지 못하였다. 마당의 주인이었던 잔디들이 불청객 잡초에게 밀려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이건 '잔디 깎기'가 아니고 말 그대로 '잡초 깎기'였다. 잔디는 다 어디 가고 무릎높이의 튼실한 잡초들만 가득이다. 40분 정도를 열심히 깎아 내고 말끔해진 잔디밭을 보니 속이 다 개운해졌다. 이제 곧 겨울이니 올해 마지막 잔디 깎기이다. 


잔디를 다 정리한 후 구석에 반정도 죽어있는 나무를 다 잘라내었다. 버드나무 가지처럼 자잘한 나뭇가지만 위로 뻗어 자라는 스타일이라 관리가 어려웠다. 나무가 없으니 시야가 뻥 뚫려 좋다. 나무가 있으면 아이들 놀 때 위험하기도 해서 새로운 나무를 심을지는 고민해 봐야겠다.

잘라낸 나뭇가지들. 모아놨다가 한번에 버리러 가야한다.


그런 후 앞쪽에 있는 포도나무 덩굴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잘 익은 포도는 따서 맛있게 먹고, 다람쥐, 새, 사슴 누구라도 먹으라고 두 송이를 남겨두었다. 많이 남겼다가 곰이라도 오면 큰일이니 많이는 남기지 못한다. 며칠 뒤 포도가 송이채 없어진걸 보니 작년처럼 사슴이 먹은 것 같다.  뒤편에 있는 청포도나무 가지치기는 다음 주에 할 예정이다.

깔끔해진 포도나무. 작은 포도가 약 열송이정도 열렸다.


내가 정원정리를 하고 있는 사이 신랑은 야외 수도관의 물을 빼는 작업을 했다. 콤프레셔를 이용해서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수도관에 남아 있는 물들을 남김없이 빼내는 작업이다.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 수도관의 물이 얼면 팽창하면서 수도관이 파열되기 때문에 꼭 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통은 업체에 의뢰하는데 우리 집이랑 형님댁까지 일 년에 두 집 의뢰하는 가격이면 콤프레셔 사는 게 이득이라 판단한 신랑이 콤프레셔를 사서 매년 양쪽집을 직접 하고 있다. 시간과 노동이 좀 들어가지만 벌써 콤프레셔값은 빠지고도 남았다. 우리 집은 건물을 둘러싸는 잔디밭이 꽤 크게 있어 구역별로 나누어진 스프링클러가 여러 개 있다. 그래서 물을 모두 빼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 게다가 오래된 스프링클러 밸브에 문제가 있는 것이 발견되어 혹시 몰라 몇 달 전 사놓은(우리 집에 물건들이 넘쳐나는 이유) 부품으로 교체도 했다.


각자 맡은 것들을 하다 보니 시간이 꽤 지났다. 둘 다 휴식이 필요해서 이 정도로 바깥 겨울맞이 준비를 끝냈다. 집안에도 겨울맞이 할 것들이 잔뜩이지만 우린 지쳤다. 전날 뜯어놓고 하지 못했던 세탁기 청소만 더 하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빨래를 매일 해야 하기 때문에 미룰 수가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세탁기에서 쿰쿰한 냄새가 나길래 유튜브 보며 구석구석 청소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어 신랑에게 말했더니 세탁기 앞판을 뜯어 주었다. 드럼세탁기 앞 고무패킹을 청소하기가 힘들었는데 아예 뜯어내니 안쪽까지 청소가 가능했다. 욕조에서 따뜻한 물로 불려서 시원하게 솔질해 닦았다.

많이 더러운 고무패킹. 새것처럼 닦아냈다.


뽀송하게 닦은 고무패킹을 다시 조립해야 하는 일이 남았다. 고무패킹을 잡아주는 와이어에 달린 스프링을 벌려서 끼워야 하는데 전용공구가 없으니 도무지 되지를 않는다. 신랑이 비슷한 공구를 가져와 이리저리 해보지만 될 리가 없다. 몇십 분을 고민하며 이것저것 해보다가 공구들을 조합하여 뭔가를  만들어왔다. 거의 다 돼서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마지막 2%가 안 벌어진다.


"전용공구를 사 와서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니야 이렇게 해보면 될 것 같아."


난 공구를 사 와서 해보자고 이야기하는데 신랑은 그럴 생각이 없다. 이렇게 저렇게 해보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까짓 거 힘으로!!!

신랑이 있는 힘껏 당겼더니 성공했다. 매번 놀란다.

신랑은 이런 상황에서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며칠이 걸리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있고, 2%를 채워줄 힘이 있다. 요즘 그런 말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돈으로 해결이 안 된다면 금액이 적은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봐라". 우리 신랑이 만약 실패했다면 힘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그래서인지 뭐든지 힘으로 먼저 해보려는 경향이 있어 옆에서 자제를 많이 시켜줘야 한다. 이번에는 힘 덕을 많이 봤다.

생각해 보니 분해할 때도 힘으로 했던 것 같다.

고무패킹 잘 끼워 와이어로 고정한 후 앞판을 다시 조립했다. 빨랫감 넣어 작동시켜 보니 다행히 물 새는 곳도 없고 잘 된다. 굿~


진이 다 빠진 신랑을 챙겨 함께 티타임을 가졌다. 차 한잔과 당을 채워줄 각종 먹을거리들을 먹으며 도란도란 하루를 마무리했다. 

우리 오늘 고생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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