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은한 Oct 27. 2024

가을이 갑니다.

가을을 좋아합니다.

이곳 날씨는 한국과 비슷하다.

캐나다라는 나라를 잘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던 12 . 장거리 연애를 하던 전 남자친구(현 남편)에게 카톡으로 제일 먼저 물어본 것이 날씨였던 것 같다. 약간 애매모호한 답이어서 그냥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이곳에 온 후 다행히 한국과 비슷한 계절의 흐름에 안심했었다. 위쪽지역은 엄청나게 춥고, 밴쿠버 쪽은 겨울 내내 비가 와 '레인쿠버'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지역 간 차이가 심한 넓은 캐나다지만 내가 사는 이곳은 (엄청나게 건조한 것과 시도 때도 없는 돌풍만 빼면) 봄-여름-가을-겨울이 있고 체감온도가 한국과 어느 정도 비슷하다.

기온은 여름에는 38도 정도까지 올라가고 겨울엔 영하 33도 정도까지 내려간다. 수치상으로는 한국보다 조금 과해보일 수 있겠으나 건조한 여름은 땡볕을 피해 그늘로 들어가면 살만하고, 바람이 없는 겨울은 냉동창고 같은 느낌이라 체감상으로 보면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봄, 가을은 짧고, 여름과 겨울이 길다는 점도 같다.

봄은 정말 짧아 4월 초까지 눈이 한 번씩 내리기도 하고, 5월 초에 갑자기 기온이 치솟아 반팔이 필요하기도 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봄은 지나가 버리고 여름이 불쑥 찾아온다. 그나마 가을은 짧긴 해도 확실한 존재감을 뽐내기 때문에 계절을 충분히 느낄 수 있어 참 좋다. 


지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가을의 끝자락에 있다.

동네곳곳이 물감을 풀어놓은 듯 고운 색으로 물들어있다. 올해는 아이들과 공원, 놀이터를 자주 다니며 단풍을 마음껏 감상했다. 몇 년 동안 여유롭게 가을을 느낄 새가 없었다. 이렇게도 파란 하늘과 알록달록 예쁘게 물든 나무들을 보니 마음이 설레었다.


하늘에 닿을 듯 높다란 나무 아래 가득 떨어져 있는 예쁜 낙엽들이 어찌나 아깝던지 한참을 쭈그려 앉아 양손 가득 주워왔다.

집에 와서 책 사이사이에 꽂아 놓고 다음날 잘 눌려진 낙엽들을 꺼내 첫째와 책갈피를 만들었다.

어릴 적 오랜만에 집어든 책을 읽다 지난해 끼워놓았던 단풍잎을 발견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는데,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펜으로 낙엽을 꾸며준 후 코팅을 해서 잘라내었다.

첫째가 부분에 리본을 묶고 싶어 해서 구멍 낼 자리를 남기고 자르게 했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첫째는 예쁜 책갈피가 가득 생겨 신이 났다. 나뭇잎들이 색도 모양도 제각각인데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예쁜지 모르겠다.

둘째와 셋째에게도 만들어진 나뭇잎 책갈피를 전해주니 서로의 것을 비교해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나중에 함께 꺼내볼 추억 하나가 채워진 것 같아 흐뭇하기만 하다.


이제 새벽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다. 아침, 저녁에도 많이 쌀쌀하여 겨울코트를 꺼내 입었다. 작년만 해도 이 정도 추위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추위 타는 게 다르다. 겨울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털모자와 장갑도 꺼내놔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캐나다의 추수감사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