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코스튬을 입고 가야 해서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바쁘다. 첫째는 어제 베스트프렌드인 M의 집에 가서 코스튬을 만들어 왔다. M의 아이디어로 Gnome이라는 땅의 요정 코스튬을 만들어 함께 입기로 했단다.
Gnome. 귀엽게 생긴 작은 요정이다. 땅의요정이라 그런지 마당한쪽에 장식으로 많이 놓아둔다.
전날 아이들 스케이트가 끝나고 M의 엄마가 첫째를 데려가 함께 코스튬을 만들어 보내주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도와줄 수 없기 때문에 의상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아침에 철저하게 점검해서 입혀 보냈다.
둘째는 태권도 도복을 입었다.
하고 싶은 코스튬이 없다고 안 입는다던 둘째. 혹시라도 맘에 드는 게 있을까 월마트도 가보고 달라 스토어도 가보고 온라인에서도 찾아봤지만 정하지 못했다. 본인이 입고싶지 않다면야 그냥 등교해도 좋다는 생각이긴 한데 학교 체육관에 모여 퍼레이드도 하고 기념촬영도 한다고 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그냥 보내기가 주저되었다. 이곳에서는 할로윈이 큰 행사라 간소하게라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작년에 했던 하키복장이나 이번여름 한국에서 입던 태권도복을 입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지난주까지도 코스튬 안 한다고 했던 아이가 친구들이 코스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듣더니 태권도복을 입겠다고 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사실 할로윈 의상을 구입하려면 여러모로 만만치가 않다. 맘에 쏙 드는 의상은 구하기도 힘들고 비싸기도 하다. 작년 큰 아이는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어 의상과 소품에 6만 원 정도를 썼다. 그전까지는 흰 티셔츠에 빨간 물감으로 칠해 귀신으로 변신하거나, 친척에게 물려받은 소품들로 코스튬 하는 등 돈이 거의 안 들었어서 사주기는 했는데 매년 그렇게 구입할 수는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 둘째는 매년 집에 있는 의상으로 선택하여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좋다. 이곳 아이들도 화려한 코스튬을 하기도 하지만 집에 있는 것들로 간단하게 준비하거나 달라 스토어에서 2~3천 원 정도 하는 저렴한 것들로 꾸미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일상복을 입고 오는 아이들도 있다. 정해지지 않은 각자의 방식으로 할로윈을 즐긴다.
늦기 전에 서둘러 준비하고, 반 친구들에게 나눠 줄 사탕 꾸러미들도 잘 챙겨서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많은 학생들이 각자 개성 있는 모습으로 차려입고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귀엽고 신기해 내가 더 신이 났다.
《《 학교에 코스튬을 입고 갈 때는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아이들의 얼굴을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는 퍼레이드 때만 착용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창, 칼, 총과 같은 장난감 무기들은 아예 금지되며 소지시 압수 당한다. 압수당한 물품들은 학교 사무실에서 보관하게 되며 학부모가 직접 찾아가야 한다.》》
학교가 끝난 후 우리 아이들 세명과 첫째의 베스트프렌드인 M은 다시 만났다. 늘 갔었던 집 근처 동네로 사탕을 받으러 갔다. 사탕 받기 몇 년 노하우가 쌓인 아이들 네 명은 이제 능숙하게 불 켜진 집으로 가 노크를 하고- 인사를 하고-사탕을 받고-인사를 하고 돌아온다. M의 엄마와 나는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고 있다가 집주인에게 감사인사를 한다.
사탕을 준비한 집은 불을 켜놓고, 그렇지 않은 집은 불을 꺼놓기 때문에 잘 보고 가면 된다.
보통 해기 지기 시작하는 오후 5시 반쯤 돌아다니기 시작하는데 6시에 첫째 바이올린레슨을 가야 해서 4시 반부터 돌아다녔다. 어떤 집은 첫 방문객이라고 너무 좋아해 주시면서 여러 간식들을 가득 주셨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행복한 시간이다.몇 집만 돌아도 바구니가 꽉 차 무겁기 때문에 아이들이 바구니에 사탕을 받아오면 엄마들이 따로 준비해 간 큰 가방에 옮겨 담는다. 나도 시장바구니용 큰 가방을 가져가 아이들의 사탕을 대신 받아 들고 다녔다.막판에는 아주 무거워진다.
사탕받는 아이들
아이들은 한집이라도 더 가고 싶어 했지만 한 시간 반 정도를 돌다 레슨시간이 다 되어 마무리했다. 레슨 후 집에 와서 사탕을 모두 쏟아놓고 구경했다. 제일 설레는 순간이다.
과자, 초콜릿, 사탕, 음료수, 젤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아이들은 서로 바꾸기도 하고 나눠주기도 하면서 즐겁게 구경을 한다. 아이들이 먹기 전에 혹시 모르니 내가 한번 살펴보고 3개씩만 골라 먹게 했다. 이 정도 양이면 내년 할로윈까지 먹을 수 있다. 다음 달 크리스마스 퍼레이드 때 받을 사탕들까지 합치면 2년은 먹을 것이다. 아이들은 간식을 많이 받아 좋아 하지만 엄마인 나는 건강이 걱정돼 안 먹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맛있겠다. 엄마한테도 좀 나눠주세요."
엄마도 먹고 싶다며 아이들 코 묻은 간식을 조금씩 뺏어가는 걸로 어떻게든 양을 줄여본다.
아이들이 맛있게 간식을 먹고 나서는 시원한 곳에 잘 보관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창고방으로 쓰는 위층 방에 가져다 놓게 했다. 작년에 거실 한쪽에 보관했었는데 오며 가며 늘 보이니 계속 먹고 싶어 했다. 눈에 안 띄는 곳에 놓으면 확실히 덜 먹게 될 것이다.
올해도 무사히 할로윈을 보냈다. 매년 코스튬 신경 쓰고, 반 친구들 줄 사탕 포장하고, 애들 데리고 할로윈 이벤트 다니고, 사탕 받으러 돌아다니는 게 쉽지만은 않다.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날이니 힘들어도 버틴다. 내일은 애들 학교 보내놓고 좀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