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진품명품>을 보면 집안에 방치됐던 그릇이나 그림이 엄청난 가치를 지닌 경우를 볼 수 있는데요. 얼마 전 광화문 광장 공사에서도 조선시대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서있는 땅 밑에도 어떤 옛 물건이 숨겨져있을지 모르는 거죠. 우리나라 국보들도 알고 보면 엄청난 고난과 역경을 뚫고 이 자리에 오게 된 거라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국보 이야기, 그리고 발굴 썰까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주는 도시 일부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데다 땅을 팠다 하면 유물이 나와서 개발도 함부로 못하기로 유명한데요. 때는 1973년, 국가 주도 하에 경주 유적들을 발굴해서 관광지로 만드는 개발이 한창이었습니다. 하루는 대통령 명이 떨어집니다. 경주에서 가장 큰 고분인 황남대총을 파보라는 거였죠.
길이 120m에, 아파트 7층 높이인 황남대총은 그 규모가 작은 산이나 다름이 없었는데요. 당시 명령을 받은 발굴단장 김정기 박사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당시 한국 고고학 분야는 발굴 경험도 부족했고 기술도 열악했습니다. 이미 2년 전에 백제시대 왕릉 중에 유일하게 온전히 남아있던 무령왕릉을 발견했는데요. 삼국시대의 왕릉 중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정확히 확인된 유일한 고분이기도 하죠.
4600여 점의 유물이 자태를 드러내는 역사적 순간, 게다가 특종을 잡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결국, 조사단은 보존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없이 남은 유물들을 자루에 쓸어담 듯 조사를 마쳤고, 17시간 만에 도굴하다시피 모든 유물을 끄집어냈죠
고민 끝에 김정기 박사는 꾀를 냈습니다. 황남대총 옆에 있는 천마총 먼저 파보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천마총 발굴이 그야말로 대박이 나버립니다. 역대 최고 크기의 금관, 금 허리띠, 천마도 등 국보급 유물 포함 1만 점이 넘는 유물이 나왔습니다.
그 후 황남대총도 파헤쳐집니다. 지금이라면 최소 10년 이상 걸렸어야 할 발굴이었죠. 여기서도 유물이 5만 점 이상 나왔는데요. 이후 이 발굴들은 조사와 연구의 근간을 형성하고 신라 고분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되었습니다.
교과서 필수 등장 유물 중 하나인 백제 금동 대향로. 동아시아를 다 뒤져도 예술성과 학술적인 면에서 이 정도로 크고 뛰어난 향로는 찾기 힘든데요. 이 향로는 1993년, 부여에 있는 능산리 고분군의 관람객 주차장 확장 공사를 진행하기 직전 물웅덩이 진흙 속에서 우연히 발견됐습니다. 조사해보니 그 일대가 백제 왕실의 사찰터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실 제사 때 쓸 정도로 고귀한 유물이 왜 수조 속에 묻혀 있었을까요?
학자들이 추측하기로는 삼국시대 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적국으로부터 향로를 지키기 위해서 누군가 몰래 숨겨놨을 거라고 하는데요. 그 덕에 천년이 넘도록 손상 없이 보존될 수 있었죠. 이렇게 아름다운 유물이 주차장 밑에 묻힐뻔 했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우연히 유물을 발견해서 화제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1978년, 연천 전곡리 강변에서 데이트를 하던 미국 청년 그렉 보웬은 돌멩이 하나를 보고 놀랍니다. 그것은 바로 구석기 시대의 주먹 도끼였기 때문이었죠.
당시에는 아프리카와 유럽에서만 주먹도끼를 사용했고 동아시아 지역은 석기 제작 능력이 떨어져서 구석기 문화가 없었다는 모비우스 학설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견으로 세계 고고학계가 완전히 뒤집어진거죠. 사실 그렉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발견도 안목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죠.
2009년에는 포항의 한 주민이 공사장에서 화분받침대로 쓸 돌덩이 하나를 가져왔는데요. 자세히 보니 웬 글씨가 써져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비석이었죠. 이렇게 가치 있는 유물을 발견해서 신고하면 200만원에서 최고 1억원까지 보상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천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산에서 도토리를 줍다가도 문화재가 발견된다고 하니 두 눈 크게 뜨고 다녀야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유럽 여행의 필수 코스로 박물관을 찾죠. 국내를 여행하실 때도 박물관을 찾아가보는 건 어떨까요? 의외로 멋진 문화재나 전시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