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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Nov 14. 2024

주 3일 근무하는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10월의 어느 날





한 회사를 10년 다니니 때로는 이런 날들이 있다.


직장인으로 한 달간 주 3일 근무가 가능하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ㅋㅋㅋ









단순하다. 어떻게? 연차가 많이 남아서요...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다음 해부터 15개의 연차를 받는다.

2년마다 1개씩 늘어난다. 10년 차면 20개가 된다. 여기까지는 나라가 정해준 휴가 규정이다.

이제 회사의 규정, 여름휴가 5개가 따로 있다.

연차를 안 쓰면 자연 소멸이라 꼭 써야 한다. 돈으로도 안준다. 안 쓰면 내 손해다.

회사도 연차는 뭐라 하지 않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회사 일에 지장이 가지 않는 한 자유롭게 쓸 수 있다.


10년 전에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야근에 휴일 반납에... 어떻게 다니셨나들 싶다.

까라면 까~! 연차가 어딨어? 반납하고 나와서 일하는 거지.

조금씩 바뀌어 온 회사 문화로, 다행히 지금은 '일과 쉼'이 적당히 지켜지는 것 같다.


2024년의 나날들이 슝슝 지났고, 틈틈이 잘 쉰 거 같은데도 연차가 10개가 남아버렸지 뭔가.

(2024년 내내 나는 토일, 금토일, 토일, 금토일로 격주 4일 근무를 하곤 했다.)

나만 그랬다면 욕을 먹었을 텐데, 팀 내 모든 사람들이 다 연차가 가득가득 남아버렸다.

연차 소진을 위해 시원시원하게 써보기로 했다.

더욱이 10월은 법정 휴일도 많았다. (+3일)

언제 쉬는 게 편하세요? 그럼 회사 업무에 지장가지 않게 서로 쉬는 날이 겹치지 않게 해 볼까요?


그렇게 나는 '목금토일' 쉬고, 다른 팀원은 '토일월화'를 쉬기로 했다.

한 달 동안. ㅋㅋㅋ 팀의 모두가 그렇게 쉬니 불만이 없다.

한 사람만 빼고 ㅋㅋㅋ 옛날 '라테는 말이야'를 기억하는 지점장님 정도랄까.





시간을 가득 채우는 J(계획형) 성향이라 약속을 잡아보았다.

여행을 좋아하던 옛날 같았으면, 아예 10일 쭉 쉬어서 해외를 나갔을 것이다.

지금은 여행을 가지 않기에 그렇게 장기간의 휴일이 의미가 없었다.


가족들과 저녁을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났고, 친구들과 수다 떨며 일상을 보내는 시간이 가득했다. 날씨 좋은 10월이라 가만히 있어도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살랑 불었다. 친구들과 다양한 팝업 스토어를 가기도 했고(브런치 팝업 스토어도 다녀왔다!), 지역 축제에서 옹기종기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회사에서 복지처럼 제공하는 관심 있는 교육을 들으러 가기도 했고, 격주에 한 번씩 받는 피부 관리, 핸드폰을 반납하고 주말을 가득 채운 템플 스테이, 건강 검진처럼 나를 위한 시간도 보냈다. 특히 글을 정말 많이 썼는데, 브런치도 그렇지만 지역 홍보, 회사 교육 후기 등등 각종 다양한 기회도 생겼다.




많은 활동으로 가득 찬 내 주말 일상 덕분에 마치 내가 지금 회사를 다니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마음이 여유로워지니 오히려 쉬고 있는데 회사로부터 어쩔 수 없는 연락이 와도 친절하게 받아주게 되었다.

입사 초기에 쉬는 것도 눈치 보며 못 쉬던 날은 마음이 날카로워서 쉬는 날 연락을 두려워했었는데...

어느덧 10년이 되며 짬이 생기니 웬만한 일은 강약 조절이 되어 내 손아귀에서 쥐락펴락 할 수 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은 상사의 (본인이 급해서 내게 쏟아내는) 감정과 행동 정도랄까.


그렇게 나는 10월 동안 '신의 직장' 코스프레를 했다. ㅋㅋㅋ





사주를 공부했으니, 조금만 풀어보자면- (믿거나 말거나 끼워 맞추기 일 수도 있다.)

2024년 10월은 내게 10년마다 바뀌는 대운 + 올해 청룡 갑진년 + 월마다 바뀌는 세운이 겹치는, 그야말로 청룡 3마리가 내게 뛰어든 달이다. 이렇게 트리플이 흔치 않다.


사실 내게 청룡은 '상관견관'이라 좋은 달은 아니다. 정관(여자에겐 남편, 직장 등 안정적인 울타리)을 상관(혁신, 개혁, 표현력)으로 깨버리는 것이니 마치 스티브 잡스 같달까. 하지만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내겐 바라지 않는 스타일인 것이다. 무서워 ㅠㅠ


그래서 10월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안정적인 울타리가 깨질 텐데 어떡하지...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우선 놀랍게도 4년간 안정적으로 다니던 필라테스가 갑자기! 며칠 만에! 폐업했다... 충격이었다. (정관 -1) 회사 연차가 많이 남아서 빨리 소진하려 쓰다 보니 주 3일 근무가 되었다. 회사를 다니되 다니지 않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정관 -1) 만약 평소처럼 회사를 다녔으면 까칠해져서 대들다가 윗사람과 트러블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2박 3일간 핸드폰 없이 템플 스테이로 속세를 벗어나기도 했다. 종교에 갑자기 속하게 되었달까. (정관 -1)


믿거나 말거나 끼워 맞추기 일 수 있다. 정말... 하지만 청룡 3마리는 생각보다는 다행인 모습으로 지나갔고, 그런 변화는 내게 삶의 변화 같은 즐거움을 주었다. 사주를 공부하면 좋은 게, 이번 달처럼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할 수 있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주의 묘미랄까.




변화하는 소소한 일상에 참 감사하다. 예측하고 통제할 수 없는 변화는 스트레스를 동반하지만, 결국 마음가짐이랄까.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같은 일도 주어지는 충격이 다르다. 어차피 지나가는 일상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여유롭게 지나가길 바란다.


기가 막히게도 필라테스를 한 달 강제로 쉬고 나니 몸이 너무 찌뿌둥해져서 11월엔 다른 곳에 등록하게 되었고, 회사도 연차를 많이 소진해서 다시 5일 근무로 돌아갔으며, 직장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는 무료한 일상이 다시 돌아왔다.



우리나라도 더 쉼이 많아지기 바란다. OECD 최장 근로시간... 국력이 인적 자원뿐인 나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인가 싶지만, 사실 "쉼"으로 생기는 개개인의 마음의 여유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너그러움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2024년 10월.. 너무 좋았던 순간들이다. 가을의 맑은 하늘과 더불어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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