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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니엘 Jan 30. 2024

막내가 파트장이 되었습니다

다이내믹 회사 이야기


발령이 났다. 옆 동네 B지점으로.


우연찮게도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적당한 업무 강도, 무난한 인사고과, 집이랑 멀지 않은 곳, 내가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 등등 모든 것이 적당히 어우러졌다고 생각한 지점이었다. 이것이 바로 시크릿(Secret 책이름)~ 바라는 대로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것인가! 


기존에 몸 담았던 A지점은 직주근접과 정시 퇴근으로 든든했다. 걸어서 다닐 수 있는 직장의 장점은 엄청났다. 퇴근하고 바로 운동을 다녀와도 전혀 부담이 없었다. 마음이 편하니 일도 여유가 생겼다.


발령이 난 곳은 지하철로 한 번에 앉아갈 수 있으나 앞뒤 걷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한 시간이 걸렸다. 난 지하철에서 책을 보니까 괜찮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평상시 책 읽는 시간을 만들기 어려운데 매일 30분*왕복 2=1시간의 독서 시간이 생겼다. 운동도 빠듯하긴 하지만 틈내서 할 수는 있다.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다.






새로 발령받은 B 지점에서도 나는 막내였다. 늦게 대리가 되었지만 직급 적체로 지점 대리는 차고 넘쳤다. 회사 평균 연령이 40세를 꽤 넘었으니 30대 중반인 나는 본사를 제외하면 어느 지점을 가도 막내였다.


기존에 하던 업무를 하거나, 발령 난 다른 직원의 자리를 내가 메꿀 거라 예상했다. 30~40대로 이루어진 팀원들. 나도 10년 차 짬밥이니, 어디든 할만할 거라고 마음먹어본다. 새로 시작하는 B지점의 회의 시간이 되었고, 얼굴을 익히며 서로 인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안녕하세요. 부니엘입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A지점과 B지점은 전통적으로 서로 자주 발령이 나는 것 같아요. 그 계보를 잇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짝짝짝. 나의 자기소개가 끝나고, 회의 자리에서 지점장님은 자신이 머릿속으로 구상하였던 팀 내 보직을 통보하셨다.


"부니엘 대리는 X팀 파트장을 하도록 해요."


웬걸. 일개 담당이 아닌 파트장의 자리를 하라는 지점장님의 지시. 직급은 대리지만, 직책은 파트장이다.


주변을 보니 기존의 직원들도 몰랐는지 다 같이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나로 인해, 기존의 파트장은 담당이 되었다. 지점장님이 왜 그런 결정을 내리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얼떨결에 나는 파트장이 되었다.


나의 직무 이력을 보셨을까? 내 평판에 대해 들으신 게 있을까? 팀 내 변화가 필요했을까? 온갖 궁금증이 드는 가운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가 할 일은 파트장의 업무에 빨리 적응을 하고, 나로 인해 변화가 생긴 다른 직원들에게 미움을 사지 않는 것이다.






생글생글 :)

누구든지 보이면 활짝 웃으며 인사를 먼저 한다.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다가가서 도와준다. 만약 도와주지 못하더라도 말이라도 언제든 도움의 손길을 내밀도록 제스처를 취한다. 문제점이나 제안점은 편안하게 말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든다.


나이도 어리고 앳되어 보이지만, 내 위치를 공고하게 만들고 싶다. 기존 사람들이 맺어놓은 관계도를 읽고 내 위치를 찾는 것, 그러면서도 구설수 등에 의해 나의 존재가 흔들리지 않게 단단히 자리 잡는 것은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어려운 부분인 듯하다.

 

다행히 10년 동안 여러 직무를 구르며 배운 짬밥은 나를 지켜주고 있는 듯하다. 그간 배울 때는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며 힘들었는데, 지금 보니 일찍 경험한 게 괜찮은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결합되어, 어려울 줄 알았던 파트장 직무는 생각보다 편하게 다가온다. 묵직한 책임감 속에서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을 느낀다. 탄탄하게 다진 기본기는 적응력을 주었다.


한 발짝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것 같다. 이번 파트장 발령으로 대리로서 지점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업무의 끝이 보인다. 결정을 내리신 지점장님께 감사하다.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이 후회되지 않게 노력하는 것, 동시에 스트레스를 조절하며 삶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이제 내가 가질 마음가짐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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