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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Jan 18. 2023

1n연차 중병 치유 중입니다.

내려놓는 연습 중

직장 생활 1n 연차, 사회생활 처음 시작부터 난 편하게 일해본 적이 없었다. 좋게 말해서 일복이 많았다. 워라밸은 이웃 나라 이야기인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곤 했으며, 때로는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기도 했다. 한창 인터넷에 월요병을 치료하려면 일요일에 출근하라는 사진이 돌아다녔었다. 사회생활을 하기 전에는 누가 저런 실없는 소리를 하냐며 비웃었는데, 내가 막상 몇 년 그 사진의 내용을 손수 실천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명언이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날은 외근하고 밀린 일을 하려고 회사로 복귀하는데 업무를 마치고 회사 헬스장에서 운동까지 한 후 집에 돌아가는 동기와 마주치기도 했다. 나는 야근하고 있는데, 친구들은 저녁에 만나 신나게 놀고 있다고 할 때 나는 왜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있는가? 나는 왜 계속해서 일이 있는 거지? 속으로 반문하며 대부분이 퇴근해 껌껌하고 적막한 사무실에서 저녁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점점 면역력이 저하되어 몸 여기저기 염증이 생기고,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오던 몇 해 전 어느 날, 진지하게 회사 생활을 되돌아보았다. 돌아보니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회사 이메일을 체크했던 나는 샤워를 하면서도 아침에 일어나서 본 이메일과 그날 해야 할 업무를 생각했다. 출근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회사 관련 뉴스를 보고, 웹사이트를 들어가 보며 이메일을 수시로 체크했다. 퇴근해서, 그리고 일을 하지 않는 주말에도 습관적으로 이메일을 체크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고 일주일 내내 나의 모든 생각은 업무에 매몰되어 있었다. 나는 시키는 일은 뭐든지 하겠다고 하는 yes 걸이였다. “그거 제가 할게요! 다음 주 초까지 완성하면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시키는 업무를 다 받아 놓고,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퇴근하며 힘들게 해냈다는 이상한 성취감에 도취해 있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고요하게 들리는 키보드 타자 소리를 은근히 즐겼다. 야근하거나 주말에 나와서 일할 때, 윗사람들에게 수고한다는 말을 들으면 묘하게도 보상받는 느낌을 받고는 했다.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나는 일중독, yes병, 호구병, 성취병에 걸린 변태 환자였다.


스스로 나의 문제를 진단하고 난 후, 나는 그 많은 병을 치료해 보려 노력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 퇴근 후와 주말에 이메일 시스템을 들어가지 않으려 노력했다. 주말에 이메일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순간, 난 그 상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었다. 사실 정말 급한 일이면 전화나 메신저로 나를 찾을 것이라고 의식적으로 되뇌며 퇴근 후 이메일을 열지 않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항상 야근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업무 시간을 어쩌면 더 비효율적으로 썼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최대한 저녁에는 일부러 약속을 잡거나, 독서 모임을 하거나 글쓰기 모임처럼 일찍 퇴근할 구실을 만들었다. 무언가 다른 일이 있어야지 내가 야근을 당연하다 생각하지 않고, 업무 시간 동안 더욱더 집중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근을 아예 없앨 수는 없었지만, 새벽에 퇴근하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퇴근 후 만든 저녁 일과는 나의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어 줬다. 지인들과의 저녁 식사, 글쓰기나 독서 모임은 회사 밖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나를 그동안 몰랐던 회사 밖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이런 일상의 활력은 내가 피곤해하지 않고 아침에 운동도 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회사에서 소위 잘 나가는 것, 승진이나 인정에 대한 욕심도 조금 내려놓았다. 어차피 내가 아등바등한다고 승진은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윗사람들의 회식 자리도 거절할 땐 거절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고, 내가 현재 할 수 없는 업무는 억지로 받지 않았다. 마음을 조금 비우고 나니, 더 시간적, 심적 여유가 생겼다. 회사에 매몰되어 있던 내가 남에게 도움을 주고자 퇴근 후 시작했던 상담학과 수업은 오히려 내 안에 있던 문제들을 치유했다. 집에만 들어오면 씻고 바로 침대에 쓰러지기 일쑤였던 내가 이렇게 글을 쓰거나 책을 보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염증투성이었던 몸도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이놈의 일중독, yes병, 호구병, 성취병이 완벽히 완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병들이 호전되면서, 회사 생각으로 24시간으로 모자랐던 나의 삶도 조금씩 바뀌었다. 회사 밖 세상은 넓고 아름답다. 이 넓고 아름다운 세상을 즐기기 위해 나는 일하고 있다는 것을, 회사 밖 세상을 온전히 즐기기에도 시간은 모자라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가고 있다.


Photo by:

unsplash/@jannerboy62(Nick Few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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