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상상력을 닮고 싶다. 반만 이라도.
몇 년 전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들의 세계>라는 책이 한창 인기를 끈적이 있다. 저자가 독서교실을 운영하면서 만난 어린이들의 이야기인데 상상력도 순수함도 풍부한 아이들의 이야기에 참 몰입감 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제 내 친구들이 슬슬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낳기 시작하니, 나는 해나의 이모, 하준이의 이모, 아윤이의 이모, 채린이의 이모 정말 많은 아이들의 이모가 되어버렸다. 아이들은 쑥쑥 자란다. 몇 달에 한 번씩 만나면, 어느새 기어 다니고, 어느새 걷고 있고, 어느새 말하고 있고, 어느새 한글을 읽기 시작한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의 이모가 되어보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한 뼘씩 커 있는 아이들의 성장도 성장이지만, 아이들의 순수함에, 때로는 상상력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것보다 놀라운 건, 아이들의 기억력이다. 어떻게 그 어른들도 외우기 힘든 공룡 이름을 술술 다 꿰고 있는지.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조카 하준이의 이야기다. 하준이는 한참 공룡에 빠져 공룡 티셔츠, 공룡 책, 공룡 모형 등등 공룡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는 네 살 꼬마다. 하루는 내 친구에게 이랬더란다. "엄마, 등이 간지러워요. 티라노사우르스처럼 긁어주세요!." 다들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가? 우리가 흔히 본 티라노사우르스의 그림을 보면 어떻게 긁어달라는지 알 것 같다.
한 번은 한 손에는 페이스 캡을 붙들고 한 손으로 파마머리에 스프레이를 뿌리는 할머니에게, "할머니, 프로토케라톱스 같아요!"라고 했단다. 그 말을 들었던 모두가 어리둥절 해서 프로토케라톱스는 또 무슨 공룡인가 찾아보니 머리 위에 페이스 캡을 거꾸로 한듯한 프릴이 있었다고 한다. 정말 아이들의 상상력은 엄청난 것 같다.
오랜만에 하준이와 하준이 엄마를 만난 어느 날, 말로만 들었던 하준이의 공룡 사랑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카페에서 친구와 나는 수다를 떨고 있었고, 친구 아들은 혼자 공룡 모형들을 가지고 있었다. 우연히 카페 밖에 키가 큰 모델 같은 여자가 지나가자, "저 여자 키 진짜 크다. 한 180 되는 것 같지?" 하며 우리끼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준이가 대뜸, "저 아줌마 브라키오사우르스보다 커요?"라고 물었다. "브... 뭐?" 다행히 친구가 "브라키오사우르스보다 큰 사람은 없지요!"라고 말해줘서 망정이지 얼마나 진땀을 뺐는지 모른다. 요즘 하준이의 머릿 속이 공룡으로 꽉 차있던 것은 알았지만, "우와 이 정도의 몰입력이라고?"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이들은 엄청나다. 그 머리도, 그 상상력도. 아이들을 통해 오늘도 한 수 배운다. 아이들 덕분에 평생 모르던 공룡들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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