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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로움 Feb 22. 2023

얼어 죽을 연애 따위

그래도 하자 이제는.


연애 같은 거 안 해도 상관없는데, 그딴 거 아니어도 내 인생 충분히 바쁘고 피곤한데, 근데 어떨 땐 초라해진단 말이야. 어느 정도 나이 먹은 뒤론 날 좋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나한테 하자 있는 것 같다고... 아무도 나한테 애를 안 쓰니까. 어느 순간부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넌 이게 어떤 기분인지 몰라
(얼어 죽을 연애 따위, 1회 中)

얼마 전, 친구 유미를 만났을 때였다. 한 1년여간 만난 연인과 이별을 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TV에서 우연히 본 이 드라마의 이 대사를 듣고 숨이 턱 막혔다고 했다. 유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장면을 나도 찾아보았다. 저 대사를 말한 드라마의 여주인공 '여름'은 마침 우리와 같은 나이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PD로 나온다. 그러다가 썸을 탔던 남자에게 차이고, 남사친인 남주인공이 왜 애매한 사람들한테까지 애쓰냐고, 가볍게 하라고 이야기하자 여자 주인공이 말하는 대사다.

얼어죽을 연애따위 공식 포스터

여름의 대사에 너무나도 공감이 갔다. 20대에는 결혼을 빨리해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던 나였다. 하지만 몇 번의 연애 실패 끝에 삼십 대가 되어버렸고, 이것저것 한답시고 바쁘게 지내다 보니 어느새 굳이 연애나 결혼은 안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연애를 하지 않아도 내 삶은 꽉 차있다고 생각했다. 연애, 결혼 그거 꼭 해야 하냐고. 얼어 죽을 연애 따위 내 인생에 없어도 상관없다고.


그런데 뭐랄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연애를 넘어 결혼을 하고, 결혼을 넘어 육아를 하고 있으니 그들만의 리그에 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내가 뒤쳐져도 한참 뒤처져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요즘 많이 든다. 어쩌다가 간혹 있는 소개팅에서 내가 마음에 전혀 안 드는 사람은 나를 마음에 들어 할 때, 혹은 내가 마음에 드는사람이 나를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때, 왜 이렇게 나만 이렇게 연애가 힘든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나마 있던 소개팅도 슬슬 끊기고, 정말 이런 내가 큰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닌지 자존감이 확 낮아지는 순간도 나이가 들면 들수록 그 빈도가 더 자주 잦아진다.


늦은 밤 혼자 집에 갈 때, 아니면 회사나 일상생활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을 때, 누군가에게 한참 이야기하고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막상 전화번호를 뒤적여있을 때 그럴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조금 울적함을 느낀다. 드라마 속 주인공 여름의 대사처럼 어느 순간부터 나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게 비참까지는 아니어도 씁쓸해진다. 주말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바깥에서 바쁘게 보내거나, 집에서 혼자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다가도, 친구들 말고 특별한 그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요즘 자주 든다. 나의 하루를 궁금해하고, 나를 궁금해주는 사람, 나와 같이 행복해하고, 나와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람. 이제는 얼어죽을 연애따위를 해야할 시기가 온 것 같다. 애쓰지 않아도, 만나게 될 수 있으면 좋겠다.


Photo by Everton Vila on Unsplash

               디지털 | ENA [엔터테인먼트 DNA] (skylifetv.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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