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이로움 Feb 24. 2023

Color in your life

내 인생의 색깔은?

한 달 전, 프랑코 폰타나라는 이탈리아 사진작가의 전시회를 간 적이 있다. 121여 점의 그의 작품들은 마치 회화작품이라고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색채와 구도의 대비가 뚜렷한 컬러 사진들이었다. 그 화려한 색채에 이끌려 작품들을 감상하다가 우연히 그의 인터뷰를 보았다.


여전히 내게는 인생을 생생히 살아가도록 하는 유년기의 기억이 있습니다.그것을 상실하고는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늙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이 다릅니다.

-프랑코 폰타나의 인터뷰 중-


마침 전시회는 평일 오전이라 한산했고, 나는 그 인터뷰가 반복적으로 틀어지고 있는 방 안에 앉아 혼자 골똘히 생각해내려 애써봤다. 나의 유년기의 기억을 말이다. 매일 매일 하루하루를 하루살이처럼 살아내느라 잊고 있었던 그 기억들.


나의 유년기는 프랑코 폰타나의 사진 작품처럼 화려하고 밝았다. 마치 색깔로 표현하면 그림자는 없고 채도는 높은 그런 환하디 환한 색깔.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고, 부족한 것 없이 자랐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배울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읽을 수 있었고, 내가 원하는 것은 가질 수 있었다. 나는 밝고 환하게 빛났고, 나에게 세상은 선명하고 찬란한 무지개 색깔이었다.

프랑코 폰타나 <펠레스트라나>


학창 시절을 탈 없이, 교우관계도 탈 없이, 취직도 탈 없이 직장을 잘 다니고 있던 내가 이 세상이 일곱 빛깔 빨주노초파남보의 환한 무지개 색깔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20대 후반이었을 때였다. 집 안의 가세가 갑자기 기울었고, 그렇다 보니 집 안의 분위기도 우울해졌다. 내가 집 안의 가계를 책임져야 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이상한 상사 때문에 나의 직장 생활은 힘들어졌다. 이전의 나라면 직장을 바로 그만 관두고, 천천히 미래를 고민해보겠다고 했겠지만, 당장 내가 회사를 관두면 가족들의 생계가 곤란해질 위기였다. 그 시기에 진지하게 미래를 그려왔던 연인과도 헤어졌다. 굴곡이 평탄했던 내 인생 그래프에 그렇게 큰 굴곡이 생겼다. 무지갯빛 환했던 내 인생에 그렇게 내 인생의 조금의 그림자가, 조금의 탁한 색상이 섞이기 시작했다.


프랑코 폰타나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이가 드는 것과 어른이 되는 것은 달랐다. 사회적인 나이가 나의 속사람의 나이와 비례하지 않았다. 세상 물정 모르고, 나만 알았던 내가 조금씩 철이 들면서 어른이 되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지갯빛 이외에 다른 색상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겉 사람은 26살이었지만, 속사람은 철부지 15살이었던 내가 비로소 그제야 조금씩 겉 사람의 나이에 맞게 살아가고자 노력해야 했다.


힘들고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그러한 인생의 위기에서 나를 건져내 주었던 것은 유년 시절의 기억이었다. 금방 그때처럼 나아질 수 있다고, 금방 우리 집의 분위기도 다시 밝아질 것이라고, 금방 다시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기나긴 암흑 속의 터널 같았던 나의 20대 후반에, 그런데도 나의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유지하게 했던 것은 유년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이었다.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면서 내 인생의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인생이 무지갯빛처럼 찬란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20대 후반에 되어서야 알게되었고, 그제야 나는 어른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글을 (간혹) 쓰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