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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un 08. 2021

미움받는 며느리가 행복하다(2)

2. 그들이 내 숨을 조른다

미움받는 며느리가 행복하다

2. 그들이 내 숨을 조른다





 일본에서는 시부모라 해도 아들 집에 자주 오지는 않는다. 아들 집이기도 하면서 며느리 집이기 때문이다. 명절에 가족이 모인다 해도 며느리가 시댁에 오랫동안 머무르는 것을 꺼리며, 며느리가 시부모를 어려워하는 만큼 시부모도 며느리를 어려워한다.



 시부모님이 아이를 보러 집으로 오셨다. 역시 아들 집에 오시면서 며느리 불편할까 봐 본인들 수건까지 챙겨 오셨다. 결혼 후 프리랜서인 아들의 일이 잘 풀리지도 않고, 육아휴직을 1년 정도로 생각하는 일본 산모들과는 달리 출산 3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하는 며느리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드신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노력해온 커리어를 포기하고 싶지 않을뿐더러  회사 소속감도 버리고 싶지도 않아 일을 빨리 시작하는 것뿐이라 말씀을 드렸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조심해가며 시간을 보냈다.



 아버님이 시댁으로 내려가신 후, 어머님은 우리를 식탁 앞으로 앉히신다.



 “너는 왜 귀화를 안 하니? 네가 귀화를 한다고 하면 우리는 너를 끝까지 책임질 거다. 정말로 귀화할 생각이 정말 없는 거니?” 귀화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나는 한국인이며, 내 부모님의 자식인 것이 자랑스럽다. 한국인으로 태어나 내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행복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왜 국적을 바꿔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네가 한국인이어서 아이가 이중국적자가 되어버렸어. 여기는 일본이야. 엄마가 한국인이면 아이는 괴롭힘을 당할 것이고 내 아들은 출세를 못 할 거야. 그런데도 너는 왜 귀화를 안 하려고 하니? 다른 목적이 있는 거니? 이혼이라도 해서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가면 우리 아들은 어떻게 하니?” 시어머니의 말에 혼란스러웠다. 왜 우리의 아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거며, 내가 왜 이혼을 해서 아이를 데리고 한국으로 간다는 걸까. 내가 지금 막장 드라마라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다음 대사는 귀화 안 할 거면 당장 우리 집안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치며 재벌 시어머니는 돈 봉투를 내 얼굴에 던질 것이다. 하지만 막장 드라마처럼 시댁은 재벌도 아니며 돈봉투를 던지는 일도 없었다. 대신 아버님의 의견을 전하겠다며 편지 한 장을 꺼내셨다.



 “네가 우리말을 무시하고 한국에서 출산한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시부모의 말을 어기는 너를 이해할 수가 없구나. 네가 귀화하겠다는 의향이 있다면 우리는 네가 귀화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며 딸처럼 보살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지금 귀화를 하지 않겠다면 네가 나중에 귀화할 마음이 생겼다 해도 우리는 귀화하는 걸 평생 용납하지 안 겠다. 지금 안 하겠다면 앞으로 절대 귀화해서는 안 된다. 만약 귀화한다면 네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것으로 간주하겠다. 아이가 이중국적을 갖는다는 거는 아이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귀화하지 않겠다면 너는 우리 호적에 올린 채로 더는 아이를 낳지 말아라. 평생 귀화를 하지 않겠다는 것과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거라. 각서를 쓰지 않는다면 다른 의도로 내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간주하겠다.”



시어머니는 담담하게 편지를 읽어 내리시고는 종이 한 장과 볼펜을 꺼내신다. 내가 맞닥뜨리고 있는 이 상황이 현실인 걸까. 이 편지가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부모가 쓴 것일까. 아버님과 남편은 오래전부터 서로 대화도 없이 평행 선상에 있었다. 하지만 설마 어머님까지 이러시다니 믿어지지 않았다. 편지 내용이 아버님만의 생각이 아니라 어머님도 그렇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자 어머님은 한참을 주저하시다 두 분의 생각이니 각서를 꼭 받아서 집으로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신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이게 지금 사람이 할 소리예요?” 남편은 벌떡 일어나 눈을 부릅뜨고 자신의 얼굴을 어머니 쪽으로 들이대며 소리를 친다. 항상 조용하고 다정다감했던 남편이 흥분하자 놀란 마음에 남편의 팔을 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얼굴이 벌게진 남편이 낯설기만 하다. 남편은 떨고 있는 손으로 내 손을 잡으며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인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시라 말씀을 드린다. 본인 아들이 자신의 편이 아닌 것에 배신감이라도 느끼셨던 걸까. 어머니는 화 한번 내지 않던 온순한 아들이 세뇌당했으니 그런 아들을 본인이 끝까지 지켜내겠다 하시며 나를 노려보신다. 거짓말 같은 이 상황에 내 머릿속은 멍해져 갔다.



 멀찌감치에서 곤히 자는 우리 아이는 예쁘기만 하다. 아이 옆에 눕고만 싶었다. 이대로면 어머니는 절대 댁으로 돌아가지 않으실 거다. 각서를 써드린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의 강요로 작성된 각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각서를 써드리고 막장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각서를 쓰겠다고 어머님께 말씀드리니 어머니는 또 다른 요구를 하셨다.



“각서를 써준다니 고맙구나. 또 하나 우리의 제안이 있다. 아이의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 이 이상 너희에게 아무런 상관도 하지 않겠다. 그러니까 국적을 포기하겠다 약속하거라.”



시부모님의 명령을 따르면 그들은 또 다른 명령을 하며 그 명령을 제안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느 날은 우리 아이가 친자식인지 DNA 확인서를 달라고 하시다가, 어느 날은 결혼 당시 친정엄마와 내가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 친엄마가 아니라 연기를 하는 사람일 거다 억지를 부리시기도 했다. 내가 지금 일제강점기에 사는 걸까. 그 옛날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강요에 지쳐 창씨개명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악몽 같은 혼란 속에서 빠져나오고 싶었다. 평온하던 내 생활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 저를 낳아주시고 이렇게 건강히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지만 이제 저를 놓아주세요. 저희는 저희가 열심히 살게요.” 남편의 목소리가 떨린다. 어머니는 남편의 말에 현관문을 나서며 누구나 한 번은 인생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니 너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주저 말고 본가로 돌아오라고 하신다.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은 어느 쪽일까?

집 앞을 나가면 외국에서 일본으로 주재 나온 가족들이 많다. 집 근처 공원에는 영어 중국어 많은 언어가 들리며 회사에서는 한국어 영어 일본어가 뒤섞인다. 그 누구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강조하는 사람도 없으며 나는 그들의 동네 주민 중 한 사람일 뿐이며 직장동료일 뿐이다. 이것이 내가 알로 있는 지금의 일본 생활이다. 어쩌면 내가 알고 있는 일본이 극히 일부분이고, 시부모님이 말하는 한국인의 아이는 반드시 괴롭힘을 당하는 일본이 지금의 일본일 수도 있다. 5년 후 아니 10년 후 시부모가 우려하듯 우리 아이가 이중국적자여서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내 아이가 건강히 자랄 것이며 괴롭힘을 당하는 순간이 온다 해도 현명하게 극복할 거라 믿는다.



 그 후로도 시부모의 요구는 계속되었다.

한 가지에 답을 드리면 며칠 후 또 다른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시부모에게서 벗어난다는 건 남편과의 인연을 끊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가끔은 그러고도 싶었다. 아이를 안고 텔레비전을 보는 남편을 보면서 저 사람한테서 벗어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텐데 아이 데리고 한국으로 가버릴까. 시부모가 원하는 시나리오대로 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시부모의 망상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들 세계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나 보다. 시부모는 내가 어떤 말을 해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명령을 어기고 한국에서 출산했을 때 이미 눈 밖에 난 괘씸한 며느리였다. 자기 아들보다 잘나서 아들의 출세를 막는 며느리이며 외국인인 주제에 일본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는 얌체 며느리이다.



 시부모의 세계를 넘나드는 사이에 몸무게가 한 달도 채 안 되는 동안 5킬로나 줄었다. 시부모님 덕분에 출산 전 몸무게로 돌아갈 수는 있었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매일 아침 회사로 출근하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으며 밝은 모습을 연기한다. 웃는 내가 가짜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시부모를 잊을 수가 있어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안도의 순간도 잠시. 시아버지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회사로 연락하기 시작했고 어느 날은 회사로 들이닥치셨다. 본인 며느리에게 문제가 많으니 고소를 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회사에 폐를 끼치게 되니 미리 인사를 드리러 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퇴근 시간까지 회사 앞에서 기다리겠다 도망가지 말라 엄포를 놓으셨다. 귀화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고소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숨이 차오른다. 마치 수영장에서 숨을 꾹 참은 채로 25m 아니 30m 자유형을 한 것처럼 답답하다. 회사 앞에 서 있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보였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이유로 나를 협박하시려나 겁이 나 손이 떨려왔다. 절대 부모님과 단둘이 만나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남편의 말이 떠올라 고개를 푹 숙인 채 건물 밖으로 몰려나가는 인파에 묻혀 모른 척 시아버지를 스쳐 지나쳤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답답하고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유서라도 쓰고 내가 죽어버릴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 써두면 그들은 잘못을 깨닫게 될까? 오래전 나는 자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고 남편에게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누가 괴롭히면 복수를 해야지, 왜 당하고만 있느냐며 나라면 괴롭힘을 당하지도 않겠지만, 만약 당하게 되면 배로 갚아줄 거라 당당히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이런 나의 자만과 교만이 이 상황을 초래한 걸까? 누구나 일방적으로 몰리면 죽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신은 내 자만과 교만을 벌하기 위해 이런 시련을 주신 걸까.




<<다음 글: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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