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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라 Jun 29. 2021

미움받는 며느리가 행복하다(3)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미움받는 며느리가 행복하다

3. 이제는 결정해야 한다






 착한 딸, 다정한 아내, 좋은 며느리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서부터 틀어진 걸까. 그분들이 이 세상에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 어느 날은 모든 걸 포기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가버리고 싶다가도, 어느 날은 내 기억 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리고도 싶었다. 딸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을 하면서도 그분들의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이와 함께하는 이 소중한 시간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부정적인 생각만 하는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이제 난 벗어나야 한다. 그들 때문에 흔들 려서도 내 삶을 망가뜨려서도 안 된다. 이제는 결정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나는 지금껏 나 자신을 착하고 진실한 사람이라 단정 짓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 것 같다. 왜 착하게 살고 싶었던 걸까. 분명 부모님과 남편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혼하면 시부모님께 사랑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내가 막장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시부모님께 미움을 받고 있다. 지금껏 당당히 웃으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시부모라는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든다. 미움받는 사람이라는 수치와 시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는 나쁜 며느리라는 죄책감이 마음 한구석에 숨어서 나를 괴롭힌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니 당당히 살자 몇 번을 다짐해도 마음의 상처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남편은 하루하루 불면증에 시달리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상담을 받아보자고 한다. 상담을 받고 내가 전처럼 웃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퇴근 후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대기실에 앉아 시부모님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떠올려본다. 시아버지의 편지를 떠올리자 다리가 후들거린다. 며칠 전 지인에게 이 상황을 털어놓자 가족을 위해 시부모의 말대로 귀화해서 참고 살라 한다. 어쩌면 다른 사람에게는 귀화가 간단한 문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개를 떨군 채 진료실 안으로 들어섰다. 꾹 참아왔던 긴장이 한순간에 풀린 탓 인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내 울음이 멈추지 않자 선생님은 따뜻한 차를 한잔 내주신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생전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께 속 시원히 해버렸다. 아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인데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의사 선생님은 불면증 약은 처방해 줄 수는 있지만, 상담할 곳을 잘못 찾아왔다고 한다. 병원이 아니라 변호사를 찾아가 해결하고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내 상태가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거다. 선생님의 말씀은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준 것만 같았다. 나는 그 후로도 여성 문제, 인권상담을 받으며 조금씩 치유되어 갔다. 카운셀러들은 한결같이 시부모를 이해시키려 노력하지도 말라한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인생을 마음대로 휘두를 수는 없다는 것이다. 시부모의 말을 따르지 않는다는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그들에게 휘둘리지는 않는다.

미움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만은 않았지만, 용기를 내어 미움받는 며느리로 살기를 선택했다. 나를 버리고 사랑받는 며느리가 되는 대신, 당당히 그들의 미움을 받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다. 또다시 나를 비방하더라도 그들에게 어떠한 해명도 하지 않을 것이며, 일어나지도 않을 걱정과 우려 때문에 지금의 나를 바꾸는 일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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