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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여정 Dec 08. 2021

아내에겐 남편의 육아휴직이 필요하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하는 동료들의 이야기를 하는 횟수가 잦아도 나와는 별개로 생각했다. 그동안 남편은 휴가도 쓰지 않고 연가보상비로 받았었다(요즘은 그렇지 않다). 여름에 피서 갈 필요가 없는 시원한 사무실에서, 겨울에 얼굴이 벌개질 정도로 따뜻한 사무실에서 지낼 수 있는데 굳이 더위와 추위에 맞서는 휴가를 쓸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대부분 6시면 퇴근이 가능하고 휴가를 돈으로 준다는데 쓸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런데! 육아 휴직 카드를 사용하다니! '음~ 불성실해~' 생각했다.


평생 경제적 가장이었던 엄마를 보며 결혼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건 ‘책임감’ 이었다. 첫째 출산 후 재택근무와 육아로 성차별과 불평등함에 분노하면서도, 아이를 업고 일하러 다니는 억척스러움을 감당했던건 남편의 ‘경제적 책임’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돈 벌어오는 존재로 생각했다. '암~ 돈이 있어야 행복할 수도 있지!'라며. 금액은 상관없었다. ‘많이’ 가 아니다. 일정부분 '경제적 책임감’ 이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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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남편은 육아휴직을 했다. 물론 나와 동의하에. 


육아휴직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된건 첫째 ‘아이들과 온전히, 아이들만을 위한 시간’ 을 갖고 싶다는 말 때문이었다. 결혼 생활에서 책임감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아이들과 친구같은 아빠’ 를 자극한 거다.


내가 20대 초반, 부모임과 외식을 하려다 갑자기 엄마가 약속이 생겨서 아빠와 단둘이 식당에서 삼겹을 먹었다. 얼마나 당황스럽고 그 시간이 영원 같았던지...... 둘다 체해서 각자의 방에서 소화제를 먹었었다. 할말도 없고 이 순간을 빨리 벗어나려고 음식이 나오자마자 급하게 먹었으니… 탈이 날 수밖에. 지금 생각하면 웃픈 추억이지만 그만큼 ‘친구같은 아빠’ 는 나에게 로망이다. 아이들은 나 없이도 아빠와 즐겁게 밥을 먹을 수 있는 사이였음 좋겠다는 말을 종종 했었는데 그 말을 결정적인 순간에 써먹다니! 고개를 끄덕일수밖에. '경제적책임'은 육아휴직수당이라는 얇은 당근으로 떼우고.


두번째 결정적인 조건은 남편의 선언때문이다. “이제부터 주방은 내가 맡을게.(세끼 밥을 담당하겠다는말)”


첫번째는 육아휴직을 너무 하고 싶은 남편이 로맨틱하게 접근했던 말이라면 두번째조건은 막판에 다다른 - '지르고보자' 라는 심정으로- 뱉은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순간 절대 뒤로 무르면 안된다며 "육아휴직 동의” 라고 소리지르며 식탁을 탕탕탕 두르렸다. 순간 느낌이 팍 왔다. ‘잡고보자’ 내 감은 틀리지 않았다. 로또같은 선언이었다. 남편의 휴직은 숨가빴던, 숨가뿐줄도 모르고 달렸던 나의 삶을 이완시키며 숨 고르게 했다. 물론, 헤쳐나갈일도 많았지만.


육아휴직 당사자인 남편이 아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육아휴직은 휴직자 자신만을 위함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다. 아이들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시작했지만 1년의 육아휴직은 우리 가족에서 많은 변화와 삶의 방향을 정해주었다.


1년동안 나의 수입과 정부에서 주는 육아휴직 수당이 있었기에 약간의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는 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좋은 제도를 누릴 수 없는 직장인이 많다는 걸 안다. 당장 나부터도 영업직이면서 계약직이라 신혼여행3일과 출산 후 일주일 외에는 20년가까이 휴가를 써본적이 없다. 그래서 남편의 복지가 부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우리도 학업, 취업, 결혼, 출산. 공식처럼 수순을 밟으며 살았다. 힘들어도 ‘누구나 다 이렇게 산다’ 며 이 시간이 지나기만을 바랬다. 그렇게 우리는 20대, 30대를 보냈다. 이제 눈빛만 보아도 생각을 읽은 정도다. 3년의 연애기간과 13년의 결혼생활 그리고 살아갈 긴 인생과 견주어보면 1년이란 시간은 찰나, 얼음 땡 정도 일것이다.

하지만 찰나로 기억될 이 시간이 없었다면 우린 어땠을까? 시간이 흘러 50대, 60대가 되어서야 ‘누구나 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니란걸 알았을까? 아님, 결국 '졸혼'을 이야기하고 시기가 다르게 나타나는 남녀의 갱년기를 각자 해결하느라 밖에서 즐거움을 찾았을까?

육아휴직 신청이 가장 많은 출산 직후과 아이 초등학교 저학년는 육아 뿐만아니라 부부관계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이 글을 통해 육아휴직을 간접경험하며 더 많은 분들이 준비된 육아휴직을 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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