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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Apr 29. 2021

딸의 힐링 푸드

마라탕에 홀릭하는 따님

매일 먹는 집밥, 가끔 배달해 먹거나 밖에서 사 먹는 별식...  그 많고 많은 음식 중에서 질리지 않고 꾸준히 생각나는 음식들이 있다. 아는 맛이 더 무섭다고... 갑작스레 그 아는 맛이 떠올라 미치게 먹고 싶은 순간이 분명 있다. 한국은 워낙 식문화가 발달해 있으니 내가 해 먹지 못하면 사 먹거나 배달을 해서 먹어도 되는 상황이지만 외국에서 그런 맛이 그리울 땐 정말 미칠 노릇이다. 뭔가 비슷한 재료를 사다가 흉내 내 봐도 도저히 그 맛이 안 나올 때의 그 허전함이란...


요즘이야 어딜 가든 인터넷도 잘 되고 급하면 찾아볼 수 있는 스마트폰도 있는 데다 식재료 구하기도 쉬운 편이니 내가 원하는 그 맛을 찾아 요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많아졌지만 정말 이것도 저것도 없었던 그 옛날엔 그 아쉬움을 어찌 견뎠는지...    학생 때 기껏 외국에 나가봤자 고작 몇 개월뿐이었던 나도  늘 그리웠던 게 집에서 먹던 음식이었다. 그땐 학생이라 더군다나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었는데, 현지 음식이 너무 지겨워 아껴둔 용돈으로 한국 슈퍼에서 재료를 사다 그나마 엄마가 하던 요리를 최대한 기억해 훙 내 내듯 만들어 먹던 기억...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엄마가 해 주는 밥을 먹었을 때의 그 기쁨이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 입에 길들여진 음식은 쉽게 끊을 수가 없는 거라 낼모레 50인 나도 엄마가 해 주는 음식이 여전히 맛있다. 우리 집 육개장, 이북식 만두, 간장게장,  딱딱하게 말린 코다리 간장조림, 밀가루와 같이 볶아 만든 매운 카레 등등...  육개장이나 만두는 명절에 같이 만들어 맛있게 먹고, 간장게장도 일 년에 한두 번씩 먹는 음식이지만, 딱딱한 코다리 조림이나 단맛 하나 없이 소금으로만 간을 해 먹는 매운 카레는  가끔씩 엄마가 해다 주시면 나만 먹는다. 신랑과 애들은 안 좋아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맛있는 그 맛... ㅎㅎ


나는 이렇게 엄마 음식 중에 유독 더  먹고 싶고 손에  꼽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는데 아이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언젠가 딸에게 제일 맛있는 음식이 뭐냐고 물었었다. 그랬더니 우리 딸,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한다. "마라탕!"... 마라탕이라... 그건 내가 해 줄 수 없는 음식이라 오로지 배달로만 먹는 음식인데... ㅎㅎ 듣고 싶은 대답이 있는데 못 들어서 아쉽기라도 한 듯, '마라탕'으로 이미 끝난 대답에 질척거리며  다시 물었다 "엄마가 해 주는 음식 중에는 뭐가 맛있어?"라고...   역시나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ㅎㅎ "그냥 엄마가 해 주는 건 다 괜찮아. 죽도 맛있고 국도 맛있고." 음... 그래... 엄마가 더 노력해야겠구나.




딸은 정말이지 마라탕 중독인가 싶을 정도로 마라탕을 좋아해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어줘야 한다. 매일 먹으라고 해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한다. 이건 나의 떡볶이 사랑보다  더 심한 듯... 매일 학교 가는 게 정상임에도 작년부터 등교보다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매일 등교하는 주가 되면 유독 힘들어한다. 학교 끝나고 학원까지 마친 후 데리러 가면 차에 타자마자 하는 말이  "엄마, 마라탕을 먹어야겠어!" 다. 먹고 싶다는데... 먹을 때마다 너무 행복해하니 안 사줄 수도 없는 노릇... 그래서 배달 앱으로 시키거나 아님 학원 끝나고 오는 길에 포장해 오는 일이 일주일에 평균 한 번 이상은 꼭 거쳐야 하는 필수 코스다.

작년 가을쯤 딸과 함께 사먹은 마라탕

학교 가는 이번 주... 엊그제 월요일 저녁에도 학원 끝날 시간에 맞춰 데리러 갔더니 오늘도 학교에서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다며 차에 타자마자 마라탕 타령이었다. 결국 오는 길에 포장해서 집으로 오는데 마라탕을 들고 차에 타는 딸내미 표정이 싱글벙글... 하도 자주 가니 주인아저씨가 자기를 아는 것 같다며... ㅎㅎ 그래서 좋냐? 집으로 오는데 또 다른 상가에 마라탕 식당이 생겼길래 그런가보다 했더나 역시 우리 딸... 그걸 놓칠 리 없다. 세상 신난 목소리로 "엄마, 엄마! 저기 마라탕 식당이 새로 생겼어!!"

딸이 배달시키거나 포장해서 사오는 마라탕

내가 학생일 땐 마라탕 이런 음식은 당연히 없었고, 기껏해야 떡볶이집 아님 짜장면이 다였는데...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다. 친구와 만나도 마라탕을 먹으러 간다니... 딸내미 친구도 마라탕 마니아... ㅋㅋ 유유상종이다. 고3 시절 어느 날에 야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엄마가 홍합탕을 한솥 끓여 놓으셨던 적이 있다. 10시가 넘은 시간에 뜨끈한 국물과 함께 먹었던 홍합탕이 아직도 생각이 나는데, 먼 훗날 우리 딸은 마라탕을 떠올리려나... ㅎㅎ


뭐가 되었건 내 기분을 좋게 해 주고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음식이 있다면 그게 바로 힐링 음식인 거지... 내가 해 주는 음식이 마라탕에 밀리는 형국이긴 하지만 마라탕은 한 번도 시도한 적 없는 음식이라는 구차한 이유로 조금 섭섭한 마음을 달랜다. 아마도 이번 주말쯤 딸내미가 나를 은근하게 부르는 소리를 또 들을지도 모르겠다. "엄마~~ 나 마라탕 사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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