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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Mar 28. 2021

은은하며 은근하게살고 싶은데,어떻게 안 되겠니?

요즘 천천히 읽고 있는 김소연 시인의 책 '마음사전'... 김소연 시인이 정리한 자기만의 마음 낱말 사전인데 우리가 흔히 느끼고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기분이나 상태 혹은 어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그녀만의 언어로 잘 정리해 놓아서 아주 천천히 읽고 있는 중이다. 마음에 드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몇 번이고 다시 읽는다. 은은하다 은근하다...

은은한 것들은 향기가 있고, 은근한 것들은 힘이 있다. 은은함에는 아련함이 있고, 은근함에는 아둔함이 있다. 은은한 것들이 지닌 아련함은 그 과정을 음미하게 하며, 은근한 것들이 지닌 아둔함은 그 결론을 신뢰하게 한다. 은은한 사람은 과정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은근한 사람은 결론을 아름답게 맺는다.

은은하며 은근한 그런 사람... 내가 바라는 그런 나인데 아들하고의 시간에서는 절대 은은하고 은근해질 수가 없으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을지... 덩치 큰 곰팅이와 날카로운 손톱을 내세우는 마녀... 은은하고 은근한 분위기와는 멀어도 아주 먼 그런 그림... 바로 요즘의 나와 아들이다.


아들이 학교에 가거나 학원을 갈 때... 그 짠한 모습에 무한 격려와 응원, 그리고 통통한 궁둥이를 두들겨 주는 애정 어린 손길만 보태고 싶지만 아들과 집을 나서는 길은 늘 잔소리 폭탄이다. 깨우는 것부터 시작되는 전쟁의 서막, 화장실에 들어갈 때까지 벌어지는 전초전, 나갈 시간이 임박했는데도 화장실에서 마냥 태평한 아들을 재촉하는 나의 일방 공격, 방에서 준비를 마친 아들과 엘리베이터를 타고 주차장으로 가면서 벌이는 각축전, 그리고 차속에서 극에 달하다 어느 한쪽의 항복으로 마무리되는 휴전 혹은 전쟁의 소강상태...


물론 매일 그렇진 않다. 매일 저런 상황의 반복이면 그게 지옥이지 집에겠나... 하지만 다섯 번에 한번 정도는 저런 전쟁을 치러야 하니, 그런 날은 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인 나도 어쩔 수 없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전쟁 후에 남는 건 밀려오는 허탈함과 자괴감...


일요일 아침 10시에 시작하는 학원에 데려다주면서 오늘도 또 저런 전쟁을 한번 치렀다. 시간관념이란 건 도대체 언제쯤에나 생길까... 예전 쓴 글에서 언급한 적도 있지만 이런 건 느긋함이 아닌 게으름이다. 시간 약속이란 건 일방이 아닌 쌍방의 약속인데 5분 정도 늦어도 괜찮다, 다른 아이들은 더 늦게 온다라는 말도 안 되는 그런 소리는 대체 어찌 나올 수 있는 건지... 너는 우리 집에서 안 크고 다른 집에서 크다 왔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버스를 타고 다녀 늦는 것도 아니고 엄마 셔틀로 편하게 다니면서 할 소리는 아니지 않을까...  


토요일부터 비가 오더니 일요일 오전 역시 안개가 가득했다. 비가 더 올 것 같진 않지만 혹시나 싶어 우산을 챙겨 주려고 어제 아들이 썼던 우산을 보니 어제까지 분명히 멀쩡했던 우산이 망가져 있었다. 대체 그 손에만 들어가면 우산이 남아나질 않으니... 어찌 된 건지 물었더니 원래부터 그랬었단다. 분명히 어제 내가 펼쳐 보았을 때 멀쩡했던 걸 내 두 눈으로 확인했건만 하루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시 새 우산을 챙기고 끓어오르는 잔소리를 참아내며 주차되어 있는 차 쪽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좀 더 일찍 서둘러 준비했으면 좋겠다, 자꾸 지적당하는 건 고쳐 보려고 노력을 해라, 나도 이런 잔소리 하기 싫고 듣는 너도 싫을 거 아니냐 등등... 아무리 해 봐야 아들 귀에 들어갈 것 같지도 않은 소리들을 차 안에서 해대며 가고 있는데 "돈 좀 빌려줘."라는 아들...


"용돈 있는데 무슨 돈? 그리고 넌 왜 네 카드 안 챙기고 나한테 계속 달라고 하니? 용돈 줬잖아"

"그거 벌써 다 썼고 이따 버스 타고 오려면 돈 있어야 돼."

"이제부터 네 용돈 다 쓰면 네가 따로 갖고 있는 돈에서 조달해서 써. 자꾸 달라지 맑고.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이게 뭐냐?"

"15만 원도 부족하다고!" 


아들은 마지막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고등학생 한 달 용돈 15만 원... 이게 적나? 집안마다 사정은 다르니 15만원이라는 돈이 어느 집 기준에선 많고, 어느 집 기준에선 적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 돈으로 준비물을 사는 것도 옷을 사는 것도 아니고, 학교나 학원에 갈 땐 거의 내가 태워주니 가끔 버스 타는 교통비라고 해 봐야 얼마 안 될 텐데... 의 용돈은 친구들과 사 먹는 용도일 게 뻔 한데 요즘처럼 매일 등교하는 것도 아니고 등교를 하더라도 점심은 학교 급식인데 대체 15만 원이 왜 모자라다고 난리인 걸까...


"15만 원이 부족해? 그마저도 못 받는 아이들도 많아!"

"애들은 이거보다 더 받아. 엄마는 왜 맨날 그 이하의 경우만 얘기해?"

"그럼 넌 왜 매번 그 이상만 요구하니? 실제로 어렵게 사는 아이들도 많고 고등학생 한 달 용돈으로 15만 원이면 적은 게 아니야. 게다가 그 용돈 말고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주신 돈도 따로 갖고 있으면서 너는 그게 할 소리니? " 


차에서 소리를 꽥 지르고 침묵이 흘렀다. 더 할 말이야 많았지만 지금은 말해도 모를거고 어쨌거나 돈을 안 가져왔다니 교통카드가 되는 내 신용카드를 들려서 학원에 보냈다. 10시 수업인데 학원 앞에 내린 시간 10시 3분... 그래도 "잘 갔다 와"라는 한마디는 해주고 보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흐리고 안개 낀 날씨처럼 내 기분도 마음도 안갯속이다.


지방에 일이 있어 신랑도 없는 주말... 집에 돌아와 작은 아이를 챙겨주고 갈 곳 잃은 마음을 털어놓으려 끄적대고 있는데 신랑에게 카톡이 온다. 남쪽 지방은 날이 개었는지 벚꽃으로 화사하고 하늘도 파랗네... 차로 올라오면서 꽃비 날리는 그 풍경을 사진으로 보내준 신랑이 고맙다가도 나 혼자 전쟁 같은 주말을 보내고 있는 게 화가 나기도 했다. 넋두리는 나중에 퍼부을 테니 우선 맘껏 누리시오!!


신랑과 통화가 끝나고 얼마 있다가 아직 수업 중인 아들에게 전화가 온다. 무슨 일인가 싶어 받았더니...

"엄마, 지금 쉬는 시간인데 애들하고 편의점에 가서 뭐 사 먹어도 되지? 돈은 이따 가서 줄게."

"알겠어. 돈은 됐고 먹고 싶은 거 사 먹어."

"어..."


주변에 친구들이 있는지 시끌시끌 낄낄낄... 아침에 있었던 나와의 전쟁은 잊은 지 오래인 듯한 유쾌한 분위기다. 또 한 번 허탈... 그래... 그래야 너 답지. 심각하면 우리 아들이 아니지... 잠시 후 삼천 오백 원이 결제되었다는 문자가 온다.



그 순간은 너무 짜증 나고 싫은데 막상 또 얘기하자면 유치한 이런 이야기들... 어느 집에나 한 번쯤은 다 있을 그런 이야기이겠지만 정말이지 아들과 이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마음이 너무 안 좋다. 아이들에게는 늘 좋은 말 사랑스러운 말만 해 주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는 내가, 지금의 상황들이 속상하다. 이 정도 잔소리는 들어야 마땅하다고 당당하게 얘기하다가도 돌아서면 또 아들의 짠한 모습이 보인다. 언제까지 이런 일들을 반복해야 할까... 그러지 말자고 수없이 다짐하는데 그런 다짐의 순간은 잠깐이고 어느새 후회로 가득 찬 순간만이 남는다. 머리로는 되는데 왜 마음으로는 안 되는 걸까... 나도 이런 내가 잘 이해 안 가는 요즘이다.


불안함과 걱정 때문이겠지... 아이가 잘 헤쳐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믿어야 한다면서도, 잘되라고 퍼붓는 잔소리로 포장하며 나의 불안과 걱정을 없애보려는 꼼수... 하지만 나의 이런 불안과 걱정이 사랑과 염려가 전제된 정상적 '방출'이 아닌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분출'이 되지 않도록 나의 말을 다듬어야겠다는 생각... 겉모습뿐 아닌 속마음까지 은은함과 은근함을 채워야겠다는 생각... 다시 한번 책으로 눈을 돌리며 또다시 다짐의 시간을 가진다.

자기 자신을 위한 '말'은 분노를 방출하려 할 때에 가장 유용하다. 무엇보다 이럴 때는 기술이 필요하다. 방출이 아니라 분출일 경우에는 그 대가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오기에, 더더욱 기술이 필요하다. 방출이 정상적인 출구를 사용하는 내보내기라면, 분출은 예정되지 않은 곳에서 함부로 터져 나오는 내보내기다. 우리의 마음과 육체는 일종의 '심술'이 프로그래밍되어 있어서, 지나친 억제를 받으면, 불쾌한 출구를 통해 그것을 발산하고자 하는 괴팍함이 있다. 그런 식의 분출은 밸브가 고장 난 순환 파이프 같아서, 화상과도 같은 고통과 지독한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마련이다. 이것은 거의 '재난'에 가까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준비된 출구를 통해서, 알맞은 압력이 쌓였을 때에 이뤄지는 내보내기는, 기분 전환을 만끽하게 해 주며, 그것은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정화'를 결과물로 선사해준다.(김소연의 마음사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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