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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Jul 09. 2021

짧은 여행이어도 좋아, 언제든 갈 수만 있다면...

엄마와 딸과 떠났던 1박2일의 여행

바다다! 차창을 내리자 바다 냄새가 훅 끼쳐왔다. 소금기 밴 바람에 머리가 엉망으로 흐트러졌지만 창을 닫지 않았다. 잠시 잊고 싶다가도 이럴 때마다 새삼 깨닫는다. 바다를 보러 가는 길은, 언제나 옳다.(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김신지)


바다를 보러 가는 길... 언제나 옳은 그 길... 바다는 어느 곳이나 아름답지만 그래도 바다 하면 먼저 떠오르는 강원도의 바다... 지난 6월 초... 엄마와 딸을 데리고 모녀 삼대가 강릉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하루는 비가 왔지만 하루는 날씨가 너무 쨍해서 비 오는 바다도, 머리가 흐트러질 만큼 바람 부는 바다도 다 볼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었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이라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그래도 몇 년 만에 엄마와 같이 한 시간이라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여행을 참 좋아하시는 엄마... 어릴 때부터 계곡으로 산으로 바다로... 여행을 자주 다녔던 우리 가족이지만 나와 동생이 크고 부모님이 나이 드시면서 같이 여행 가는 횟수가 줄 수밖에 없었다. 여고 때부터 결혼 전까지는 엄마와 단 둘이 여행하는 일도 많았는데 결혼한 이후로는 그럴 여유가 좀처럼 생기질 않았다. 물론 부모님 모시고 동생네와 같이 간 적도 있었고, 우리 식구 여행에 엄마 아빠가 같이 동행하신 적도 있었지만 엄마는 늘 나와 단둘이 하는 여행을 원하셨다.


그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데도 결혼하고 나서는 여행 한번 가자는 그 말에 속시원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신랑은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했지만 내가 문제였다. 아이들도 걸리고, 시부모님도 걸리고, 일하는 스케줄도 조정해야 하고 기타 등등... 그러다 엄마와 아이들 체험학습을 내며 원 없이 여행을 다닌 시절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신랑이 해외 근무를 하고 있었을 그때... 큰 아이가 초등 저학년, 둘째가 유치원생이었을 그 시기였다.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초등학교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떠났다. 아이들이 어렸으니 아이들 체험 위주로 여행지를 짰다. 당시 엄마는 신랑 대신 나와 아이들 둘을 데리고 다니신 건데 지금도 엄마는 그때 우리와 여기저기 다녔던 시간들이 참 좋았다고 하신다.


신랑이 돌아온 후엔 우린 우리대로 여행을 다녔고 3년간 떨어져 있었던 그 공백을 채우느라 바빴다. 매일 영상 통화하고 몇 개월에 한 번 휴가 와서 한 달 가까이 지내다 돌아갔으니 아이들이 아빠를 어색해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한창 예쁘고 손이 많이 갈 시기에 같이 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나도 신랑도 있었기에 그동안 네 식구가 같이 가고 싶었던 곳들을 다니며 정말 열심히 아이들과 시간을 보냈다.


물론 우리끼리 여행을 다니면서 부모님을 모시고 간 적도 있었다. 여행을 간다는 건...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나를 맞추는 일이기도 한 일... 하지만 우리 네 식구가 여행할 때 부모님을 모시고 가 보니 솔직히 말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엄마 아빠 두 분도 스타일이 다르시니 어느 한쪽에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스트레스 풀고 기분 좋자고 떠난 여행이었는데도 어떤 여행에서는 이 멀리까지 왜 왔을까를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크고 다 같이 떠나는 여행은 가지 못하다 보니 그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은 줄었지만, 워낙 여행을 좋아하시는 데다 여럿이 말고 나와 조촐하게 떠나는 여행을 원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기에 솔직히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그래서 둘째의 초등학교 졸업이 다가올 때쯤 더 늦기 전에 여자들끼리의 여행을 떠나볼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디로? 발리로~~~ 계획대로였다면 작년 여름 한 달 살기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보름간은 발리에 있어야 했다. 엄마, 나 그리고 우리 딸 이렇게 모녀 삼대가... 딸아이는 작년에 자유 학년제에 해당하는 중1이어서 좋은 기회였기에 그전부터 머물 곳들을 알아보고 어디가 핫한 장소인지 시간 날 때마다 서칭을 했었지만 부풀었던 마음도 잠시... 작년 초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그 계획은 당분간 실현 불가한 계획이 되었다. 게다가 이제 딸은 점점 여행을 위해 빼는 시간이 부담스러운 학년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더더욱...


그러다가 지난 6월 강릉으로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다녀오게 된 거다. 비예보가 있었던 날이었지만 아침에 일찍 출발했다. 숙소가 있는 곳은 강릉이지만 천천히 가면서 먹고 싶은 데서 먹고, 들르고 싶은데 들르자는 그런 컨셉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점심 메뉴를 정하면 내가 서칭을 했고 후기가 좋은 곳들을 찾으면 그곳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비가 오니 첫날은 몇 군데 다니질 못하고 일찍 호텔로 갔지만 덕분에 엄마는 손녀를 데리고 온천을 하러 가실 수 있었고, 그 시간 동안 난 조용히 호텔방에서 반신욕을 하고 책을 읽으며 나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비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호텔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고요했고 창문에 맺히는 빗방울마저 예뻤다. 다행히 다음 날은 날씨가 개어서 프렌치 감성 가득한 식당에서 브런치를 먹고, 강릉의 푸른 바다도 봤으며, 오는 길에는 상원사까지 들러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입에 딱 맞는 커피 맛을 못 본 게 좀 아쉽긴 했어도 좋아하는 강원도 막장으로 끓인 강원도 된장찌개로 여행의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


1박 2일의 여행... 사실 별거 아닌데 그게 왜 그리 어려웠을까... 솔직히 여행 날짜를 잡을 때도 망설였었다. 내 일도 조정해야 했고 중고생을 키우는 엄마이다 보니 학기 중에 아이와 같이 가는 여행이 쉽진 않았지만 그래도 엄마와 같이 가는 여행을 자꾸 미루면 안 될 것 같았다. 큰 아이는 혼자 있어도 될 만큼 컸고 외국을 가는 것도 아닌데 유난 떨 필요도 없었고... 시간이 짧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나름 꽉 찬 이틀의 여행이라 부족한 느낌 없이 딱 적당했다.


대단한 여행을 하고 온 게 아니어도 이번 여행을 통해 엄마의 바람을 조금이나마 들어드린 것 같아 마음도 편했다. 고작 하루 집을 비웠는데도 돌아와서 보니 할 일이 산더미에 밀린 회사일까지 하느라 힘든 주말을 보내긴 했지만 그래도 그런 일들 또한 내가 여행을 다녀왔다는 증거가 되니까... 거창하지 않아도 럭셔리한 여행이 아니어도 일단 떠난다는 그 마음... 앞으로는 그게 필요할 것 같다. 이번에는 모녀 삼대였지만 다음번에는 엄마와 단 둘이 모녀 여행도 가능하도록...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엄마지만 이번에 같이 다녀보니 엄마의 컨디션도 예전 같지 않으신 것 같다. 다시 늘어나는 확진자수에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지만 건강하실 때 같이 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이 생각이 생각으로만 끝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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