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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리아 Mulia Jun 13. 2022

귀가시간의 마지노선은?

부부가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나름 기준으로 삼는 원칙들이 집집마다 다 있을 것이다. 우리 집 역시 마찬가지. 엄격한 규칙 내지 기준이라기보다는 서로 한 집에 살면서 지켜야 할 예의 및 도리 정도라고 해두는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부부 사이든, 부모 자식 간에든 서로 거짓말하지 않기, 외출 시 행선지나 소재에 대해 꼭 알리기, 서로 간에 폭력이나 험한 말 하지 않기 등등. 당연한 걸지도 모르지만 사실 이런 일들은 잘 지켜지지 않을 땐 일상에서 가장 신경을 곤두서게 만드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20년 가까이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심각한 큰일들이 없었던 건 삐걱거리긴 해도 어쨌든 네 식구가 각자의 도리를 잘 알고 지키려고 애썼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춘기 아이들이 둘이나 있는 집이다 보니 가끔은 다른 집과 비교되는 '기준'으로 트러블이 생기기도 한다. 내 입장에선 말도 안 되는 기준이지만 아이들 입장에선 왜 우리 집만 이러냐는 식의 그런 기준, 예를 들어 용돈의 액수, 귀가시간, 아이들에게 맞는 제품 브랜드 같은 그런...


용돈도, 브랜드도 다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아이들의 귀가시간으로 신경이 곤두섰던 적이 여러 번이다. 솔직히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은 우리 집 중3이와 고3이. 우리가 자랄 때처럼 노는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교 후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는 시간이 워낙 늦으니 아이들의 자유시간은 어쩌면 밤 10시나 11시부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쉽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대안도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코로나로 그나마 자유롭지 못했던 게 그나마 다행이었지 싶다. 안 그랬으면 더 자주 귀가 시간문제로 실랑이를 벌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뒤늦게 찾아온 사춘기로 한창 신경전을 벌이던 작년 이후로 아들의 귀가시간에 대해선 더 이상 뭐라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스터디 카페에 갔다 올 건지 바로 집으로 올 건지 행선지에 대한 연락은 주기로 약속했지만, 가끔 12시가 다 되어가도록 연락이 없으면 내가 먼저 문자를 보낸다. 그러면 대부분의 답은 "가는 중...", "**이랑 라면 먹고 갈게."...  그러다 유독 까칠하게 신경이 곤두선 날엔 자기가 어린애도 아닌데 알아서 들어올 테니 자꾸 연락하지 말고 편하게 자란다.


까짓, 아들은 남자아이인 데다 워낙 학원이 늦게 끝나니 그렇다 치고 그럼 딸의 경우라면 어떨까? 우리 딸은 귀가 시간 이야기할 때마다 오빠랑 비교하면서 남녀차별 운운하는데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아무래도 여자아이라 신변 안전에 더 신경을 더 쓸 수밖에 없다는 걸, 딸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공감할 듯하다. 아마도 그런 말을 했던 딸도 모르지는 않을 것 같고...


학원은 내가 직접 픽업해주고 딸도 외출이 잦거나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아이는 아니지만 지난 중간고사 시험 준비 기간에 스터디 카페를 몇 번 가면서 실랑이가 있었다. 어느 날 저녁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 집 앞에 새로 생긴 스터디 카페에 친구들과 간다고 하기에 못 이기는 척 허락해주며 이미 늦은 시간이니 12까지는 집에 오라고 했다. 내 기준에서는 아주 많이 봐줘서 늦어도 12시까지 들어오라고 얘기한 건데 떨떠름한 딸의 표정이라니... 솔직히 10시에 나간다는 것도 이해가 안 갔지만 그나마 바로 집 앞이라 보내준 건데 딸의 반응을 보니 기가 막혔다. 더 얘기하면 싸움이 되니 일단 보냈는데 결국 그날 12시 반에 컴백홈... 딸에게 물으니 자기만 그 시간에 나온 거고 다른 아이들은 새벽까지 있겠다고 했단다.


이런 나를 보고 딸은 과잉보호네, 걱정이 너무 많네 난리다. 그러면서 다른 집 부모들은 12시 넘어 들어와도 뭐라고 안 하는데 우리 집만 그런다고... 우리 집만이라고? 설마... 딸의 그 말을 믿지 않으면서도 만약 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부모가 새벽에 데리러 오는 거면 몰라도 아이 혼자 오는 시간이 그렇다면 내 기준에선 절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다. 다 큰 어른들이 그 시간에 들어와도 걱정인마당에 아직 어린아이들인 데다 본인들이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운이 안 좋으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 게 요즘 세상 아니던가. 만약 12시 넘어도 뭐라 안 하는 부모가 있다면 반대로 통금시간을 정해 놓는 부모도 아직 있을 텐데, 왜 늘 우리 집 기준보다 타이트한 쪽으로는 비교가 안 되는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직 미성년자인 우리 아이들의 귀가시간... 귀가시간의 마지노선은 시가 적당한 걸까?


스터디 카페에 정말 공부를 하러 가는 건지 친구들을 보러 가는 건지 그 목적마저 의심하고 싶진 않다. 아파트 커뮤니티에도 독서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잠깐 시험 기간만 공부하는 거 그곳에 가서 하라고 했더니 거긴 집중이 안 된다나? 핑계도 가지가지... 한창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거 좋아할 나이이니 아주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럴 거면 주말 낮에 나가서 좀 오래 공부하다 10시쯤에라도 오면 마음이 좀 나으련만, 낮에는 안 나가고 꼭 밤에만 나간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난 학생 때도 밤을 새워서 공부하는 스타일도 아니었고 지금도 일정 시간 잠을 자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다. 할 게 남아있으면 다른 일에 집중 못하는 그런 성격이라서 끝내야 할 일이 있으면 내 개인적인 취미는 그 뒤로 미련 없이 미룬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쭉 그래 오던 거라 반백살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여전하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 편히 하기 위해서 하기 싫은 일을 빨리 끝내려는 마음 같은 것일지도. 하기 싫은 일을 다 끝내고 불안과 걱정 없이 누리는 자유의 시간이 얼마나 달콤한지, 그 맛을 아이들도 알면 좋을 텐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아무리 할 일이 있어도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며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한다. 집에 오면 핸드폰 먼저 들여다보며 자유를 만끽하다가 밤 12시(11시에만 시작해도 빠름)나 되어 그제야 숙제를 꺼내니, 내가 같이 깨어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생활 패턴이다. 그 패턴을 바꿔주려고 무던히도 애쓰고 싸워도 봤지만 엄마 스타일을 강요하지 말라는 대답뿐... 이러니 귀가시간으로 싸우지 않는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 아이들을 내 맘대로 조종하고 싶은 건 아니지만 정말 맘대로 되는 일이 이렇게 없어도 되는 걸까?


아가 때처럼 책 읽어 재워줘야 하는 것도 아닌 데다 언젠가부터 자꾸 싸우기 싫어 각자의 스타일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 뒤로 아이들은 알아서 각자 밤 시간을 보내고 난 나대로 내 시간에 집중한다. 나이가 드니 솔직히 늦게 깨어있는 게 더 힘들어지는 것도 사실이니까... 아이들이 둘 다 집에 있으면 그나마 쉽게 잠들 수 있는데, 일찍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있어도 아들이 귀가 전일 땐 모든 신경이 핸드폰으로 안방 문밖으로 향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문소리가 나면 "왔니?" "별일 없었니?" "힘들겠다." "얼른 씻고 자."라는 몇 마디 말을 건네고, 그제야 안심하고 잠자리에 든다.


몇 달 전 중간고사를 앞둔 2주간은 새벽에 들어오는 아들 때문에 잠을 설쳤다. 게다가 밤에 잘 안 다니는 딸까지 스터디 카페에 간다는 이유로 두어 번 12시를 넘겨 들어와서 더더욱... 그즈음 우연히 본 글이 있었는데  '시험 기간에 아이들이 잘 때까지 안 자고 같이 있어주다 시험이 끝나고 몸살을 했다'는 어떤 엄마의 글이었다.


한때는 나도 아이들 시험 기간에 같이 안자며 있어주던 때가 있었다. 암기 과목 공부도 도와주고, 방에서 혼자 공부하면 싫을까 봐 식탁에서 공부시키며 나도 같이 거실에서 책을 읽었었던... 큰아이 중학생 시절이 그때다. 그때는 아들이 공부하는 걸 감시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라 '네가 공부하는 시간에 엄마도 같이 하겠다'는, 그저 '너 혼자가 아닌 같이 견디는 시간'이란 알려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건 생각만큼 되지 않았고 결국 그 뒤론 각자도생!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지금... '난 할 만큼 했으니 이제 너희들의 몫'이라고 너무 손을 놓아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래서인지 누군지도 모르는 어떤 엄마의 글을 읽었던 그날. 이젠 정말 해 줄게 밥하고 빨래하고 픽업해주는 것 밖에 없다는 내 변명이 유독 공허하게 들리기도 했던 그런 날이었다.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 없지만...


아이를 키우며 뭐가 정답인지 없고, 이게 정말 맞는 판단인지 의심하게 될 때가 많다. 같은 세대 부모들도 천차만별이니 기준도 평균도 정말 모르겠다. 남들은 남들이고 적어도 우리 집은 우리 집 만의 기준과 분위기가 있는 거니 그것만 이해해주면 좋을 텐데 아이들의 눈은 아직도 '그들에겐 너무 너그럽고, 내겐 절대 용납 되는 그런 기준'으로만 향한다. 정말 내가 고리타분하고 답답한 걸까? 아이들은 정말 뭐가 맞는 건지 모르는 걸까? 


글쎄... 다른 집들 보면 엄마가 딱 각 잡고 잘하는 듯 보이는데 아이들을 키우며 자꾸 내가 작아지는 느낌이 드는 게 싫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히 있는 일인데도 내가 잘못된 걸까라며 나만 자기반성하듯 이런 기분을 느끼는 게 싫다. 중3, 고3... 입시가 끝나는 올해가 지나면 이런 기분에서 해방되려는지. 이제 곧 기말고사라 앞으로도 지난번과 같은 그런 일들로 실랑이를 할지 모른다. 나를 옥죄는 이런저런 감정들로부터 해방될 그날을 생각하며 오늘도 쓴 커피 한잔을 보약 마시듯 들이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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