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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기로운 민정 Feb 10. 2024

세뱃돈 받는   100-90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세수하고 정갈한 옷차림으로 차례상을 준비한다. 차례를 지내려는 친척들이 가족 단위로 우르르 몰려온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을 찾아서, 알아서 척척 해낸다. 몇 년 동안 명절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맡아지는 일들이다. 순조롭게 어른들이 차례상을 준비하는 동안 꼬맹이들은 잠에 취한 채 머리를 땋고 알록달록 화려한 한복을 차려입는다.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한복 차림으로 명절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은 꼬맹이들이다. 설날 아침의 꽃송이들이다.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이니 북적북적해서 집안이 팽창해진다. 안부와 웃음으로 가득 찬다. 오랜만에 쌓아두었던 이야기보따리는 풀어도 풀어도 계속 나온다.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나면 가장 어른부터 윗목에 앉으신다. 우르르 세배한다. 미리 준비한 돈봉투가 나이순으로 나온다. 윗목에 앉아서 세배받는 순서는 계속 바뀌고 세배는 계속한다. 세배할수록 돈봉투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나이가 된 아이들은 신나게 세배한다. 아무것도 몰라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밀려 세배한다. 무조건 세배를 하면 세뱃돈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카가 봉투를 가지러 방에 들어온 내 꽁무니를 쪼르르 따라온다. 준비되지 않은 뒤통수에 대고 무조건 세배부터 하고 본다. 귀여운 모습에 까르르 웃으며 세뱃돈 없다고 다른 방으로 도망간다. 한복 치마를 걷어 올리고 쫓아온다. 영문도 모르고 따라붙는 아이들이 많아진다. 술래잡기하듯 이방 저방을 몇 번을 돌다가 결국 처음 시작한 방으로 돌아온다. 한바탕 몸싸움한다. 업치락 뒤치락하다가 빼앗기다시피 봉투를 넘겨준다. 세뱃돈을 갈취하고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한다. 아침은 먹는 둥 마는 둥 세뱃돈을 가지고 집에서 멀지 않은 지하상가로 우르르 몰려간다. 쇼핑 맛을 보러 간다. 썰물이 지듯 아이들만 빠져나간 집은 어른들만의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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