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째 체증이 내려갔다 막히기가 반복되었다. 먹은 게 있던 없든 간에 턱턱 막히는 느낌이 들고 온 신경이 명치에 집중된다. 결국 묵히고 묵히다 내 힘으로는 소화시킬 수 없음을 인정하고 한의원을 방문했다. 발끝까지 찌릿하게 침을 맞고 나니, 그제야 꾸르륵 소리와 함께 고집스럽게 막혀 있던 무언가가 떠밀려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을 잘 못 먹은 걸까?
나의 체증은 20대 초반 첫 직장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000년대 초반, 은행에서 근무했던 나에게 점심시간은 휴식 시간이 아니라 배를 채우는 시간이었다. 은행원에게 점심시간은 식사 순번이 아니라 고객의 순번에 따라 움직인다. 호출된 순번의 고객이 복잡한 업무를 가지고 온 경우, 그날은 점심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 겨우 배만 채우고 다시 일하기 일쑤다. 그 당시 은행에서는 친절 응대가 중요 키워드였다. 일반 고객으로 위장한 전문가가 직원의 친절도를 채점하여 지점의 성과율에 반영시켰다. 웃음 띈 얼굴과 다르게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한 음식을 머금은 나의 위장은 항상 긴장하고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거기에 업무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위는 최소한의 소화력 마저 잃고 그대로 멈추었다. 그로 인한 체증은 어깨까지 그 무게가 전달되어 온 몸을 침체시켰다.
첫 번째 직장을 그만두다.
3년 4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언제 어떤 업무를 가지고 올 지 모르는 고객을 응대하며 긴장 속에 보냈던 시간 동안 커진 것은 직장에 대한 만족보다는 내가 주도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갈망과 가고 싶었던 어학연수를 떠나야겠다는 꿈이었다. 제대로 된 계획과 준비 없이 꿈에 대한 열정만 가지고 회사를 그만두었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또 다른 체증이었다. 급하게 밥을 먹을 필요도 시간적 여유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생각지 못한 현실의 벽들을 만났고 나는 조금씩 현실과 타협하며 나의 꿈을 내려놓았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문제가 아니었다.
시간이 걸리고 돌아가기는 했지만, 나는 원했던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했었고 결혼도 했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나의 위는 습관처럼 작은 일에도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턱턱 체증에 걸렸다. 그때마다 혼자서 낑낑 대다가 결국엔 한의원으로 달려가서 꽉 막힌 몸을 따끔따끔한 침으로 자극하고 나서야 겨우 평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한의원에서는 나의 타고난 기질이 예민하기 때문에 쉽게 체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냥 흘려보낼 수 있는 것도 마음속에 쌓아 두기 때문에 그게 체증이 된다는 것이다.
나의 문제는 마음의 체기였다.
나는 어려운 일이 생기면 해결하기보다는 그 문제를 삼키고 머뭇 거린다. 나의 몸은 소화시키지 않은 채 꾸역꾸역 밀어 넣는 문제들에 대해 위를 통해서 불편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계속되는 체증은 음식이나 문제 자체가 아니라 소화시키려는 의지 없이 쌓아두는 나 자신 때문에 생긴 것이다. 마음의 체기를 방치해 왔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반복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체증 내려놓기.
한의원에 다녀온 뒤, 위를 압박하던 체증은 사라졌다. 이제 나에게 남은 것은 마음의 체기를 삭이는 것이다. 머리로만 고민하는 것은 좁은 상자 안에서 엉킨 실뭉치를 푸는 것처럼 어렵다. 하얀 종이 위에 그것들을 펼쳐 볼 것이다. 나의 체증들을 하나씩 글에 내려놓다 보면 외면하고 두려워했던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제대로 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