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직장에서 하던 일은 다른 직원들에 비해 외근이 잦았다. 그중에는 왕복 5시간 정도 소요되는 장거리도 있었다. 혼자서 차를 끌고 다녀봤던 길이였기 때문에 그곳까지 운전하는 것은 부담이 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출장을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설 때는 어디론가 떠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마다할 일도 아니었다.
직장을 다닌 지 일 년 정도 후, 첫 아이를 임신했다. 아이의 첫 심장소리를 듣고 난 순간부터 모든 것에 조심스러워졌다. 특히 '임신 후 12주까지는 장거리는 절대 안 된다는 의사의 말에 나는 50분 거리의 친정조차도 한동안 가지 않았다.
어느 날은 출근길에 도로 공사를 하고 난 뒤 마감을 제대로 하지 않아 노면이 울퉁불퉁한 곳을 지나게 되었다. 자동차의 타이어와 쇼바에 걸러지지 않은 노면의 충격은 온몸 구석구석 전달되어 통통통 튕겨지는 기분이었다. 뱃속에 있는 젤리 곰처럼 작은 아기도 콩콩콩 굴러다니는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 밟은 발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로 최대한 천천히 그곳을 지났다.
그전까지는 출장과 장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이 없었지만 임신을 하고 나니 출퇴근길 노면의 상태조차 위협으로 느껴진 것이다. 될 수 있다면 임신 초기만이라도 장거리 출장은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업무는 내 사정에 따라 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임신 10주 정도에 장거리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의 매니저인 Sam은 출장길에 종종 동행했다. Sam은 58년생 싱가포르 아저씨였다. 한국에서 일한 지 10년 정도 된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타지 생활을 하는 동료들의 사소한 문제까지 가족처럼 도왔다. 그런 그를 동료들은 엉클 쌤이라 불렀다. 나에게 그는 업무 이야기를 하다가도 한국에 홀로 파견되어 사무실 기반을 잡은 일부터 자신의 인생관까지 늘어놓는 '싱가포르식 라떼'를 늘어놓는 상사였다. 처음 장거리 출장을 갈 때는 Sam이 알아서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나 나의 시내 운전을 지켜본 후론 자연스레 차키를 넘겨주고 조수석에 자리를 잡았다. 운전대 대신 조수석의 여유를 가진 그는 희열이 넘치는 표정으로 오고 가는 5시간 동안 수다에 집중하곤 했다.
그날도 Sam과함께 출장을 가게 되었다. 목적지는 베테랑들도 운전할 때 긴장한다는 부산 시내였다. 부산 외곽은 운전해 본 적이 있지만 복잡한 길과 차들이 가득한 시내 운전은 시도해 본 적이 없었다. 장거리를 움직인다는 것 만으로도 부담스러웠던 나는 운전만이라도 Sam이 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Sam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조수석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하는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특히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다르게 '비석문화마을'을 지나는 경로였다. 내가 어디쯤을 가고 있는지 가늠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점입가경으로 가파른 고갯길이 나타났다. 주차된 차가 즐비하게 늘어져 있는 길은 더 좁고 가파르게 느껴졌다. 웬일인지 도로 위에 차들도 많았고 고갯길에서 네 번이나 신호 대기를 하게 되었다. 운전 했던 차는 오르막길 밀림 방지가 되어 있지 않아서 브레이크에서 엑셀로 발 위치를 바꿀 때마다 차가 뒤로 밀렸다. 그때마다 차의 무게와 가파른 언덕길 그리고 나의 긴장이 더해져 차가 아래로 굴러갈 것만 같은 공포가 느껴졌다. 세 번째 신호 대기에서 Sam에게 운전대를 맡아 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그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좀 더 집중하라는 말과 함께 그 때부터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손바닥이 흥건히 젖고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던 여파로 종아리는 뻣뻣해졌다. 무엇보다 아랫배가 찌릿하게 당기는 느낌에 불안감은 더 커졌다. 어느 정도 복잡한 도로를 벗어난 후 한쪽 켠에 차를 세웠다. Sam에게 나의 상태를 설명하고 운전을 부탁했다. 그는 당황하는 얼굴로 미안하다며 사과를 했다. 조수석에 앉아 온 몸의 긴장이 풀리니 몸 전체와 아랫배에 팽팽히 서 있던 감각이 풀어지는 게 느껴졌다.
그 당시 나는 출산 후 복직 여부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임신으로 인해 평소와 다른 대우를 받는 것이 나의 커리어에 마이너스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육십이 다 되어가는 Sam은 내가 말하기 전까지는 임신 초기의 주의 사항과 도로에서 내가 겪었던 스트레스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 그에게 의사 선생님의 당부 사항을 전했다면, 그는 나에게 운전대를 맡기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그곳을 지날 때면 그날 느꼈던 긴장감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브레이크를 밟는 듯 온몸에 힘이 들어간다. 만약 다시 비슷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솔직히 나의 상황을 말할 수 있을까? 지금도 말 못하고 속으로 삭히는 것이 많은 걸 봐선 아직 몇 번 더 온 몸으로 경험해야만 더 솔직해 질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