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자
아저씨.
전직 (전직 형사)
어. 왜 이래?
광자
이름 바꿀라구요.
전직
근데?
광자
아저씨가 그런 일 하신다는데?
전직
기각이 몇 번째요?
광자
세 번째.
전직
사유는?
광자
전과요.
전직
죄명?
광자
상해.
전직
선금 오백. 다 현찰로. 개명허가 떨어지면 이백. 더 들 수도 있습니다.
생략, 광자는 돈이 부족해 이백을 내놓는다.
전직
여튼 이백으로는 안 돼. (다시 돌려주며) 안 받아? (광자, 애교를 다시 부린다.) 뭐하는 거야. (현찰을 바닥에 내던진다.)
광자
아저씨. (주우며)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전직
뭐가?
광자
아저씨. 맘 움직이게 하는 거. 아저씨 같이 갈래요?
전직
어딜?
광자
잠깐 쉬자구요. 사는 게 너무 피곤하지 않아요?
전직
...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사유해보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마흔다섯 번째 작품은 장우재의 '햇빛샤워'입니다.
20대 후반의 여성 '광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고아에다가 돈도 인맥도 없이 백화점 직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몸을 팔아 돈을 벌기도 합니다. 그녀는 평소 '광자'라는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결국 이름 바꾸기를 성공한 뒤, 사람을 죽이며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고전 작품이 아니라서.. 저작권에 위배될 수 있어서 소량의 장면, 그리고 줄거리와 조금은 무관하면서도 웃긴 장면을 선별해보았습니다.
장면은 백화점 매니저가 되기 위해 라이벌 직원과 경쟁하는 장면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방송소리
반갑습니다. 오늘도 저희 신한백화점을 찾아주신 고객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희 전 직원들은 언제나 최고의 상품과 친절한 서비스로 보답해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현재 매장이 매우 혼잡하오니 소지하고 계신 지갑, 핸드백, 귀중품 등이 도난이나 분실될 위험이 있습니다. 고객 여러분께서는 개인 소지품 관리에 각별히 유의해 주시기 바라며, 저희 백화점에서 즐겁고 유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광자와 둘째(라이벌 직원), 방송 중간 중간에 인사를 한다. 광자는 밝게 웃으며 인사하는 반면 둘째는 가볍게 미소로 인사한다.
광자, 둘째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둘째
(낮게) 아... 싸구려 냄새. 어디서 이렇게 아울렛 냄새가 나니?
광자
어서 오십시오.
둘째
고객 새치기도 버릇인가. 막내가 위아래도 없이. 그렇지 출신은 못 바꾸는 법이지. 어디 가겠니. 그 버릇. 아 냄새.
광자
그래서 언닌 실적이 그래요?
둘째
그래서 넌 자꾸 그렇게 계산이 안 맞니? 도대체 얼마나 해먹는 거야? 해도 정도껏 해야지. 원.
광자
그거 아니어도 제가 더 많거든요.
둘째
그래서 이번엔 매니저까지 해보시겠다? 자리 비었으니까? 그게 니 맘대로 될까?
광자
사돈 남말 하시네.
둘째
내가 너랑 어떻게 사돈이야? 출신부터가 다른데.
광자
그래서 맨날 태닝에 내일은 발롱펌?
둘째
여긴 백화점이야. 옷을 파는 데가 아니라 패션을 파는 곳.
광자
지랄하고 있네.
둘째
(갑작스러운 광자의 돌변에 놀란다.) 대박.
광자
(웃으며) 네, 어서 오십시오. 너 나랑 동갑이라매? 근데 이 년을 속여? 그게 니 스타일이니? 전문대 스타일?
둘째
안녕하십니까.
광자
정신 차려. 넌 옷 파는 년이야. 옷 사는 년이 아니라. 본사에서 그런 거 모를 거 같애?
둘째
광자야, 너 이름답게 논다?
광자
뭐?
둘째
광자. 미친년이라고. 왜 물게? 광견처럼? 안녕하십니까. 어서오십시오.
광자, 얼어붙는다. 방송이 끝난다.
둘째
안 그럼 비광이야? 아버지가 화투를 잘 쳤나부지.
어떤가요?
내용은 참 재밌는데, 광자의 생을 따라가다보면 참 슬픈.. 그런 희곡입니다. 특히 광자가 슬픔에 잠겨서 햇빛 아래 상상샤워를 하는 장면은..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내 인생의 라이벌이 있나요?
2. 라이벌과 내가 서로 우월한가요, 혹은 똑같이 궁핍한가요?
3. 그 사람이 나에게 어떤 경제적, 사회적 도움을 주는 인물인가요?
4. 존경하는 것과 질투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5. 공감이 되는 것과 너무 적나라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사람들은 당신이 한 말을 잊을 수도 있고, 당신이 한 행동을 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느꼈던 감정은 절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마야 안젤루
오늘의 노래입니다.
I don't want to join the Army
난 군대에 가기 싫어
I don't want to go to war
난 전쟁하기 싫어
I'd rather hang around Piccadilly underground
차라리 피카딜리 지하에서 돌아다니는 게 낫지,
Living off the earnings of a high born lady
고귀한 아가씨의 수입으로 먹고 살면서.
I don't want a bayonet up me asshole
난 총검에 똥구멍 찔리기 싫어
I don't want me bullocks shot away
난 불알에 총 맞기 싫어
총검이 깊숙히 찾아드는 연약한 밤, 광자에서 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