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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굴) 안으로

「희극의 파편」49. 가와바타 야스나리 - 금수 中

by 재준

부엉이는 그의 얼굴을 보더니, 똥그란 눈을 부라리고 움츠렸던 목을 자꾸만 내두르며 부리를 딱딱거리면서 후우후우 불었다. 이 부엉이는 그가 바라보고 있는 데서는 절대로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고기 조각을 손가락에 끼우고 다가가면 버럭 성을 내며 물고 늘어지지만, 언제까지나 부리에 고기를 축 늘어뜨린 채 삼키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는 날이 샐 때까지 고집이 얼마나 센지 끈기를 겨루어 본 일도 있었다. 그가 옆에 있으면 짓이긴 모이를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몸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러나 날이 새기 시작하면 역시 배가 고프다. 홰 위에서 모이 쪽으로 옆걸음질쳐서 다가가는 발소리가 들린다. 그가 돌아다본다. 대가리의 털을 옴츠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이토록 음험하고 교활한 표정이 또 있을까 여겨지리만큼 모이 쪽으로 목을 늘여 빼고 있던 새는 후닥닥 대가리를 쳐들어 그를 보고 얄미운 듯이 후욱 불고는 시치미를 뚝 뗀다. 그가 딴 데를 바라본다. 그러는 사이에 또다시 부엉이의 발소리가 들린다. 양쪽의 눈이 마주치면 새는 또다시 모이에서 떨어진다. 그런 짓을 되풀이하는 사이에 벌써 때까치가 아침을 맞이한 기쁨을 매우 소란스럽게 노래한다.


「희극의 파편」은 단편, 장편 희곡 중 재미있는 한 장면을 선별해 그 감정적 여운과 미학적 장치를 분석하고 현대적 맥락에서 사유해보는 에세이 시리즈입니다. 말은 거창하지만 그냥 특정 장면이나 대사를 가지고 이리저리 뜯어보면서 독자와 함께 놀아보는 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희극의 파편」 마흔아홉 번째 작품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금수'입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 康成, 1899~1972)는 일본 근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1968년에 일본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섬세하고 서정적인 문체, 일본 전통 미학의 재해석, 고독과 죽음에 대한 깊은 사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간단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주인공은 40대의 고독한 남성입니다. 그는 본래부터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인간과 함께 사는 것에 깊은 환멸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명의 여자 하녀와 함께 강아지와 새를 기르며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뚜렷한 사건 전개는 없습니다. 다만 한때 자신의 옛사랑이었던 무용수의 무대를 보게 되고, 이제는 애를 낳고 이혼을 한 그녀를 바라보며, 자신 역시 비참하게 늙어가고 있음을 깨닫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낀 채 끝이 납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싫다고 고독한 그는 제멋대로 생각을 한다. 부부가 되고 부모 형제가 되고 보면, 하찮고 시시한 사람일지라도 그렇게 손쉽게 인연을 끊어 버리기가 어려워 체념을 하고서 같이 살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사람들은 저마다의 자기의 아만심이라는 걸 지니고 있다.

그보다는 동물의 생명이나 생태를 노리개로 삼아, 하나의 이상적인 거푸집을 목표로 정해놓고, 인공적이고 기형적으로 기르고 있는 편이 슬픈 순결이요, 신과 같은 상쾌한 느낌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은 품종, 좋은 품종하며 광분하는, 동물 학대 따위의 짓을 하는 애호가들을 그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또는 인간의 비극적인 상징이라 보고, 냉소를 던지면서 용서하고 있다.



제가 선별한 장면은 주인공인 그가 기르는 상모솔새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부담없이 가볍게 한번 읽어보시고 가세요^^


그런데 한달 가량 지나서 모이를 넣어 줄 때 한 마리가 새장에서 달아났다. 하녀가 황급히 굴다가 헛간 위의 녹나무에서 놓쳐 버리고 말았다. 녹나무 잎에는 아침 서리가 있었다. 두 마리의 새는 안과 밖에서 높은 소리를 지르며 서로 부르고 있었다. 그느 즉시 새장을 헛간의 지붕 위에 얹어 놓고 새를 잡기 위해서 끈끈이를 칠한 장대를 세워 놓았다. 더욱더 애절하게 울어 대던 달아난 새는 정오 무렵에는 멀리 날아간 모양이었다.




남은 것은 암새였다. 그렇게도 예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었는데 하면서 그는 새장수더러 수새를 가져다 달라고 성가시도록 재촉했다. 자기 자신도 사방으로 새장수를 찾아 헤맸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얼마 후에 새장수가 시골에서 들여온 한 쌍을 또다시 가져다 주었다. 그는 수새만 필요하다고 말했지만.


한 쌍이 같이 있었으니까요. 한 놈만 가게에 둬 봤자 별수가 없고, 암놈은 거저 드리지요.


하지만 세 마리가 사이 좋게 지낼는지 모르겠군.


괜찮을 겁니다. 사오 일 간 새장 두개를 바싹 붙여 나란히 놓아두면 서로 친숙해질 테니까요.

하지만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만지작거리며 놀 듯하는 그는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새장수가 돌아가자 즉시 새로 들어온 두 마리를 전부터 있던 한 마리의 새장 안에 넣어 보았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소란을 떨었다. 새로 온 두 마리는 홰에 앉지도 않고 새장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푸드득푸드득 날아다녔다. 전에 있던 상모솔새는 공포에 떤 나머지 새장 바닥에 무르춤하고 선 채 두 마리가 소란을 피우는 꼴을 벌벌 떨면서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마리는 재난을 당한 부부처럼 서로를 부르고 대답하곤 했다. 세 마리가 다 겁을 먹어 가슴의 고동이 심하게 팔딱거렸다. 반침에 넣어 보니까 부부는 울면서 몸을 다가붙였으나 이혼한 암새는 외따로 떨어져서 안절부절못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여 새장을 따로따로 떼어 놓았으나, 한쪽으로 짝을 이룬 새를 보고 있으면 다른 한쪽의 암새가 불쌍해졌다. 그래서 원래의 암새와 새로 들어온 수새를 같은 새장에 넣어 보았다. 새로 들어온 수새는 떨어진 아내하고 서로 불러 대면서 원래의 암새하고는 친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역시 어느 틈엔가 몸을 맞대고 잠들었다. 이튿날 저녁 때는 하나의 새장에 같이 넣어도 어제만큼 소란을 피우진 않았다. 한 마리의 몸에 양쪽에서 머리를 처넣고 세 마리가 동그랗게 붙어 잠들어 있었다. 그래서 새장을 베갯머리에 놓고 그도 잠을 잤다.



그렇지만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가 보니까 두 마리가 한 개의 따스 한 털실 공처럼 되어 가지고 잠들어 있었다. 그 홰 밑의 새장 바닥에 한 마리는 반쯤 날개를 벌리고 다리를 뻗고 눈을 가늘게 뜨고서 죽어 있었다. 그걸 두 마리에게 보여선 안 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죽은 새를 살그머니 집어내어 하녀더러 아무 말 말고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했다. 무참한 죽음을 당하게 했다고 생각했다.



"어느 쪽이 죽었을까?" 하고 새장을 찬찬히 살펴보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반대로 살아 남은 것은 아무래도 원래부터 있었던 암새인 듯 했다. 그저께 밤에 온 암새보다도 한동안 먹이느라고 정이 든 암새 쪽에 애착이 더 갔다. 그러한 그의 바람이 그와 같이 생각하게 했는지도 몰랐다. 가족 없이 살아가고 있는 그는 자신의 그러한 바람을 미워했다.


어떤가요?


약간 엽기적인 행동이긴 하네요. 냉정하면서도 거기서 나름의 삶의 교훈을 찾아 내는 주인공입니다.



「희극의 파편」은 독자가 가볍게 마주할 수 있도록, 그저 장면을 꺼내어 놓기만 합니다.


적용 질문입니다.



1. 사람에게 환멸을 느낀 적이 있나요?


2. 사람에게 지쳐 동물과 함께 살기로 마음 먹은 사람이 주위에 있나요?


3. 비혼의 단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시간이 지나고 늙게 되었을 때와 관련이 있나요?


4. 시간이 지나고 늙어가는 신체 속에도 여전히 사랑이 존재할 수 있다고 믿나요? 사랑은 외모에서 시작되나요? 젊음의 아름다움이 사라진다면 그 이후에는 그것이 무엇으로 대체되나요? 그 대체요소는 회피인가요?


5. 내 사람이 시시하다고 느껴진 순간이 있나요?


「희극의 파편」은 ‘이상하게 오래 남는 순간들’을 의도적으로 골라내고, 붙잡고, 말로 돌려줍니다.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전선을 간다 군가


오늘의 속담입니다.




주제에 수캐라고 다리 들고 오줌 눈다

못난 자가 제구실을 한다고 아니꼬운 짓을 할 때를 비꼬는 말.




나는

끝까지

못난 탓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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