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감정을 위할 겨를이 없었다.
내 일과 대처할 방법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끊임없이 돌리는 데에 온 힘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도 숫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웃는 얼굴을 유지하는 게 최선. 그때 나는 죽을 방법을 찾고 있거나 나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끊임없이 반추하고 있었다.
주변 시선에 신경 쓰는 일로 하여금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일상은 남들처럼 보내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도 얼마 동안 해 보니 내 몸과 머리가 자동적으로 그 일을 해내는 게 느껴졌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으면서도 내 안에 있는 깊은 구덩이를 더 깊게 파고 있을 뿐이었다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아무런 도움도 구하지 않았기에 삽도 없이 맨손으로 흙을 헤집는 기분이었고 그 일을 쉰다면 남는 건 죽으러 가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만둘 수 없었다. 아마 그러면서 우울이 내재화되었던 것이 아닐까. 이제 종종 치고 올라오는 이 어두운 덩어리들이 없으면 내 존재조차 희미해져 버릴 것 같은 불안함까지 더해졌다.
상담에서는 내 죽음에 대한 욕망을 털어놓으며 나를 위해 살지도 못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살기는 더더욱 싫다는 말을 했었다. 나아질 기미가 잘 보이지 않는 내담자를 위해 트라우마 센터나 집단 상담을 추천해 주는 상담사를 보며 나를 포기하려 한다는 옅은 배신감이 느껴져 한 말로 기억한다.
비슷한 일들을 겪은 다른 사람들이 있고,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큰 도움이 된다는 말에서 지금 받고 있는 개인상담과 나 스스로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거라는 말처럼 귀에 박혔다. 내 말 좀 믿어달라며,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다는 듯이 아주 베베 꼬여있는 상태였다.
힘들고 아픈 일을 딛고 당찬 존재로 거듭난 사람들이 존경스럽지만, 저는 그 사람들이 있다고 해서 저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제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 사람들한테 들고 싶지 않아요.
난 그만큼 살고자 하는 생각도 이유도 없었고 그저 하루빨리 이 기억들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누군가의 이해를 바랄 힘이 없는 상태에서 또 반복해서 내 속을 내보여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더 나아질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아서 흐지부지하게 마무리 한 상담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어차피 죽을 걸 계속 이 시간을 붙잡고 있는 게 서로에게 낭비라는 생각도 들었다. 동시에 나에게 이것저것 해 보라고 추천해 주는 상담사는 나를 끝까지 붙잡고 싶어 하는 건지가 궁금하기도 했다. 내 생각을 이해한다고 했으니까.
다시 만난다면 단단히 동여맸던 경계를 조금 느슨하게 풀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다시 만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