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지 Apr 29. 2024

『율의 시선』 - 응시와 마주보기

청소년 문학 읽기


*도서의 정식 발행 전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가제본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4월 5주차 기준 교보문고 주간베스트 청소년 22위



제목: 율의 시선

저자: 김민서

출판사: 창비 (창비청소년문학 125)

발행일: 2024.04.26



나는 『율의 시선』을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를 떠올렸다. 두 소설은 아이의 내면 세계와 그것을 불가피하게 억누르는 요소가 대립하는 구조를 그린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헤세의 시대에서는 아이를 억압하는 요소가 기성세대의 관습과 과도한 규격화된 교육이었다면, 『율의 시선』에서는 개인적인 트라우마와 폭력적인 타인의 시선이 아이를 압박하는 요소로 나타난다. 요컨대 현대 사회는 헤세가 살던 때보다 자유롭지만, 그것이 결코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감옥의 소멸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율의 시선』이 우리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유는, 누구나 겪어봤을 법한 시선에 대한 공포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처한 인간 관계와 사회 생활 속 적응 전략으로서 제 모습을 숨기려는 일과 비슷하다. (저자의 편지는 이러한 이야기의 시작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특히 21세기 원형감옥이라고도 불리는 미디어 속 가상의 눈들도 빼놓을 수는 없다. 이 안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을 가두고 타인의 응시를 갈망하게 된다.


이렇듯 현대 문명의 시선은 타인을 욕망으로 대상화하는 데 익숙하다. 시선은 정신분석학과 문화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욕망이나 권력관계의 개념과 결부되어 왔다. 요컨대 응시란 욕망으로 대상을 실제화하는 시선의 형태다. 바라보아지는 대상의 의지와 관계 없이 일방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응시에는 자연스레 권력 관계가 형성된다. 『율의 시선』은 이런 현실과 마찬가지로 김동휘나 이도해의 엄마 같은 인물을 통해 타인을 병들게 하고 사지로 몰아넣는 시선을 하나의 현상으로 그리고 있다. 『율의 시선』에 등장하는 ‘김동휘’는 그러한 시선을 대변하는 인물로, 군중을 유혹하여 집단으로 헐뜯기를 즐긴다.


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현실에서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특히 최근 화제에 올랐던 서비스직 노동자들이 처한 가혹한 상황을 떠올릴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조직의 얼굴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더 쉽게 엄격한 평가 속에 가두어진다. 이들은 직함과 계급 아래 자신의 존재 가치를 침범받으며, 그것이 때로는 지워지는 일을 경험해야 한다. 이것이 현대인을 짓누르는 수레바퀴다.


주인공 율을 포함해 불완전한 가정 배경을 지닌 인물들, 무관심과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등장하는 것은 그리하여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율, 이도해, 서진욱의 아픔은 모두 사회의 사각지대에 가려져 발견되지 않으며, 이들 자신도 발견되길 원치 않는 듯 보인다. 아이들은 날카로운 타인의 시선을 마음 선인장처럼 마음 속에 지니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보는 방식을 자신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과 동일하게 여기면서, 스스로를 비정상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율은 자신의 트라우마와 시선에서 느끼는 공포를 여러 은유를 통해 드러내는데, 특히 자신의 감춰진 속마음을 '시한폭탄'으로 표현하는 것은 조숙한 율의 깊은 상처를 잘 보여준다(『율의 시선』은 이렇듯 섬세한 묘사에서 재미를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상처 담긴 속마음을 꺼내는 것은 그토록 참을 수 없는 행동이면서도 동시에 율 자신에게는 목숨을 위협할 만큼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율이 자신의 세상과의 거리를 두는 행동을 '생존 전략'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각자의 아픔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 그래서 말 대신 침묵으로 표현하는 것. 그게 엄마와 나의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죄책감이 들었다. 가시가 돋친 듯 목구멍이 따끔거렸다. 죄책감은 내가 나를 미워하게 하고, 엄마를 미워하게 하고, 이윽고 모든 것을 미워하게 한다. 거대한 미움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도망치는 일 뿐이다… 무감각해지려고 해도 오늘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마음속 시한폭탄의 카운트다운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율은 아빠의 죽음 이후 이미 마음 속의 아이와 이별한다. 율에게 죄책감과 그리움을 숨기는 것은 그야말로 살아남으려는 발버둥이다. 속마음을 숨기며 엄마를 보호하고, 친구들을 거짓으로 사귀어 소외되지 않으려는 노력은 모두 남들에게 미움받아 혼자 남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한다. 이처럼 불안에 흔들리는 율의 시선은 세상이 아닌 발끝만을 향한다.


『율의 시선』은 발끝만을 보는 율의 버릇이 그의 마음을 대변했듯이, 아이들의 시선을 일종의 비유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아이들, 율, 이도해, 서진욱은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시선을 회피하려고 애쓰는 인물들이다. 이도해는 ‘쓰레기집’으로 불리는 집에 살며, 알코올 중독자 엄마의 학대와 방치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자신이 북극성에 왔다는 말과 옥상에서 하늘을 보는 이도해의 시선은, 땅을 향하는 율의 시선과 정반대인 하늘을 향하지만 그와 마찬가지로 현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그러나 『율의 시선』이 그보다 가치 있는 이야기인 이유는, 두려움 너머의 따뜻한 시선과 유대의 가능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리라. 이야기는 후반부에 이르러 율의 비극적인 세계가 비로소 균열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예컨대 김동휘나 이도해 엄마의 공격적이고 차가운 응시는 율과 김지민, 그리고 서진욱이 나누는 마주보기와 대비된다. 타인의 세계를 침범하거나 무관심으로 방치하는 것과 다르게 마주본다는 것은, 타인과 나의 ‘사이’를 찾아내는 일이며 동시에 각자의 독특한 세계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특히 이도해는 오히려 가장 불우한 환경에 처해져 있음에도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율에게 가르쳐주는 구도자 격 인물이다. 이도해는 율과 다르게 가정과 교실 속에서 생존 전략을 택하지 않고, 거의 죽음에 이르는 극한의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잊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고양이를 묻어주며 자신의 감정을 애도해주는 모습 등이 그렇다. 우리는 율의 세계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현실 세계에서 진솔한 관계와 진정한 자신의 모습이 지니는 가치를 재고해볼 수 있을 것이다.


『율의 시선』은 이렇듯 비밀처럼 감추어진 율의 내면을 따라가는 길을 그린다. 『율의 시선』은 이 과정에서 트라우마와 죽음 같은 진지한 주제들을 은근하게 다루며 시선이라는 소재를 통해 이를 현실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이 점은 『율의 시선』이 이번 창비청소년문학상에 당선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로부터 자신과 타인의 존재를 얽매고 있는 것들에 대해 직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시선의 말뜻이 ‘눈의 길’과 같다는 것은 이러한 관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시선은 방향의 의미를 크게 포함하는 말이므로, 『율의 시선』은 그 제목에서부터 이미 율이 스스로 가야할 길을 선택하는 구도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도 이건 나만의 관점이다. 온전한 내 생각이고, 거짓이 아닌 진심이다…타인의 인생과 가치관을 가감 없이 마주하는 일은 새로운 우주를 발견하는 일과 같았다. 서진욱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수록 나는 전혀 다른 세계 속에서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것도 망치지 않았어.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지 마. 타인의 기준은 상대적인 거야. 정말 중요한 건 너지. 절대적인 건 너 자신뿐이야. 그러니까 너를 봐. 네 마음을 봐.




가제본에 동봉된 저자의 편지 전문



안녕하세요 김민서입니다. 


이렇게 여러분께 편지를 드릴 수 있어 기쁩니다. 늘 혼자 글을 썼기에 제 글을 읽어 줄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그리고 여러분께서 그 누군가가 되어 주셨습니다. 첫 책의 첫 독자님들.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모처럼 편지이니, 여러분께 조금 사적인 이야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이 책은 저의 내밀한 일기와도 같습니다. 저는 겁이 많은 사람입니다. 부끄럽지만 길가에서 큰 개를 보면 지레 겁먹어 도망치기도 합니다. 대체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간혹 눈이 마주치면 별별 생각이 다 듭니다. 이대로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지금 내 표정이 이상하지는 않은지폭발하는 상념을 견디지 못하고 때론 먼저 눈을 피해 버리곤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이 이야기는 그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율의 시선이기도 하고 저의 시선이기도 합니다. 부디 이 시선이 여러분의 가슴 속에 오래 남길 바랍니다.




『율의 시선』 표지


빛으로 가득한 그림. 하늘을 가르키는 아이는 아마 이도해가 아닐까 싶다. 이도해를 바라보는 율의 시선을 그대로 표지에 옮겨 온 것 같다.





저자 소개


2000년 출생, 법학전문대학원에서 법학을 공부하는 학생이다. 『율의 시선』은 김민서 작가의 데뷔작이다.

나는 스물넷이란 어린 나이에 놀랐다. 앞으로 이름을 볼 일이 많을 것 같다.



김민서(지은이)의 말


이 소설은 타인을 바라보는 이야기이다. 율의 시선은 점점 위로 올라간다. 땅바닥에서 하늘까지. 그리고 다시 조금 내려간다. 최종적으로 율의 시선이 닿는 곳은 눈이다. 타인의 눈.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정말이지 힘들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누군가는 자신을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특히 청소년기에는 더욱 그렇다. 아이와 어른, 그 중간 어디쯤에서 수그린 채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하지만 그 손길은 영영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집필할 당시 나도 그랬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든 일들이 겹겹이 벌어졌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내겐 발버둥 치는 일과 같았다. 나라는 사람의 흔적을 남겨 보고자 하는 발버둥. 그렇게 홀로 글을 쓰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사람은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성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게 부딪히고 깨지면서 사람은 성장한다. 변화는 그럴 때 찾아온다.




보도자료와 추천사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무성한 말들로 상처뿐인 이곳

너와 내가 눈으로 전하는 투명한 진심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 『페인트』 등 청소년의 현실을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게 담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 온 창비청소년문학상이 반짝이는 신예 작가의 새 소설을 선보인다. “마지막 장을 넘긴 뒤에도 잔상이 남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라는 청소년심사단의 찬사와 함께 압도적인 지지를 얻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된 김민서 장편소설 『율의 시선』(창비청소년문학 125)이다.


『율의 시선』은 타인과의 눈 맞춤을 어려워하며 관계 맺기에 서툰 중학생 ‘안율’의 시선을 따라간다. 진심 어린 교류를 이해하지 못하며 반 친구들과도 피상적인 관계만을 유지하던 율은 어느 날 독특한 아이 ‘이도해’를 만나며 자신의 세상에 균열을 느끼게 된다. 율은 그동안 억눌렀던 자신의 감정과 꽁꽁 숨겨 왔던 상처를 마주하고 이도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우정은 율을 어디로 데려갈까? 매력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인물, 가슴을 울리는 문장과 감동적인 여운을 남기는 결말까지, 창비의 청소년소설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자신 있게 권할 아름다운 작품이다.


- 창비청소년문학상은 국내 청소년문학계에 지니는 의미가 크다. 『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 같이 걸출한 작품을 발견하여 청소년문학의 시장을 열었을 뿐더러, 선정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청소년 때의 여러 문제들을 큰 맥락 속에서 진중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비청소년문학상의 수상작들은 아이의 시선으로 사회 현상을 보여주는 매개자이자 여행자다. 이들은 저자의 어린 마음에서 출발해 세상의 이곳저곳에 뿌리내린 문제들을 가지고 다시 소년의 마음 속으로 돌아온다.



- 소설을 다 보고 나서는 쩡찌 작가의 추천사가 마음에 와닿았다.


책에서 하얀 거짓말을 읽었다. 우리는 각각의 별이고, 다른 외계인이다.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닿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지상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라는 별 사이는 한 뼘뿐이라고, 그것이 ‘믿음’이라고, 그러니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율의 시선』이라는 지상의 소설이.   

- 쩡찌(작가)



TMI

원제는 ‘외계인의 비밀’이었다. 출판 과정에서 확실한 콘셉트가 확정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연애물 아니고 성장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