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게으름이 쑥쑥 피어나기를!
우선 볕이 바른 터를 신중하게 고른다
햇볕은 씨앗을 덥히는 중요한 재료다
솔바람이 콧등을 살살 간지럽힌다면 일석이조다
다음엔 옷장에서 제일 보드라운 이불을 꺼내 고루고루 펼친다
이불자락까지 꼼꼼하게 펴준다
솜털 베개로 지지대를 만드는 것을 잊지 말자
뜨끈한 밥에 고기 반찬은 하루에 꼬박 세 번
시원한 물로 꿀떡 넘기고 잘 가꿔 놓은 이불에 몸을 눕힌다
여기까지 무사히 완수하였다면
마지막으로 용기를 낸다
힘들겠지만 눈길을 휙 돌려
문제집이 쌓인 책상
책상 위에서 놀아달라고 뚫어져라 쳐다보는 고양이
방 좀 치우라는 엄마의 잔소리를 모르는 척 눈치껏 피하는 게 요령이다
이제 눈을 꼬옥 감고 기다리기만 하면 끝이다
기대하시라!
곧 게으름이 쑥쑥 피어날 테다
이른바 '7세 고시'의 시대. 하루 종일 잔다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논다거나 놀이터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대신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문제집과 연필이 든 가방을 멘 채 저녁나절 영어 공부를 하는 일곱 살을 상상해 보라. 요즘은 일곱 살 어린이조차 게으름 피우기가 어렵다. 일상이 일과 일을 위한 휴식으로 양분된 느낌이다. 그렇다면 아무 생각 없이 놀거나 자는 건 누구의 몫인가? 단지 고양이만 누리는 특혜인가?
나는 세상이 기계처럼 on/off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켜짐과 꺼짐 사이 비좁은 틈에서 저마다의 게으름이 쑥쑥 피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