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림 중에 다림질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 다림질을 살림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정의하는 살림이란 집안에 가족들이 생활하다 보면 생기는 잡일들을 비교적 시간이 여유로운 전업주부인 내가 하는 것이다.
설거지, 빨래, 청소, 쓰레기 버리기 등등.
그런데 다림질은 성격이 좀 다르다.
내가 머리손질을 하거나, 옷매무새를 다듬는 것과 같은 선상이라고 생각한다.
즉, 그냥 본인 멋 내기 용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인즉슨, 난 내가 필요할 때 아니고서는 따로 시간을 내서 뭔가를 다리는 일이 없다.
한때는 남편 회사에서도 정장을 갖춰 입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때도 남편 셔츠나 정장을 다려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서른 중반에 나를 만나 결혼하기 전에도, 굳이 양복을 다려 입지 않았던 사람에게 내가 자처하여 다림질을 해줄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요즘 양복은 그리 다려 입지 않아도 심하게 구김이 가지 않았다.)
내가 신랑 셔츠를 다려주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친정 엄마는, 그러면 안 된다고 나를 혼내셨다.
난 좀 억울했다.
난 평생 다림질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분명히 나 고등학교 때까지 엄마가 나보고 공부만 하라고 했다.
그런데 결혼하자마자, 내가 현모양처가 되어서 남편의 셔츠를 빳빳하게 다려서 입혀주고, 아침상을 거하게 차려서 먹여서 출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엄마 앞에서 은근히 부아가 났다.
(남편도 새벽 6시부터 집에서 아침을 먹고 나가느니, 회사 가서 식당에서 밥 먹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 )
그러다 보니 다림질을 하는 건 지고지순한 현모양처의 것이라는 느낌이 나에게 세게 박혔고, 나는 안 그래도 싫은 다림질이 더욱 하기 싫어졌다.
예전에 큰아버지댁을 방문했을 때, 남편 셔츠를 다려주지 않는 것에 대해 얘기가 또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도 큰 어머니가 나무라는 투로, 본인은 항상 남편의 셔츠와 양복을 다려서 입히셨다고 하셨다.
큰엄마한테는 엄마 한 테처럼 대들지는 못하고,
"저희 남편은 잘생겨서 양복 안 다려 입어도 괜찮아요."라고 말했다가, 그 점잖으신 큰아버지에게 "망할 년"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큰아빠가 못생겼다는 얘기는 아니....)
아니 무슨, 우리 집안은 남편옷을 다려주는 것에 대해서 왜 이렇게 목숨을 거는 것인가?
자기가 필요하면 다려 입겠지!
솔직히 군대 다녀왔으면, 다림질 잘하잖아!
남자들 보면 칼각을 기가막하기 잡더구먼~!
이렇게 난 진짜 다림질하는 게 싫은 사람이다.
잘 못하다 보니, 더 하기 싫다.
거기다가 에너지와 시간도 은근히 많이 드는 데다, 다려놨을 때 엄청 티가 나는지도 잘 모르겠다. 옷 입고 한 시간 뒤면 다시 구깃구깃해지는 기분인걸..
도대체 어떤 식으로 해야 잔주름 없이 잘 펴지는지도 모르겠고, 기껏 신경 써서 다림질을 해도 세탁소 다리미처럼 쫙쫙 펴지는 느낌도 없다.
그냥 쫙쫙 다림질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둥그스러운 이음새 부분들은 괜히 다림질했다가 주름이 더 생기기 일쑤이다.
더군다나 그놈의 칼주름... 왜 바지나 셔츠에 주름을 일부로 내는지는 더욱 모르겠다.
옛날에 회사 다닐 때는 스팀다리미도 있었지만, 그것도 잘 안 쓰게 되어 중고로 팔아버렸다.
지금은 남편 회사도 굳이 정장을 입지 않아도 된다.
나는 전업주부니 그저 막 입어도 되는 편한 옷 위주로 입게 되어 다림질에 대해선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없어졌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런. 데.
이번에 써니가 유치원에 들어가게 되면서 오리엔테이션 날 원복을 받아 들고 왔다.
원복을 입은 내 새끼는 왜 이리 귀티 나고 예쁜 걸까?
세탁기에 넣고 한 번 빨고 꺼냈는데, 수령받을 때 접혀 있었던 셔츠의 주름이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 다리미를 꺼내 들고 다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내가 학생일 때, 우리 엄마가 매번 내 셔츠와 교복을 다려서 방에 걸어다 줬던 생각이 났다.
우리 엄마가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갑작스레 느낀다.
내 새끼가 반듯하게 쫙쫙 펴진 옷을 입고, 어디 가서 집에서 귀하게 여기는 아이라는 느낌 팍팍 내면서 기 펴고 생활할 수 있게 하고 싶은 그 마음.
뭐 정작 학생일 때는, 누구의 교복이 구겨졌는지 내 교복이 빳빳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도 없고 그다지 대우를 받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엄마의 진짜마음이 어땠건 우리 엄마의 주말 저녁 드라마 보는 시간은, 그다음 날 입고 나갈 가족들의 옷을 다림질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엄마가 칙칙 물을 뿌리고, 뜨거운 다리미를 쓱싹쓱싹 움직이실 때 스팀 냄새를 맡으며 주름이 펴지는 모습을 멍 때리며 보곤 했었다.
어떤 사람은 팬티랑 면티셔츠까지 다려서 입는다는데, 정말 그렇게 다려 입으면 나 스스로 귀하고 단정한 사람으로 여겨지게 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뭐 진짜 다려 입은 팬티를 입어서 그렇다기보다는, 다림질을 하면서 내가 내 마음도 같이 다스려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가 다려줬을 때는, 난 그런 기분 전혀 못 느꼈으니까..
어디 한번 나도 내 옷을 좀 다려 입어볼까? 하고 얼마 가지도 않을 생각을 하는 동안, 아이 원복 다림질이 끝났다.
예쁘게 입으렴 아가.
엄마가 이렇게 다림질해주는 날이 길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