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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들셋아빠 Feb 27. 2022

남자 셋의 대책 없이 떠나는 바다여행

매년 생일 때면 와이프에게 별다른 선물 대신 그저 자유시간을 하루 달라고 한다. 그럼 아침부터 저녁까지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다. 보통 평소에 가지 못했던 PC방에 가서 하루 종일 죽치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어디 멀리 바람을 쐬로 다녀오곤 했는데, 작년 생일에는 코로나 때문에 실내로 가기는 좀 그래서 바다에 가서 바람이나 쐬고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그즈음에 프로젝트 오픈으로 업무가 너무 많아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드라이브도 하고 탁 트인 바다도 보고 바람 좀 쐬고 오면 기분전환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럴 수가! 바다에 가려고 하니, 첫째 둘째가 따라간다고 했다. 애 셋을 맡기고 하루 종일 혼자 노는 게 조금 미안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냥 애 둘도 데리고 가기로 했다. 그래서 원터치 텐트 하나와 모래놀이를 위한 조금 한 삽 두 개를 들고 대책 없이 떠나는 남자 셋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와이프가 같이 갔다면, 절대 이렇게 대책 없이 출발하진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여벌 옷이나 수건 같은 거라도 챙겼겠지만 우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바다로 떠났다.


동해로 가는 길, 차가 생각보다 많이 막혔다. 그리고 둘째가 멀미를 했다. 그것도 세 번이나 토를 했다. 여벌 옷 따위는 없기 때문에 옷에 묻은 건 물티슈로 대충 닦아냈다. 다행히 나중에는 미리 건네준 봉지에다가 토를 하긴 했다.


우여곡절 끝에 막혔던 고속도로가 뚫리며 시원한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대관령을 올라가는 영동고속도로는 하늘에 닿아 있었고, 그 너머에 바다가 있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맑은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광경을 보니 머릿속이 깨끗하게 씻겨지는 기분이었다.


동해바다 너무 좋아요


원터치 텐트를 대충 펴 놓고, 아이들에게 맘껏 놀라고 했다. 그런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텐트가 고정이 되지 않았다. 짐이라도 넣어 놓으면 괜찮을 텐데, 우리는 가지고 온 짐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삽이 있었다. 그래서 텐트 한쪽을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모래로 파묻어 버렸다. 보기에는 영 그렇지만 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모래에 파뭍어 버린 우리 텐트


아이들을 바다에 풀어놓으니 놀아달라는 이야기 한번 없이 둘이서 신나게 놀았다. 삽을 가지고 땅을 파고 물길을 만들며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파도 피하기 놀이를 한다고 파도를 따라 뛰어다니기 시작하더니 바지가 조금씩 바닷물에 젖기 시작했다. 뭐 일단 잘 노니까 뒷수습은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맘껏 놀라고 했다.


여벌옷도 없는데 바지가 다 젖는구나...


모래사장 위에 털썩 주저앉아서 바다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특히 깨끗한 날씨의 동해 바다는 정말 예쁜 것 같다. 초고해상도 파노라마 뷰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의 멋진 광경을 눈으로 감상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우리 텐트 옆쪽으로 다른 가족이 있었는데, 그쪽은 딸이 둘이라서 그런지 텐트도 핑크색으로 예쁘고, 가지고 온 짐들이나 아이들 노는 모습도 아기자기 이뻤다. 삽을 들고 놀고 있고 텐트 한쪽을 모래에  파묻어 버린 우리 집과 비교하니 차이가 확 나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두 집을 동시에 사진에 담아봤다.


애들과 바다에 가면 꼭 하는 놀이가 있는데, 바로 오줌싸개 놀이와 조개 씨름이다. 오줌싸개 놀이는 모래를 산 처럼 쌓아놓고 가운데 나뭇가지를 꽂은 다음에 차례로 모래를 훔쳐가다가 나뭇가지를 쓰러뜨리는 사람이 지는 놀이다. 해변에 나뭇가지가 없어서 삽을 꽂아놓고 놀이를 했다. 조개 씨름은 각자 조개를 모아 와서 서로의 조개를 겹쳐 놓고 손으로 내리쳐서 부서지는 조개가 지는 놀이다. 부서진 조개 조각은 생각보다 날카로워서 땅을 깊이 파서 파묻어 놓았다.

나뭇가지 대신 삽으로 오줌싸개놀이를 즐기는 아이들

한참을 재미있게 놀고 해가 질 때쯤 집으로 출발했다. 아이들은 이미 바지가 바닷물에 다 젖어버린 상태여서 그냥 바지를 벗고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팬티바람으로 집으로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고 와이프는 정말 신나게 잘 놀고 왔다며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었다. 물론 차가 너무 엉망이 되어버려서 다음날 한소리 듣긴 했지만, 나름 괜찮은 여행이었다.


다른 날에 다시 찾아간 바다에서 삽을 꽂아놓고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둘째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사진을 찍어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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