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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수 Aug 31. 2021

아르바이트

성인, 청년, 어른. 이 세 단어가 모두 같은 뜻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다. 만 19세 성인이 됨과 동시에 나는 이 사회의 청년이고, 어른이 된다고 생각했다. 꼭 그 주체가 ‘나’라서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봐오던 각종 미디어에서 ‘20살’은 사회에서 꽤 유별스럽게 취급되기 때문에 적어도 세 가지 타이틀은 다는 건 줄 알았다. 그렇게 스무 살 여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일종의 ‘로망’이었다. 초등학생 때 교복을 입는 중고등학생을 동경했던 것처럼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것이 아닌 물리적 나이 때문에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다. ‘프랜차이즈 가게에서 스스로 돈을 버는 자립심 강한 대학생’은 내가 아르바이트에 대해 가진 기준점 같은 것이었다. 같은 해 겨울, 마침 친구들과 대만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금이 필요하기도 했는데, 어쨌거나 내 로망의 실현은 여행을 명분으로 삼아 시작되었다.


 경험 없는 노동자를 친절히 가르쳐 일을 시키고 돈까지 쥐어줄 가게는 잘 없었다. 대부분 경력직을 우대했고, 나는 내 첫 경력이 될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집에서 지하철로 3정거장 정도 떨어진 ‘맥도날드’에서 올린 구인광고를 보았고,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최종 합격을 했다. 면접 내내 한 말이라곤 내가 햄버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부점장에게 알려준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게 가장 큰 어필 요소라니, 면접을 끝내고 무거운 유리문을 여는 팔과 다리가 부끄러움에 후들거렸다. 그러나 그 부끄러움은 빙산의 일각, 새발의 피, a drop in a bucket of water에 불과했다. 내가 일했던 지점의 맥도날드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인력을 사용했다. 즉, 모두가 인정하는 정말정말 바쁜 매장이었다. 분명 머리로는 일의 순서를 아는데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아르바이트 초반에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실수를 꽤 많이 했다. 로망 속의 청년은 되었을지 몰라도, 로망 속의 어른은 아니었다. 물론 실수는 중반, 후반에도 했지만, 초반과의 차이점은 내 실수 하나 쯤 아무도 모르게 수습할 수 있는 능력치가 생겼다는 것 정도였다.


 나는 꽤 신사적인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 정도는 뚜렷했다. 이것은 살아오면서 인간관계에 괜찮게 적용되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 전까진 말이다. 맥도날드와 같은 프랜차이즈 가게들은 직원의 상하관계가 명백하다. ‘점장, 부점장, 매니저, 팀리더, 크루’로 구분된 맥도날드 먹이사슬의 맨 아래에 위치한 나는 살아남기 위해 내 포식자들에게 최대한 공손했고, 늘 웃는 얼굴로 대했다. 사실은 공손할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도 공손했고, 내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야하는 상황에서도 웃었다. 이런 태도는 환심은커녕 오히려 남이 나를 낮추고 만만하게 보게 했다. 스케줄 매니저는 약속된 시간 외에도 내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손님이 많아 바쁜 날에는 당연히 제공되어야 하는 식사도 받지 못했다. 또한 옷을 갈아입고 휴식하는 공간의 에어컨과 히터는 계절에 적절하게 틀어주지 않았고, 탈의실 문은 부서진 채로 몇 개월은 방치되었다. 문이 부서진 탈의실에서 재빠르게 옷을 갈아입던 중, 실수로 밖에서 문을 열려던 라이더가 놀라 욕설을 하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매장과 사람을 총괄하는 어른들은 회식자리에서 잦은 실수를 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을 인격적으로 까 내리는 뒷얘기도 서슴지 않았다. 코로나 초기 마스크 품절 대란이 일어났을 때, 본사에서 전 직원을 위해 보내준 마스크를 점장이 모두 개인적으로 챙겨가기도 했다. 우리 매장은 아르바이트생들이 금방 관두고 그 공석은 빠르게 메워졌다. 그간의 행적을 보면 단순히 일이 힘들어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아르바이트생들은 배려는 바랄 것도 없고 정당한 대우조차 받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었던 건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여러 번 실수를 할 때면 자기들끼리 헤드폰으로 그 사람을 조롱해가며 히히덕거리던 모습이었다. 참고로 신입 직원은 헤드폰을 쓰지 않기 때문에 그 대화를 들을 수는 없지만 그 사람을 제외한 전 직원이 듣는 상황이었다. 한마디로 그 매장 어른들은 인격적으로 꽝이었다. 배울 점이라곤 없는 그들과 ‘같이 일하고 싶지 않다’에서 그치지 않고 ‘꼴도 보기 싫었다’로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시점에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그만뒀다.


 미숙할 수밖에 없는 청년들을 감정적으로 대하며 우습게 취급하는 어른들이 잠시 혐오스러웠다. 우리의 편의와 권리에는 조금의 존중도 없었다. 청년이 잘못 시들면 그런 어른이 된다는 생각에 반감이 들었다. 자격 없는 어른이 쥔 권력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비참했다. 나야 평생직장도 아니고 생계도 아니니 그만둬도 아쉬울 것 없다는 생각으로 일했지만 이 일이 생계인 아르바이트생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어른들은 그들의 생계 따위엔 관심도 없었다. 상처받아서 나가면 그만이고 새로운 사람 또 구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사실 비단 나잇대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렇게 믿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 첫 사회생활의 경험에서 어른이 청년에게 꽤 큰 영향을 주는 존재임을 배웠다.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나의 실수투성이 시작과 우리가 받았던 부당한 대우를 꼭 기억하고 싶다. 서툴고 분노할 줄 아는 청년들은 그 경험 때문에 더 좋은 어른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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