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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 Jun 19. 2021

제 동생은 조금 아파요

1년 전 내 동생은 강박증과 범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 원래는 불안장애의 한 종류로 강박증이 포함됐지만 2013년 개정된 정신장애진단 및 통계 편람 5판(DSM-5) 이후 두 가지의 증상은 독립적으로 분류됐다. 동생은 직접적으로 유발할만한 상황이 없음에도 특정 사건과 인물에 대해 반복적인 생각과 행동을 하고 거기에서 오는 불안감으로 떨림, 만성적 피로감, 대인 기피 등의 증상을 보였다. 불현듯 어디에서 강박증세가 찾아올지 모르기에 남들이 많이 모인 길거리나, 학교, 학원 등과 같은 장소들은 더 이상 쉬이 갈 수 없게 돼버렸다. 다중 시설을 갈 때면 불필요하게 몸에 긴장감도 많아지고 예민감도 치솟게 된다. 평범하게 지하철을 타고 친구를 만나서 음식점을 방문하는 것은 때때로 그 아이에게 필요 이상의 용기를 요구했다.


동생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고 자신의 입장보다 남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아이였다. 본인의 친구가 우울하고 힘든 일이 있다면 옆에서 그를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위해주었으며 혹시나 자신의 행동과 말로 남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오랜 생각 끝에 말을 하는 아이였다. 또한 자신이 갖는 이익보다 남들의 승승장구가 더 좋게 느껴져 제 몫을 잘 챙기지도 않는, 좋게 말해서 착한 아이, 나쁘게 말하면 바보 같은 아이였다. 좋은 것을 보거나 먹을 때 이 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은 사람들을 먼저 생각했으며 할머니에게 용돈을 받더라도 쓰임새 있게 지출할 것 같은 누나가 있다면 흔쾌히 건네기도 했다. 또한 동생이 강박증세를 호소하기 전 학교에서 여러 친구들의 지지로 회장직을 맡았으며 낯선 어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교성 있는 아이였다.


그런 동생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 같이 지내던 한 친구와의 갈등이 너무나도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은 이 친구를 이만큼이나 배려해줬는데 상대편은 왜 매일 나에게 그렇게 상처되고 모진 말을 해대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더 잘하면 되지'. '늘 하던 대로 내가 이 아이를 조금 더 품어주자’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 다짐에도 갈등을 겪었던 상대편은 갈수록 더욱 심한 말들을 던졌고 이 말들은 그 아이의 정신을 크게 갉아먹었다. 그 친구는 강남 8 학군의 학교를 다니면서 흔히 백 좋은 부모님 밑에서 자라 돈 없는 사람들과 공부 못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이 벌레 같은 새끼들은 다 뒤져버려야 해' 등과 같은 좋지 않은 인성이 드러나는 말을 자주 내뱉었다.


그렇게 그 친구와 거리를 둔 채 시간이 점차 지나고 햇빛 쨍쨍한 한 여름날이 찾아왔다. 동생은 무거운 책가방을 이고 지고 기말고사 공부를 하기 위해 독서실에 들렸다. 독서실에는 시험기간이어서 그런지 학생들도 있는 편이었다. 공부를 이제 막 시작했을까 갑자기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원치 않았지만 시선이 자꾸만 그리고 갔다. 그날 이후였을까 동생은 옆에 앉은 사람 앞에 앉은 사람 앞 앞에 앉은 사람을 막론하고 모든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쳐다보고 싶지 않은데 쳐다봐졌다. 그들에게 닿는 동생의 시선은 그 아이의 의지가 아니었다. 제멋대로 가는 시선에 남들이 불편하지 않게 동생은 이제 어딜 가더라도 후드티의 모자를 쓴 채 눈을 깔고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평소대로 아무렇지 않겠지만 이제 동생은 남들의 존재가 느껴지고 그들에게 닿을 것 같은 시선을 분산시켜야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들 속에 서 있어야 한다. 남들이 자신으로 인해 최대한 피해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동생이 마음이다.


세상의 모든 긴장과 불안을 갖고 있는 동생이 그나마 숨 쉴 수 공간은 바로 집이다. 집에서도 아빠와 엄마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는 좁은 방 한 편이 그 아이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상이다. 이 곳에서는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고 오로지 본인에게 집중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스스로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생은 그나마 위에 두 명의 누나들과 곧잘 소통을 하며 지냈었다.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주제가 요즘 학생들에게서 핫한지 또한 무슨 웹툰이 재밌는지 등의 사소한 얘기를 나누는 보통보다 조금은 더 친한 그런 남매로 지냈었다. 그런 순간들이 그나마 그를 전에는 버티게 해 줬을까. 있던 누나 2명이 해외로 떠나게 되었을 때 그는 완전히 집에서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 세상에서 본인만의 편을 가지기 위해 동생은 강아지를 기르고 싶다고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그리도 졸랐을지도 모른다. 치명적인 귀여움으로 주인이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게 힘을 주기도 하고 맹목적으로 주인을 따르는 존재가 그 아이에게는 절실히 필요했었다.


지금 내가   있는 것은 동생이  힘든 시간을  극복할  있게 조용히 마음속에서 응원하는 것뿐이다. 그러고 깨질  같지 않았던 두껍고 거대했던 알에서 그가 마침내 나오게   수고했다고 진심으로  안아주고 싶다. 지나쳐 가는 사람들을 신경 쓰며 살기에 너의 삶은 너무나 찬란하고 값지다는 것을 동생이 얼른 닫기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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