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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 Dec 06. 2021

포기하고 싶은 순간 어느 한 사람의 소중한 조언

"나 이번에 한국 들어갈 것 같아." 독일에서 정신적인 지주였던 친한 언니가 말을 꺼냈다.

언니는 독일 유학 생활 7년, 학위, 경력, 전문 자격증까지 손에 얻었기에 폭풍 같던 독일의 삶을 마무리 지으려던 참이었다. 필요한 것을 모두 성취했으니 더 이상 독일에 남을 필요가 없었다. 소위 성공적 유학 생활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언니의 귀국 소식에 나의 마음에는 기쁨과 동시에 허함, 막막함이 같이 피어올랐다.

사소한 일부터 인생의 방향성까지 조언을 아낌없이 해주던 인생 선배의 빈자리는 절대 적지 않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인생의 순리를 애써 되새겨야 했다.


다행히 이번 학기에 한국에서 공부할 수 있었기에 고대하던 언니와의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저만치에서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에 나의 발걸음은 점차 빨라지면서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독일에 있을 때보다 환해진 것 같은 얼굴도 눈에 들어왔다.


바 같은 커피숍에 들어가 위스키가 담긴 커피를 홀짝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현재 한국 생활, 겸임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얘기,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은 언니의 소식을 들으니 같이 기뻤다. 마주 앉은 언니가 "그래서 요새 힘든 일이 있지?"라며 말을 조심스레 꺼냈다. 술이 들어간 커피가 몸을 녹인 탓인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내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언니, 저 요즘에 공부에 권태기가 찾아왔어요. 행복해지려고 하는 공부가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고 자존감을 깎아 먹어요.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외국에서 공부하는 힘듦을 감수하고 있을까요."라는 말이 와다닥 쏟아져 나왔다.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독일어와 너무 추상적인 이론을 뱉어내는 사회학의 이론에 머리가 멍해져 요새 공부의 의지를 잃어갈뿐더러 나 빼고 모든 이가 행복해 보이는 시기를 거치고 있었다. 졸업 후에도 불투명한 앞길과 갈수록 줄어드는 자존감에 포기란 선택지를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언니는 나의 말을 불평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묵묵히 공감의 말을 던져주었다.

"게임 막판에 보스를 맞닥뜨리는 것처럼 막 학기가 될수록 과목의 내용과 양이 어려워지는 건 당연해. 그러니까 지금 이 시기에 공부의 어려움을 겪는 건 당연한 거야. 하지만 이때 성취감이 적어질 수 있으니 매 순간을 성취의 요소로 삼아야 해. 그리고 학기를 별 탈 없이 통과하면서 정규학기에 공부를 끝낼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거야." 라며 희미해진 불씨에 힘껏 바람을 불어주는 듯 보였다.


"그리고 리베야, 명심할 것이 있어. 내가 생각하기에 독일 유학으로 얻은 것은 커리어 적인 요소보다 자기 자신을 믿게 됐다는 것이야.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넓어졌고 혼자 생활하면서 스스로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나'라는 존재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었어. 7년간의 유학 생활에서 순탄한 적보다 폭풍 같았던 때가 많았지만 버텼더니 끈기와 지구력이 늘었어. 쉽게 그만두지 않는 끈기를 가지면 나중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게 해 줄 거야.  처음에 주변 사람들이 내가 유학 도중 포기할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지만. 봐봐, 묵묵히 버텼더니 할 수 있었잖아."


초반 유학을 결정했던 나의 모습을 후회하며 점점 의지력이 흐려져 가고 있을 때 해준 단비 같은 말이었다. 분명 지식적인 성장도 중요하지만, 처음과 비교했을 때 인생에 대해 진지해진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은 혼자 외국에 나가 살면서부터였다. 더 이상 부모님의 울타리에 있지 않기에 스스로 자문자답하는 과정을 거쳐 선택의 갈림길에서 최선의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부모님의 개입 없는 삶은 초반에만 자유로웠지 나중에는 무겁게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끝까지 고민하고 고민했던 시간이 결국에 역량을 늘려주었다.


학업에 치여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보고 힘듦을 토로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졌다. 그만큼 얻은 것이 있으면 응당 힘든 일도 거쳐야 하고 누군가에게는 유학이 꼭 해보고 싶은 일일 수 있지만 여러 상황 탓에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스스로 힘듦에만 갇혔기에 보지 못했다.


인생의 연장자, 먼저 살아온 사람의 말은 오늘 하루, 앞으로의 삶에 다시 싱그러움을 불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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