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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베 Nov 03. 2021

메말라가는 감정

엄마, 아빠가 생일인데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 모습을 보았을 때 마냥 의아했다. 생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디데이를 세던 어린아이의 눈으로 봤을 때 삶에 지친 어른의 모습이었다. 매번 반복되는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생일과 같은 기념일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이 전형적인 어른의 모습 같았다. 그리고 나도 어른이 되면 저렇게 되겠지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감정의 우물이 이렇게 이른 나이에 메마르게 될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일상이 반복되어 익숙해져 버린 게 아니라 감정을 같이 나눌사람이 없다 보니 무뎌져 버렸다.


독일에서 비대면 수업이 진행된 지 3학기째, 발표가 필수적인 수업이 아니라면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혼자 사니 룸메이트도 없고 가족도 없는 나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입을 떼지 않았다. 자체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한셈이었다. 그저 가끔 한 번씩 장을 보러 나가고 사람의 소음이 그리울 때면 창문을 열고 귀를 열었다. 초등학교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의 소리, 퇴근하는 사람들의 발자국, 마당에서 생일잔치를 가만히 들었다. 평온한 일상에 제 성격을 내서 내 주의를 이끄는 것은 날씨뿐이었다.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한국의 친구들 혹은 독일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는 것이 부담되었다. 나의 삶에 치이다 보니 남의 삶을 관여할 여유가 없었달까.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하면서 고민하고 검열하고 생각하는 과정은 굉장히 힘들게 느껴졌다.


며칠치의 식량을 저장해둔 혼자만의 동굴은 아늑했지만 그럴수록 세상과 단절되었다. 상방향의 소통을 끊고 유튜브나 강의의 일반적인 소통만을 받아들였던 몇 개월은 스스로 만든 감옥과도 같았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세상에 혼자 남겨진다면 절대 살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던 철학자의 말을 마치 유사 방증이라도 하는 것처럼 서서히 병들어갔다. 태어났기에 살아간다는 생각이 여느 때 보다도 많이 들었고 유학 초기의 열정과 희망의 불씨는 거의 사그라드렀다. 


글을 쓸 때 느꼈던 평온함과 자기실현에는 관심이 가지 않았다. 유학이 목표를 이루는 하나의 과정이라기보다 인상 과정의 마지막 목표처럼 조금이라도 실수할까 봐 무서워졌다. 잘 못 더디기라도 하면 마치 절벽 끝에서 추락할 것 같은 불안감이 나의 일상의 행복을 소리 없이 뒤덮었다. 


불안한 감정이 지속되고 혼자 고립되면 사람이 미칠 가능성도 다분해 보이는데 다행히 가족의 사랑은 마지막 끈이 되어 나를 놓지 않았다. 


이제는 모르겠다. 감정을 삭히다 보니 무뎌진 건지, 부정적인 감정에 뇌가 벌써 익숙해져 버려서 이를 지속하려는 뇌의 속임수이기라도 한건지. 긍정적 감정이 활성화되는 부분이 일을 멈추기라도 할 것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삶을 나누는 순간은 상당히 즐겁지만 그게 끝이다. 좋은 곳을 가고 먹는 것은 좋다고 잠깐 생각할 뿐 마음으로 느끼지 못한다. 슬픈 얘기는 이해가 되지만 마음속에서 공감이 되지 않는다. 다른 이의 삶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아졌다.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고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던 과거의 모습이 희미해져 갈 때 나는 결국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두려워졌다. 


마음이 굳어져 가는 어딘가에 틈이 있어 후에 우연히 단단함이 깨질 기회가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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