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습격 후
체리가 아직도 꼼짝 안 해요. 습격을 당한 지 4일 지났는데, 소리도 못 내고, 걷지도 않고.. 먹기는 해서 다행이에요.
선샤인도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아마 개가 물어간 것 같아요.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요.
주말에 일이 터져서 레이첼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어요. 긴급 약품과 rescue remedy라는 부스터, 달걀노른자도 먹이라면서 몇 알 챙겨주었어요.
피난 부분을 지혈하고 소독용 스프레이를 날개밑에 모조리 뿌리라고 하더군요.
늘 고마운 레이첼. 닭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슬퍼해주어 감사했어요. 오렌지 한봉지와 비교도 안될 귀한 구급약을 바꿔왔어요.
레이철 말은 아직 쇼크상태여서 움직이지 않을 수 있고, 어쩌면 죽어가고 있는 거일 수도 있다고 했어요. 동물 병원은 너무너무 비싸니 데려가지 말고 let her go 하라며 조언을 해주었만, 며칠 지나본결과 죽어가는 것 같지는 않아요.
부스터를 물에 타서 입을 벌려 먹이고, 노른자를 깨어 먹이니, 잘 먹더라고요. 모이도 조금이지만 먹고 있어요. 안타까운 건 먹고 싸는 이외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심지어 박스한쪽 벽면에 몸을 붙이고만 있어요. 안정감을 찾으려는 것 같기도 하고 어디가 아픈 것 같기도 하고요.
어제는 우리도 정신을 좀 차리고, 아들과 함께 초콜릿을 사들고 옆집 노아 아저씨 집에 찾아가서 감사 인사를 했어요.
노아아저씨는 부인캐서린과 함께 매일 산책을 하며 그 개를 찾고 있다고 했어요. 시청에 신고를 해서 찾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는데, 막상 신고를 하려 그 개도 불쌍하네요.
동물을 키워 본 적도 없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저는 사실 이번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어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사람처럼 대하고 사랑하고 보호한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지고요. 저도 한 그런 마음을 동물에게 쓸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또 이곳 사람들을 좀 더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개를 잘 간 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이런 비극이 일어나긴 했지만, 닭도 개나 고양이처럼 애완동물로 대하는 이곳 사람들이 너무 따뜻해요.
작년 뉴질랜드 정부는 공장식 양계장을 없애고, 프리레인지로 닭을 키우고 보급하도록 규정했는데요. 사실 그때 웃었어요. 어차피 잡아먹을 닭인데.. 하면서요.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귀함을 알고, 닭이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 권리를 보장해 주는 이 나라의 기본적인 생각들이 너무 좋음을 새삼 느낍니다.
오늘 저녁에 레이철이 문자를 보내왔어요.
체리의 상태를 묻었고, 동시에 이제 태어난 병아리가 있으니 체리를 위해서 병아리를 더 사라며…. 어쩌면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