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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Nov 20. 2022

이런 인생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잘난 체 하고 싶어질까 봐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하지 않는다.

멋있고 근사한 척 꾸며댈까 봐 인스타그램은 분기별로 한 번만 한다.

필터링으로 한껏 끌어올린 내 최고의 순간은 진짜가 아니니까.


나는 온라인 세상에 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기피하며 살아왔다. 맛있는 것 먹고, 좋은 곳 가보고, 좋은 물건을 사들이는 것을 널리 알리는 방식으로 나의 행복을 전시하고 싶지 않았다.

통속적 즐거움에 물든 시간을 하이라이트 쳐서 여러 사람에게 자랑할수록 그렇지 못한 나의 시간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목소리가 무척 작다. 그리고 누군가 묻기 전에는 나의 경험이나 생각을 얘기하기보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다 보니, '너 엄청 겸손하구나?' 따위의 소리를 종종 듣는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겸손하고 세속적 유행에 초연해서 SNS에 무관심한 것 같다고 하지만, 그건 오해다.


내 마음을 솔직히 들여다보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말할 수 있다.


어쩌면 SNS를 기피하는 이유는 더 잘나고 싶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 싫은 거겠지. 멋있고 싶은데, 실제로 그렇지 못해서 부끄러운 거겠지. 남들의 과장되게 빛나는 순간을 내 가장 밑바닥 모습과 비교하며 불행을 느끼게 될까 봐 피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 상황과 내 모습이 마뜩잖다. 

쓸데없이 진지하고 조바심 내는 나의 성향이 싫다. 여기저기 에너지를 쪼개 쓰느라 일상을 컨트롤하지 못하니 엉켜버린 내 삶은 구질구질하게 느껴진다. 십 수년 동안 이런저런 고민만 많고 개선하지 않는 부조화가 무척이나 한심하다.




사람들은 나를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지 않는 나쁜 버릇은 아주 어릴 적부터 만들어진 것 같다.

나는 늘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게 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나는 그저 다른 삶을 살기를 갈망했다. 내가 상상하는 그 사람은 자기 세계에서 거침없이 감정을 발산하고, 뜨겁게 사랑하고, 행복감으로 가득 차 있다.


스물한 살 여름, 친구 여럿과 강화도 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는 고속버스 라디오에서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차창 밖으로 꼬불꼬불한 논밭 길 너머 외딴곳에 아주 허름한 시골집 한 채가 보였다. 

"저런 곳에서 평생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내가 나지막이 말하자 옆자리 친구가 깜짝 놀라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하지 않았다. 


스무세 살 겨울, 한 친구와 신촌 지하도를 걷고 있었다. 한 사람 겨우 들어갈 정도의 작은 복권 판매 점이 있었다. 복권과 복권 비용을 주고받는 작은 반달 모양의 창이 있을 뿐, 안이 들여다보지 않는 구조물이었다. 

"저기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면 좋겠다..."라고 말하자 친구가 역시 놀라며 이유를 물었다. 나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대답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하다. 그땐 나도 그 감정을 잘 설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현재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상이 높은 탓에 만족하지 못하고 늘 다른 것을 갈망하게 되니, 행복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래서 세상의 자극을 차단하고 싶었다.




진짜 행복해?

오래전부터 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행복한가'라는 화두에 천착하는 편이었다.

평범한 환경에서 어째서 그런 인간으로 성장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행복'이란 단어에 특별하고 고결한 의미를 담아 파랑새처럼 저 멀리 떠나보냈던 것이다. 나에게 행복은 모든 고통과 번뇌가 사라진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고, 무결하고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이어야 했다. 

그리하여 기쁘고 즐거운 순간에도 '이 감정은 진짜인가?'라고 의심하곤 했다. 남들이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들에 휘둘려서 내 감정을 속일까 봐, 진짜를 알아채지 못할까 봐 경계했다. 


20대 중후반 유학 초기 시절, 매일 행복했다.

10여 년 동안 꿈에 그리던 프랑스 유학을 왔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한 동안은 여전히 한국에서 디자인 노동을 하는 악몽을 꾸었는데, 잠에서 깨면 안도감과 행복감에 눈물을 흘리곤 했다. 그리고 이내 다시 불안감에 빠져들었다. '앞으로 이 보다 더 기쁜 날이 오지 않으면 나는 무슨 힘으로 살아갈까? 내 인생의 행복을 지금 다 누리면 안 되지. 행복하지 않은 척 하자.'


 나는 불쌍하게도, 그렇게 스스로 행복을 검열하고 절제하는 아이였다.




부조리한 인생을 살고 있다.

패션은 자기 배려라며 몸 긍정주의를 가르치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한다. 메타버스가 시대 흐름이라고 주장하면서, 속 마음은 여전히 'SNS의 허상'과 '현실세계의 실재'를 구분 짓고, 값을 매긴다. 일상의 작은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고 글을 쓰면서, 특별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고자 허덕인다.

이런 삶도 있다.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워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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