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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Apr 17. 2023

패션 디자이너가 괴로운 이유 (2)

디자인은 원래 괴로운 건가요?

늑골 아래쯤, 뱃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나를 꽉 움켜쥐는 듯한 통증을 느끼곤 한다.

배탈, 급체, 위경련 등 여타 배앓이와 다른 이상한 통증은 십여 년 전 어느 날 처음 겪었다. 큰 고통은 아니기 때문에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는 있지만, 뱃속의 열감으로 입이 마르고 집중이 안되며 매우 무기력해진다. 이러한 증상은 빠르면 하룻밤, 길면 이삼일 이내 사라지곤 한다.


증상이 두어 번째 반복되던 날 원인을 깨달았다.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이구나!'


그 증상은 대개 품평이나 수주회 등 외부인 평가 중 부정적인 피드백 속에서 시작되었다.

다시 말해, 디자인 과정을 알 리가 없는 타인 따위가!

한 계절동안 에너지를 쏟아 부운 우리의 결과물을 성의 없는 태도로 대할 때.

피땀눈물의 결과물을 말 한마디로 단정 지어 가치평가 했을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차게 맞받아치거나 조목조목 논쟁할 수 없는 처지라서,

혹은 쿨함을 연기하느라 감정은 숨겨야겠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와 이불을 걷어차거나 찬 맥주를 들이켜고 누워서.

상황 때문에 분노하고. 상황을 바꾸지 못하는 나를 혐오하고. 함께 애쓴 사람들에게 미안하고.


이러한 마음들에서 그 증상은 시작되었다.

그리고 뱃속을 뜨겁게 만드는 감정과 함께 괴로워하며 나는 며칠간은 쉽게 잠들지 못했다.




디자인은 원래 이렇게 괴로운 건가요?

디자인 수업을 할 때 학생들에게 종종 얘기한다.

'창작은 분명 즐겁지만, 평가받는 건 그렇지 못하다. 디자인은 때때로 괴로울 수 있다.'라고.


상업성과 예술성, 대중성과 독창성, 기능성과 심미성.

디자이너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을 것만 같은 특성들 사이에 서 줄타기를 하며 묘한 접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평가를 받아야 한다. 기획단계에서는 온갖 가정과 불확실성 속에서 저울질당한다.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좋은 디자인에서부터 나쁜 디자인까지 라벨링을 당하며 다양한 평가 속에 울고 웃는다. 상품으로 출시되고 나서는 소비자의 선택 여부에 따라 유능한 혹은 쓸모없는 디자이너로 구분된다.

평가받는 삶은 엄청나게 고단하다.


좋음. 손에 잡히지 않는 이데아!

패션디자이너 혹은 패션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비극은 여기서 시작된다.

A 선생님이 좋다고 평가하는 것을, B 선생님은 나쁘다고 할 수도 있다. C브랜드의 베스트 디자인이 D브랜드에서는 환영받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좋다’는 건 무엇인가?

패션에서 ‘좋음’이라는 것은 수학처럼 정답이 없고, 과학처럼 정량화할 수도 없다. 좋은 패션 디자인이란 매우 주관적이며 동시에 시대적 맥락에 부합해야 한다. 또한 패션 디자이너라면 예술가처럼 작가정신에 집중해 의미부여를 하는 것으로 그칠 수는 없다. 많이 팔려야 하니까.


'좋음'이란 것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관점에 따라 평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머리로 이해하지만, 그 결과를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납득하지 못하더라도 대개는 소속집단의 문화나 분위기, 평가자의 권위 등에 위축되어 별 수 없이 받아들인다.


더군다나 패션산업에서 디자인이란 기획단계에서 아무리 좋다고 칭송한들, 소비자가 외면하면 비즈니스의 논리로는 아무 의미 없다. 패션디자인은 대개 결과론적으로, 많이 팔려야 좋은 것으로 인정받는다. 심지어 '좋은 것'은 때때로 이롭거나 선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팔리면 우월한 것으로 둔갑되어 패션 판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괴로움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뻔한 표현이지만,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해도 어떤 사람은 타격감 제로이지만, 나와 같은 사람은 화병으로 끙끙 앓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사람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지나친 애착은 간혹 동일시로 이어진다.

나의 결과물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 때 내 존재가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면, 나와 결과물을 분리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가 열등한 존재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버려야 한다. 단지 지금 여기에서만 내 작업 결과물이 적합하지 않았을 뿐이라 여기고 뭣 같은 감정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나와 내 디자인 사이의 건강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그러고 나서, 지금 여기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부합하려는 노력이 나를 성장시킬 것인가를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장기적으로 혹은 다른 면에서 나를 성장시킬 여지가 있다면 피드백을 수렴해 다시 시도하면 된다. 곰곰이 생각해 봐도 내게 백해무익하며 나의 작업철학과 모순되어 참을 수 없는 지경이라면, 그때는 참지 말아야 한다. 감정을 걷어낸 채로 자기의 소신을 명백하게 밝히거나 그곳을 떠나거나.




그래서 필자 본인은 어떠한 평가에도 휘둘리지 않을 만큼 득도했느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그렇지 못하다는 부끄러운 대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나는 그 시절, 동일시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화병에 시달렸는데 꾹꾹 참다 이따금 폭발해버리곤 했다. 그래서 어느 날은 쿨하지 못하게도 매우 격앙된 상태로 상무님에게 심하게 대들었고 또 자존심은 엄청나게 세서 잘리기 전에 사표 던지는 선수를 쳤다.


현재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패션상품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컨설팅을 하고 있으니 예전만큼 괴로운 건 아니지만, 제안이 거절당하거나 수정 요청을 받을 때 이따금 울적해진다.

그리고 사실 이건 비밀인데, 내가 디자인을 지도한 학생이 결과물이 의도한대로 시원스레 나오지 않아서 혹은 기대에 못미치는 평가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무척 슬프다. 그들이 울면 가슴속에 불덩이가 있는 것 같은 고통을 또다시 느낀다. 어젯밤에도 분노와 연민으로 뒤엉켜 잠을 못 잤다. 괴로워 울었다. 내 디자인이 아닌데, 내 제자의 디자인에 또다시 동일시를 하고 있으니... 나는 초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나는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야 하는 걸까.

위로가 되는 니체의 문장 하나를 붙들고 오늘은 잠을 청해야겠다.


'춤추는 별 하나를 탄생키시키 위해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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