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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un 16. 2023

시간은 공평하지 않다

루이의 시간 (1)

지난 주말 남편이 사다 준 꽃다발의 상태는 영 시원치 않았다.

꽃병에 옮길 때부터 작은 꽃잎들은 후드득 떨어졌고, 유칼립투스는 바짝 메말라 있었다.

눈썰미도 없고 본인이 호구 잡혀도 모르는 남편을 탓하며, 그래서 나는 꽃들을 더 각별히 관리했다.

매일 아침 꽃병의 물을 갈아 주며 더 이상 회생 불가한 꽃을 골라내었는데 이제는 목이 아래로 꺾인 장미 두 송이와 작은 국화 줄기만 남았다. 겨우 5일 지났을 뿐인데 그 많던 꽃들이 다 사라졌구나.


감정이 복받쳐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혼자 있을 때 종종 이렇게 울음이 터져버려 제어가 잘 안 된다. 한참을 서럽게 울고 나서 잘라낸 줄기들과 메마른 꽃을 쓰레기통에 넣으며 문득 깨달았다. 2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나의 깊은 우울감이 무엇 때문인지.

루이. 나의 반려견. 루이의 시간은 나의 시간과 같은 속도로 흐르지 않는다는 것.


시간이라는 녀석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숨 죽인 채 조용히 움직인다.

어느 순간 문득 시간의 흐름을 깨닫고 돌아보면, 대개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반려견의 시간은 특히 그렇다. 인간의 것보다 몇 곱절 빠르게 흘러가기에 변화가 크게 보인다.


새까맣게 반짝이던 눈은 뿌옇게 변했고, 보드랍던 복숭아 빛 피부에는 이제 검버섯이 가득하다.

매일 함께 쏘다니던 산책길의 반경이 점점 줄어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다리를 절뚝이고. 휘청이며 넘어지고. 이제는 걷는 것조차 힘겨워한다.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없이, 매일 조금씩 생기가 사라지는.

어떤 끝을 향해 가고 있는 사랑하는 이를 지켜보는 마음은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롭다.

때로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 아니겠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과거의 행동을 떠올리고 내 모든 선택들을 반성하며 끝없이 자책하고, 대상 없는 분노감에 사로잡혔다가 또 무기력해진다.


그냥 이대로 시간이 멈춰 버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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