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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Dec 13. 2023

거스를 수 없는 것

루이의 시간 (6)

나의 반려견 루이는 2016년부터 심장약을 먹기 시작했다.

수의사 선생님 말로는 심장약을 먹기 시작한 개들은 보통 3년 정도 후에 위중한 때가 온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 루이에게 약 3년이라는 시한부를 선고한 것이다.


이첨판폐쇄부전증은 사실 소형 반려들에게 매우 흔한 병이지만, 국내 수술 사례는 극히 드물다. 지금으로선 심장 기능을 보조하는 약물로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 외에 다른 현실적 방법이 없다.

시간이 갈수록 심장 판막은 점차 기능을 상실해 심장이 비대 해질 것이고, 폐에 물이차고 숨쉬기 힘들어지며, 신장이 망가질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이별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루이의 진단결과를 듣자마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결심했다.

비록 그 끝은 정해져 있지만 시간을 늦출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온 힘을 다해서!

반려견을 가족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시간을 오래 지속시키고자 각자 자신의 처지대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나도 그랬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한 없이 게으르고 모든 것에 시큰둥하던 내가, 이렇게 열성적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것은 루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루이를 떠나보내기 싫은 나를 위한 것인가.

사랑, 책임감, 어쩌면 두려움. 그 감정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온 힘을 다했다.


루이가 내 마음을 알았던 걸까! 엄마가 애쓰는 것에 보답하듯, 루이는 씩씩하게도 7년이나 버텨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장기간 투병할 수 있었던 것은 루이의 낙천적인 성향 덕분인 것 같다. 루이는 순하게 약도 잘 받아먹고, 까까주는 간호사 누나와 수의사 선생님을 좋아해서 잦은 정기검진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는 것 같았다. 밤중에 응급실에 정말 수 없이 들락거렸고, 때때로 2차 병원 중환자실에 장기입원을 하게 되었지만 루이는 위기를 잘 넘기고 결국 집으로 돌아왔다. 루이는 밝고 강한 아이였다


맹렬히 노력하는 인간과 낙천적이고 밝은 멍멍이!

우리는 환상의 복식조처럼 위기마다 극복해 가며 7년을 달렸다. 그러는 동안 자연스레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가느다란 희망을 가슴에 품고, 나도 모르게 방만했었나 보다. 이미 7년의 시간이 기적과 다름없는데 또 다른 기적을 탐내서, 어쩌면 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루이의 병세는 2023년 초 급격하게 나빠졌다.


고백컨데 2023년은 나에게 지옥과 같았다. 루이가 많이 아플 때는 매일매일이 전투나 다름없었다.

병원에서 처방해 준 약을 하루 11번 복용법대로 먹이느라 나는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앙상한 루이 몸에 바늘을 찔러대며 내 마음도 멍드는 것 같았다. 루이가 가쁜 숨을 몰아쉬면 자다가도 몇 번씩 벌떡 일어나 응급상황인지 판단해야 했고, 루이를 안고 창가에 서서 안정될 때까지 노래를 불러주었다.

루이 다리의 힘이 점점 약해져 배변 실수를 하게 되었고, 나는 하루 세 번 이상 세탁 했다. 그리고 루이를 신생아처럼 품에 안은 채 함께 물줄기를 맞으며 오물을 씻겨야 했다.


7월 어느 날인가, 몇 달간 하루 2-3시간 쪽잠 자는 생활로 몹시 지쳐있을 때였다.

주말아침 남편에게 루이 간병을 맡기고 나는 마트에 장을 보러 나섰다. 터벅터벅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차들이 나를 향해 일제히 클락션을 울려댔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니, 횡단보도 위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넋이 나간채로 9차선 도로를 빨간불에 혼자 건너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나를 날카롭게 쳐다봤다. 나는 어쩌지 못하고 횡단보도 한가운데 섬처럼 우두커니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떻게든 정신 차려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샀다.

작은 공원에 그대로 주저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자꾸만 눈물이 났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엉엉 울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보든 말든 이성과 체면은 내던진 지 오래다.


이 시간의 끝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기적 같은 건 믿지 않았지만.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다.


아무리 노력해도 시간을 거스를 수 없듯.

우리는 모두 결국 나이 들고 사라지는 작은 존재들.

그 무력감이 무척 쓰리다.





그 동안 루이와 함께 보던 하늘, 함께 느끼던 계절의 냄새. 실은 모두가 삶의 선물이었고 기적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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