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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간비행 Jan 05. 2024

봄날은 간다

루이의 시간(7)

2023년 2월. 루이는 급성 신부전으로 2차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신장수치를 안정시킬 수 있는 골든타임동안 최선을 다해 집중치료해 보자 제안했다. 그렇지만 위급상황을 넘긴다 해도 루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을 거라 했다.

각오하고 있었지만,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나는 매일 울었다. 날마다 바보같이 훌쩍거리면서.. 루이를 면회하기 위해 병원에 갔다. 간호사가 데리고 나온 루이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아도, 루이는 좋은 기색할 기력도 없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입원한 지 열흘쯤 되었을 무렵, 병원에선 더 이상의 유의미한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겠다고 퇴원을 권유했다.

아이가 잠을 푹 안 자고 밥도 안 먹는다며. 낯선 병원보다 차라리 가정으로 돌아가 안정을 취하면서 관리할 수 있는 것만 하자고 했다. 그렇게 앙상해진 루이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집이 편했나 보다. 루이는 평소 제일 좋아하던 소파 구석자리에서 내리 잠만 자더니, 사나흘 지나서부터는 조금씩 걷기 시작했다. 걱정되어 문병 오신 친정엄마를 보더니 루이가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어댔다.

'와아~ 신기하다! 루이가 제일 좋아하는 외할머니가 오시니까 꼬리를 흔드네? 하하하'

척추 통증으로 등이 굽는 바람에 꼬리를 엉덩이 위로 올리지 못하던 루이가 기운차게 꼬리를 흔드는 모습에 우리 가족은 모처럼 웃을 수 있었다.


한 동안 루이의 컨디션은 좋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루이 입맛에 맞는 처방식을 구해 먹여서 몸무게를 약간 회복했고, 벚꽃이 만개했을 때는 산책도 할 수 있었다. 루이가 스스로 걷는 건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그래도 비틀거리며 풀냄새를 맡으려 앞으로 걸었다.


그 무렵 나는 루이에게 가능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가 함께 보내는 마지막 봄일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매일 안고 아파트 주변 산책로를 걸으며 예쁜 꽃과 풀이 있는 곳에 루이를 내려주었다. 루이는 이미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었고 눈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발바닥의 감각과 향기로 봄을 느꼈을것이다.


목련꽃이 만발했다가 지고.

그 뒤로 또 벚꽃과 매화가 피었다가 지고.

철쭉, 튤립, 장미가 차례로 피고 지는 그 계절을 우리는 함께 느꼈다.


벚꽃잎이 소복하게 내려앉은 잔디 위에 루이를 세워두고, 세발자국 앞에 앉아.

'루이야 이리온! 엄마 여기 있지!'

팔을 벌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한 발 떼기가 어려워 그 자리에 그대로 선채 다리를 바르르 떨며

나를 쳐다보는 루이의 흐려진 눈동자를 들여다보았을 때,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봄날이 가고 있구나.





봄날은 간다.

어쩌면 이 봄이 더 빨리 끝날 수도 있겠구나.

루이의 봄도, 그리고 나의 봄도 곧 끝나겠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내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내 삶의 큰 조각 하나가 서서히 떨어져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제야 깨달았다.


평범한 순간들이,

다시는 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사실은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간이라는 것을 왜 모르고 있었을까.


행복이라는 희귀한 순간을 감사한지 모르고 여태 누리고 있었나 보다.

모든 존재가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과 죽음을 잠시 잊었나 보다.

염치도 없이 봄날이 가는 것을 망각했나 보다.





루이와 함께 느꼈던 계절들, 일상의 모든사물들. 그 매일매일이 희귀한 행복의 순간임을 왜 몰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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