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삼세판. 난자 채취 후 나에겐 딱 세 번 이식할 수정란이 있었다. 첫 번째, 두 번째를 그냥 흘려보내고, 세 번째는 성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째 실패 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연달아 실패하니 시도할 기운도, 성공할 확신도 없었기 때문이다. 쉬는 한 달 반의 시간 동안 하나씩 재정비해나갔다. 몸도, 정신도.
두 번 정도 이식을 받은 경험이 있으니, 세 번째 이식 땐 하루 일과가 어떨지 머릿속에 펼쳐졌다. 병원에 한 3~4시간은 있어야 한다. 집에 돌아오면 거의 점심 시간일테니 미리 먹을 것을 좀 준비해두고 나가야지. 무의식적으로라도 이식 전에 화장실을 가는 것은 절대 금물. 집에서 물병 챙겨가서 최대한 이식 직전까지 물을 많이 마셔둬야 한다. 병원 가서 많이 기다리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짜증은 내지 말자. 스트레스는 착상의 최대 적이니. 대기실에서는 이어폰 들고 가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클래식을 들어야겠다. 등등 혼자서 이식 당일에 챙겨야 될 것들을 몇 번이고 정리해봤다.
남편이 운전을 하고, 옆에서 나는 눈을 감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먹기 시작한 소론도정의 영향으로 밤에 잠을 잘 못 잤기 때문이다. 반착검사상 면역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 처방되는 약인데, 조그마한 알약 네 개가 어찌나 나를 깨우는지. 되도록 오전 이른 시간에 먹는데도, 새벽에 눈을 떠서 한두 시간 생생하게 보내다 겨우 잠들었다. 그래서인지 이식 당일에 긴장되는데다 예민해지기까지 해서 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혔다.
병원에 도착해서 접수를 하고,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선생님을 만나 배아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저번과 비슷한 배아 등급이라는 말에 안심했다. 동결 이식을 진행하다보면 처음에 가장 질이 좋은 배아를 이식하고, 점점 그 등급이 낮아진다. 그렇기에 이식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론적으로라면 성공 확률이 증가하지만, 마냥 성공할거라 낙관할 수 없는 것이다.
배아 사진을 보고 나면 기분도 묘하다. 처음엔 ‘저 조그마한 것이 내 안에 들어와서 생명체가 된다니.’ 좀 신기했다. 그런데 갈수록 ‘제발 이번엔 내 자궁에 안착해서 건강한 아기가 되어줬으면...’ 간절한 마음이 든다. 이름을 붙여줘 볼까도 생각해봤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러진 못했다. 1, 2차를 실패하고 나서 배아 사진을 휴대폰에서 지울 때 마음이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대기실에 누워있다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식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내가 다니는 병원에선 이식 전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 사물함마다 시술받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 놓는데 빈 칸이 없을 때도 제법 있다. 배아 이식 시술의 경우 방광이 차 있어야 자궁 내부가 잘 보여서, 병원 도착 한 시간 전부터 소변을 참아야 하는 중요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인지 대기실에 누워있다보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환자들의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 말을 듣고 있자면 괜히 나도 화장실에 가고 싶은 욕구가 올라올 때가 있다. 내 방광이 없다고 생각하자...뭐 그런 이상한 주문을 외기도 한다. 참 한 생명을 잉태할 수도 있는 이 중요하고 아름다운 시간에 들만한 생각은 아닌데.. 인생은 정말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한 차례 넘기고 나면, 시술실에 들어가서 2차 고비가 온다. 이식을 위해 아랫배를 누르는 간호사 선생님의 손길...참아야 하느니라. 그러고 나서 이식 전에 몇 번씩 내 이름과 남편의 이름을 확인한다. 남편과 나의 이름이 동시에 불리는 일은 결혼식 이후로는 잘 없었던 것 같은데, 난임 병원을 다니고 나서부턴 정말 우리 둘이 한 몸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내 이름 뒤에 남편 이름이 꼭 붙는다. 배아가 뒤바뀌는 불상사가 일어나서는 안 되니. 몇 번의 호명에 대답하며 마음속으로 우리 두 사람의 배아가 건강한 아기가 되어 만날 수 있길 기도한다. 의사선생님께서 가만히 배아를 자궁 안에 넣어주시면 그걸로 시술 끝. 한 10분 정도의 아주 짧은 시간 안에 끝난다.
시술 후 가만히 베드 위에 누워 한 시간 동안 안정을 취했다. 사실 배에 들어온 실감이 전혀 안 난다. 이식 전이나 후나 배가 묵직해진 것도, 거동이 불편해진 것도 아니니. 여태까지 시술받았던 것 중에 ‘아 내가 시술을 받았구나’를 가장 크게 느낀 건 ‘난자 채취’할 때였다. 그 이후로 이식을 받을 땐 아무 느낌이 없다.
이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며 내 배 안에 뭔가가 있다는 생각을 계속 했다. 그래서 걸음걸이부터 시작해서 모든 움직임을 조심하게 된다. 내 머릿속의 생각이 부정적이면, 배아가 착상하는 데 영향을 받을까 두려워 최대한 생각도 긍정적으로 하는 걸로 마음먹는다. 먹을 것 또한 신경 써서 먹기로 한다. 이미 냉장고에는 나의 몸에 단백질을 채워줄 음식들로 가득하다. 하루 전 엄마 집에서 갖고 온 고기와 채소, 과일들, 시어머니께서 보내주신 반찬들이 꽉꽉 채워져 있다. 부모님께서 별말씀은 안 하시지만, 이렇게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진다.
내 아랫배는 주사를 맞아서 욱신욱신한 느낌밖에 나지 않는다. 내 배 안에 배아가 들어와 있다는 건 이식 할 때 모니터 화면으로 봤기에 알 수 있을 뿐... 단지 내 마음이 ‘이제 몸을 조심하고, 주사와 질정을 잘 챙겨야겠다’는 적극적 의지로 채워진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