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 1차부터 자궁경, 동결 1,2차까지 쉴 틈 없이 시술을 받았다. 실패라는 결과를 받아든 후 한동안 난임 치료를 받을 의지도 기운도 없었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난임 휴직도 넉넉잡아 1년 연장했는데, 한 달 정도의 휴식은 충분히 취할 권리라 합리화하며 그냥 좀 쉬기로 했다. “생리가 시작되었으니 며칠간 아무 생각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고, 보고 싶은 거 보고, 가까운데 바람 쐬고 오자. 그리고 한 달 쉬고 다음 단계를 구체적으로 계획해보자.” 쉬는 한 달 동안은 주사도 약도 병원도 없었다. 난임 병원 다니면서 감기나 배탈 같이 일반 병원에 갈 일이 생겨도 되도록 가지 않게 되었다. 그냥 병원에 가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고 할까.
생리를 하는 날 바로 병원에 예약을 잡았다. 동결해놓은 배아가 남아있어 이번에도 동결 이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세 번째 시도, 마지막 남은 동결 배아, 이번에도 실패하면 난자 채취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항상 잘 되길 바랐지만, 이번엔 꼭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반착 검사까지 하고 내 몸에 존재하는 원인을 알게 되었으니 뭔가 이번엔 다르겠지 내 마음을 다독였다.
오랜만에 병원 가는 길, 보통 이식 전날이나 후에 떨리는 편인데, 이번엔 첫 진료 전부터 긴장했는지 전날 잠을 못 자고 몽롱한 채로 갔다. 병원을 거의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녔기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가 보다. 오랜만에 병원에 가니 진료 대기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연말이라 올해 안에 임신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걸까. 하기야 나도 작년 연말에 난임 병원을 처음 찾았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임신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보겠다는 생각으로.
작년과는 다르다. 내 몸도 생각도 태도도. 의도한 건 아니지만, 경험치가 쌓였다. 앞으로 나에게 생길 일들이 그려진다. ‘이번엔 좀 더 많은 약이 처방되겠지. 시술을 받는 과정도 좀 더 긴장될 거야.’, ‘기다림의 시간도 더 힘들어질 수 있으니, 미리 누워서도 할 수 있는 재미난 것들을 준비해두어야겠다.’, ‘이번엔 임신테스트기를 미리 안 쓰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거야. 당일에 선명한 두 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들이 동시에 떠오른다.
차수가 거듭될수록, ‘난 아니겠지. 금방 될 거야.’라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겸손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늘의 뜻을 따른다는 마음? 그건 또 아니다. 가끔 하늘을 쳐다보며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렇게 아기를 안 보내주시나요...’라고 생각할 때도 있다. 그러다 또 시술이 시작되면 ‘꼭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참 이 기복의 끝은 어디일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벌써부터 긴장된다. 이번엔 꼭 아기가 찾아와주었으면. 부디 나 자신이 이 과정을 편하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